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충 vs 김치녀..이성 잃은 '이성혐오'

정슬기 입력 2016. 3. 6. 17:42 수정 2016. 3. 7.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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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역할 인식 차이가 적대감으로 번져메갈리아·일베 등 혐오 사이트도 유행메르스·세월호 사고에도 사회갈등 표출

◆ 내부갈등에 무너지는 한국사회 / ⑧ 불신을 넘어선 '반감' ◆

#서울 명문여대 출신 A씨(23)는 최근 소개팅에서 불쾌한 경험을 했다. 상대방 남성이 대뜸 "여대에는 페미니스트(여성주의자)가 많다면서요? 혹시 '메갈리아' 하세요?"라고 질문을 한 것. 메갈리아는 여성 혐오 반대를 캐치프레이즈로 하는 대표적 인터넷 커뮤니티다. 상대 남성은 심지어 "스타벅스는 커피가 비싸서 거의 와 본 적이 없는데 입이 고급이신 것 같다"며 시선을 A씨 가방에 두고 제품 브랜드까지 살폈다고 한다. A씨는 '여혐(여성 혐오)' 태도를 보이는 상대가 불쾌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직장인 B씨(25)는 최근 여자친구와 냉전을 겪고 있다. 여자친구가 페이스북을 보고 툭하면 '한남충(한국 남성을 벌레에 비유한 표현)'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것이다. 최근엔 회사에 입사한 B씨의 선배들 가운데 업무상 접대로 성매매업소에 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가 "업무를 핑계로 성매매업소를 드나들다니 한남충의 전형"이라며 "혹시 오빠도 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서로 결혼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가 여자친구가 "맞벌이를 할 테니 독박육아, 대리효도, 독박가사는 못 참는다"며 "재산 명의, 집안일 분담, 육아책임 등에 대한 혼전계약서를 작성하고 부모님에 대한 효도는 셀프로 하자"고 하자 대판 싸우기도 했다. B씨가 "왜 인터넷에 나온 일부 사례를 보고 나도 그럴 것이냐고 매도하느냐"고 하자 여자친구는 "구두 약속을 계약서로 쓰는 것이고 지키면 아무 문제 없는데 왜 거부하느냐"고 반발했다.

국민대통합위원회의 '한국형 사회 갈등 실태진단 보고서'는 우리 사회가 나와 생각이 다른 집단에 대해 무조건 비판하고 적대감을 보이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단순히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불신의 수준을 넘어 증오에 가까운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적대감은 젠더(성), 계층, 세대, 지역, 인종, 국가 등 다양한 영역을 포괄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특히 어려운 경제 상황이 맞물리면서 성차별과 성역할을 둘러싼 인식 차이가 반감의 정서로 폭발력을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성 혐오 집단으로 상징되는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와 남성 혐오를 보이는 '메갈리아'의 대결, 군 가산점을 둘러싼 패싸움 양상과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요구 등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혹은 남성 혐오 정서의 수위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연구진은 "최근 여성들은 맞벌이가 늘어나면서 육아나 가사노동이 공동으로 담당해야 하는 일이라고 보지만 남성들은 전통적으로 여성이 해온 역할을 남성에게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화가 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여성이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생활을 유지하기 힘드니 육아와 가사노동을 둘러싼 갈등이 더욱 증폭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대학 입학, 취업, 승진 등 사회적 경쟁 구도에서 여성이 약진하면서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수준으로 남성이 여성을 경계하며 공격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도 연구진이 염려하는 대목이다. 여혐 현상이 남성 중심으로 진행된 인류사의 변동에 대한 반작용으로 극대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여성은 여전히 공고한 남녀 간 임금 격차와 승진 차별 등 한국 사회의 유리천장에 좌절하면서 남성 혐오 감정을 거침없이 표출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실제 여성 고용률은 49.5%로 남성 고용률(71.4%)보다 21.9%포인트 낮았다. 또 한국의 남녀 간 임금 격차는 14년 연속 OECD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블로그 트위터 등에서 김치녀(데이트 비용을 부담하지 않거나 사치스러운 여성을 뜻함) 등 여성 혐오가 언급된 횟수는 월평균 8만회에 달했다. 남성 혐오가 일종의 운동처럼 시작된 작년 여름 이후 '한남충(한국 남성은 벌레와 같다는 신조어)' 등 신조어 언급 횟수는 지난해 5월 2건에서 6월 7596건으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최근 여혐과 남혐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다 보니 젊은 층에서는 남녀를 막론하고 결혼하면 손해라는 인식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세계 최저 출산율(1.24명)을 기록하고 있다.

한편 보고서는 우리 사회의 불신은 계층 간, 이념 간 갈등과 맞물려 '메르스'나 '세월호' 등과 같은 질병이나 돌발사고에서도 표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층면접 사례로 해군 출신의 기득권 집단을 대표하는 C씨(서울·67·남)는 "세월호 사건은 한마디로 여행가다 사고로 죽은 일종의 교통사고이기에 정부가 개입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오히려 소수의 세력이 문제를 증폭시켜 사회 분란을 조장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반면 사회운동세력을 대변하는 D씨(대전·41·여)는 "세월호는 정부가 사건의 전말을 감추기 급급하고 유족들이 금전적 이득만을 취하려 하는 것으로 호도하고 있다. 반드시 '음모'의 전말과 진실이 규명되어야 한다"는 시각이었다. 연구진은 "이 같은 양극단 사고방식은 갈등을 넘어 사회의 상이한 세력 사이의 타협과 화해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극한의 혐오(극혐) 갈등 양상에 대해 박경귀 국민대통합위 국민통합기획단장은 "익명성이 높은 온라인 소통이 활발해질수록 집단 극화(group polarization) 현상은 강화될 것이기 때문에 성숙한 토론문화를 가꾸어 나가는 게 시급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반감의 진원지라 할 수 있는 노동시장 부문에서 선제적 종합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남옥 고려대 연구교수 / 정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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