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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성매매·안락사..네덜란드는 왜 관대할까

채인택 입력 2016. 03. 05. 00:12 수정 2016. 03. 05.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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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암스테르담에서 청년 중심 문화 운동으로 벌어졌던 ‘하얀 자전거 프로젝트’. [사진 책세상]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도시 암스테르담
러셀 쇼토 지음, 허영은 옮김
책세상, 568쪽, 2만3000원

네덜란드는 흔히 강소국의 모델로 제시된다. 작지만 매운 고추 같은 나라다. 이미 17세기에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보험사 등을 만들면서 글로벌 무역으로 해상제국을 이뤘다. 미국 역사학자이자 저널리스트로 2008~2013년 암스테르담의 존 애덤스 연구소장을 지내면서 이 나라를 접한 지은이는 경제적 성과보다 네덜란드 사회의 관용에 초점을 맞췄다.

 사실 네덜란드에는 ‘세계 최초’ 기록이 흔하다. 충격적인 게 적지 않다. 1976년 다른 마약과 비교해 중독성과 부작용이 약한 대마를 세계 최초로 허용해 강한 마약의 확산을 막는 ‘지혜’를 발휘했다. 사회에 해롭지 않게 관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실제로 이 정책은 상당한 효과를 거둬 전 세계로 파급 중이다. (주의! 한국에선 대마가 여전히 불법이므로 암스테르담에서 대마초 카페를 찾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처벌받는다)

낙태도 84년 세계 최초로 합법화했다. 성매매는 88년 구역을 정해 양성화했다. 합법적 직업으로 인정해 세금을 걷는다. 이 정책도 성매매의 음성적인 확산을 막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이 나라는 이미 오래전부터 관용의 나라로 이름 높다. 200년 전인 1811년 동성애 허용법을 만들어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로 불리는 성적 소수자들의 권리를 옹호해왔다.

2001년에는 동성결혼을 세계 최초로 인정했다. 유럽 전역에서 동성애로 박해받는 다양한 인재가 네덜란드로 몰렸다. 2002년에는 말기환자에 대한 안락사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허용했다.

 지은이는 ‘관용’을 뜻하는 네덜란드어 ‘헤도헌(gedogen)’에서 이런 문화의 바탕을 찾는다. 우리 말로 옮긴다면 ‘내버려둬요’ 정도가 되는 말이다. ‘어차피 벌어질 일이라면 금지보다 통제가 낫다’라는 실용정신을 보여준다.

 네덜란드식 관용에 사상적인 배경을 제공한 인물이 인문학자 에라스무스(1466~1536)다. 가톨릭 사제 출신이었지만 종교적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개방적인 인문주의자로서 ‘종교 관용’을 사실상 유럽 최초로 주장했다.

기독교적인 숙명론 대신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해 네덜란드 국민성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는 나라살림에도 도움이 됐다. 스페인에서 추방된 유대인들이나 종교박해에 시달리던 프랑스 신교도 인재들이 기술에 자금까지 들고 이 나라로 옮아왔다.

 지은이는 국토의 상당 부분이 해수면보다 낮은 습지라는 자연환경이 관용 정신 형성에 도움이 됐다고 지적한다. 물이 찬 황무지를 차지하려는 군주도, 귀족도, 종교인도 없어 이를 간척하고 개척한 시민들이 땅주인이 되면서 공동체를 좌우하게 됐다는 것이다.

수도 암스테르담도 ‘암스털 강의 댐’이라는 뜻이다. 주체적인 시민이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진취성이 관용의 매력국가 네덜란드의 기둥이 됐다는 설명이 흥미롭다. ‘세상은 조물주가 창조했지만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인이 직접 만들었다’라는 말 앞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S BOX] 히피 원조는 네덜란드 ‘문제를 일으키는 젊은이들’

네덜란드에선 1965~67년 ‘프로보(문제를 일으키는 젊은이들) 운동’이 유행했다. 히피보다 앞선 청년 반항운동이다. 부조리에 대한 저항도 재미있게 한다며 66년 3월 베아트릭스 공주의 결혼식을 앞두고 ‘하얀 루머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겼다.

당시 율리아나 여왕이 ‘독일 남자와 결혼하는 공주가 미워서 아나키스트로 전향하고 프로보와 권력 이양을 협상 중’이라는 포복절도할 가짜 연설문을 돌렸다. 수돗물에 환각제인 LSD를 타서 시민들을 몽롱하게 한 뒤 결혼식을 난장판으로 만들 것이란 헛소문도 냈다. 웃자고 퍼뜨린 소문에 당국은 2만5000여 명의 병력을 동원해 철통 경비에 나섰다.

프로보 활동을 하다 67년 암스테르담 시의원이 된 한 인물은 시 당국에 2만 대의 흰색 자전거를 구입해 시민들이 공짜로 이용하게 하자는 ‘하얀 자전거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시 당국에 퇴짜를 맞은 그는 50대의 자전거를 직접 구해 곳곳에 풀었다. 한 달 만에 자전거를 모두 도둑맞고 두 손을 들었지만 이는 현재 전 세계 공용자전거 운동의 뿌리가 됐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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