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공중전화 쓰려 줄 서고, 유목민이 핸드폰을.. 너무도 '다른 세상'

채승우 사진가 2016. 3. 10.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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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승우의 두 컷의 세계여행]

긴 여행 뒤에 쌓인 사진들은 여행의 기억처럼 뒤죽박죽이다. 엉뚱한 사진들이 짝을 맺는다. 그 사이에 나만의 여행의 이야기가 놓인다.

공중전화가 신기해보였다. 쿠바 수도 아바나의 거리에서였다. 아바나의 골목들은 특유의 이국적인 풍경을 뽐내고 있었다. 낡은 회색 건물들의 발코니에는 원색의 빨래가 날리고 있고, 그 아래 골목에서 피부 검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 체스를 두거나 에스프레소를 마시거나 살사 음악에 장단을 맞추고 있다. 여기까지는 쿠바를 여행하려고 했을 때 기대했던 모습이었다.

건물 모퉁이마다 사람들이 공중전화로 통화를 하거나, 그 뒤에 줄을 서서 자기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예측하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예측하지 못했기에 진정으로 낯선 모습이었다. 초원의 유목민마저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는 세상에 공중전화라니! 내가 세계일주를 하는 동안 공중전화로 전화하는 나라는 쿠바가 유일했다.

1962년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에 대한 무역 금수 조치를 실시한 후, 쿠바는 경제적 봉쇄 안에서 나름의 삶을 만들어왔다. 쿠바에도 휴대폰 통신망은 있다. 2008년엔 처음으로 일반인도 휴대폰을 가질 수 있게 되었는데 개통료만 월급 6개월치였다. 2009년 관영 매체의 발표에 따르면 100명당 4명 정도가 휴대폰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공중전화 뒤에 줄을 서는 이유다.

쿠바 섬 중남부의 오래된 도시 트리니다드에서 나와 아내가 묵었던 민박집 주인은 화가였다. 우리는 주민센터에서 살사춤을 배우고 오던 길에 민박집 주인 아저씨가 고물상 손수레에서 뭔가 사는 모습을 보았다. 선풍기 날개였다. 아저씨는 고장 난 선풍기를 고칠 수 있게 되었다며 좋아했다.

그 모습이 머리에 남았다. 정말 다른 세상에 온 것이 아닐까. 쿠바에 오기 전 나는 휴대폰 할부금 빚을 다 갚기도 전에 새 전화로 바꾸며 살았다. 소비가 미덕이냐고 물어도 할 말 없다. 쿠바는 그 점에서 달랐다. 다른 세상이어서 쿠바가 좋았다.

쿠바의 전화 사진으로부터 또 하나의 전화가 생각났다. 당나귀를 타고 염소 떼를 몰고 가던 이란 유목민 아저씨가 윗주머니에서 꺼내든 휴대폰이다. 아직도 세상 어딘가에서는 공중전화를 쓰는데 황야 한복판에서 휴대폰이라니! 이란 고원의 황무지에서는 유목민 약 150만명이 염소나 양을 기르며 산다. 가이드 투어를 신청해 자그레브 산맥의 중턱에 자리 잡은 유목민 마을을 찾아갔다. 포도로 유명한 도시 시라즈에서부터 차로 4시간이 걸렸다.

가이드 청년은 나를 몇몇 가족의 텐트로 데려갔는데, 그야말로 황량한 언덕에 텐트 하나가 버티고 있었다. 부모와 세 자녀가 플라스틱 물탱크 하나와 닭장 하나를 가지고 살았다. 우리는 흙바닥 위의 양탄자에 앉았다. 어머니가 우리에게 홍차를 내주는 동안 큰아들은 새로 사가지고 온 삼성 스마트폰 상자를 열고 있었다.

그는 엠피스리 플레이어 하나를 함께 샀다며 자랑했는데, 스피커가 달려 구식 트랜지스터 라디오처럼 보였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소풍 가기를 좋아하는 이란 사람들에게는 요긴한 물건이 분명했다. 천일야화 배경음악 같은 선율이 흘러나오자 가족들 모두의 표정이 밝아졌다.

텐트를 나오는데 큰아들이 따라 나왔다. 어디 가느냐고 했더니, 휴대폰 충전하러 간단다. 전기가 들어오는 도로 옆의 집까지 가서 충전을 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텐트에는 전기가 없다. '디지털 노마드(유목민)'라는 말이 있지만, 정말 디지털과 노마드는 어울리는 것일까, 생각이 들었다. 이란 정부는 이 유목민들을 정착시키기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 내 가이드 청년은 이미 많은 것이 변했고 앞으로 더 변할 것 같다고 아쉬운 듯 말했다.

쿠바 사람들은 쿠바를 '남미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라고 말한다.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고속버스나 민박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외국인용 화폐도 따로 있다. 현금인출기는 사용하기 어렵다. 아바나까지 직항은 없다. 미국 애틀랜타나 캐나다 토론토를 거쳐서 가는 비행편이 있다.

이란의 시라즈까지는 도하나 두바이를 거쳐 간다. 이란의 호텔 직원에게 유목민 투어를 문의하면 가이드를 연결해준다. 당일 방문도 가능하고 며칠 묵을 수도 있다. 화장실도 수도도 없는 텐트에서 지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채승우

사진가. 아내와 함께 1년간 세계 일주를 하고 나서 여행기 '여행 관광 방랑'을 냈다. 여행을 마친 뒤 어디선가 본 듯한 뻔한 사진이 남았다면 자신만의 여행에는 실패한 것 아닐까 생각한다. 아직도 좋은 여행사진을 찾고 있다. '채승우의 두 컷의 세계 여행'을 새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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