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텔링] 우울증에 생활고..'나홀로 육아' 53일 만에 극단의 선택

이유정 입력 2016. 3. 15. 02:17 수정 2016. 3. 15.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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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3년 만에 딸아이 얻은 김씨남편은 수입 적고 육아 안 도와줘"아이 혼자 키우는 것 같아 힘들다"시부모에게 도움 요청했지만 거절
뇌손상 인격장애, 만성 B형 간염 앓던 김유경(41·여·가명)씨, 둘째 출산 후 우울증까지 겹쳐
혼자 힘으로 아이 기르는데 출산으로 노래방 도우미 못하게 되면서 경제 사정마저 악화

각양각색의 나무와 꽃들이 갈색빛을 띠기 시작하던 지난해 9월 30일 오전 인천 소래포구 수변 광장. 광장의 한 벤치에 불안한 표정의 40대 여인이 앉아 있다. 눈에는 초점이 없다. 인천 남동경찰서 기동순찰대 소속 경찰관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묻는다.

“김유경(41·여·가명)씨. 서울 양천구 신월동 OO빌라 자택에 아이가 사망해 있어요. 그 아이 당신 아이 맞죠?”

“아뇨. 제 이름은 이은경이에요. 사람 잘못 봤어요.”

“저희가 신고를 받아서 내용을 다 알고 있어요. 본인 맞으시잖아요.”

경찰관이 갖고 온 김씨의 사진을 꺼내 보여주자 그제야 “내가 맞다”고 털어놓으며 고개를 숙였다.

방금 전 김씨는 공중전화에서 직장에 출근한 남편 유모씨에게 전화를 걸어 “나 죽는다”고 말한 뒤 툭 끊었다. 그 시간 경찰의 112 신고센터에는 “생후 2개월 된 아이가 죽어 있다”는 다급한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순찰차량 5대가 긴급 출동해 김씨를 찾아냈다.

김씨는 그날 오전 7시 남편이 출근하자 주방 가스레인지 위 찜솥에 들어 있던 미역국을 싱크대에 쏟아냈다. 찜솥에 물을 가득 받은 뒤 자고 있던 딸을 익사시켰다. 생후 53일 된 영아였다. 자살할 요량으로 김씨는 천가방에 과도를 넣고 집을 나섰다. 쪽지에 ‘딸은 내가 데리고 가겠다’고 쓰고서였다.

김씨는 먼저 집 뒷산으로 향했다가 한강공원으로 갔다. 여러 차례 자살 시도를 했지만 실패하고 바다에 뛰어들 생각으로 전철을 타고 소래포구로 갔다.

김씨는 “처음 경찰이 왔을 때 거짓말을 한 건 체포되면 죽을 수가 없어서였다”고 털어놨다. 전날 김씨는 남편과 육아 문제로 크게 다퉜다. 김씨가 “나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 같아 너무 힘들다. 집을 나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남편이 “집을 나가면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그게 도화선이 됐다.

숨진 딸은 2002년 결혼한 김씨 부부가 13년 만에 얻은 아이였다. 김씨는 아들 하나를 데리고 재혼했고 남편은 초혼이었다. 만성 B형 간염을 앓고 있던 김씨는 평소 피해의식이 심한 편이었다. 충동 조절이 어려운 뇌손상성 인격장애가 있었다. 출산 후 산후 우울증까지 겹쳤지만 경제 사정상 치료를 받지 못했다.

설비기사인 남편은 수입이 일정치 않아 사건 당시 한 달 생활비는 40여만원뿐이었다. 평소엔 김씨가 노래방 도우미로 일해 100만원 정도를 가계에 보탰지만 출산 이후 이마저 끊겼다. 정신·육체·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린 김씨의 육아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친정 식구들은 형편상 어려웠다. 시부모에게는 “함께 살면 안 되느냐”고 호소했다가 거절당했다.

남편 유씨는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뒤늦은 후회를 했다.

“평상시에 ‘잘 갔다 와’라고 하던 아내가 그날은 ‘안녕’이라고 말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경찰 조사에서도 김씨는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 진술을 하다가 갑자기 죄책감에 사로잡히는지 감정 기복이 심했다. “남편이 밉다. 시댁에서 외면 당해 이런 일을 저질렀다”며 분노하다가 “내 잘못이다. 모두에게 미안하다”고 태도가 바뀌었다.

사건 현장인 집 내부도 심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흙 묻은 유모차가 실내에 있었고 빨래·기저귀 등이 거실에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평소 주변 환경을 통제하지 못할 만큼 심리 상태가 불안했다는 방증이다. 검찰은 기소 전 김씨의 상태를 정밀 감정하기 위해 공주치료감호소에 그를 입원시켰다. 심리 전문가가 면밀하게 진단했다.

한 달여 감정 끝에 나온 감정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시어머니와 남편 등으로부터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피해의식과 열등감이 보임. 뇌손상 및 기능 저하로 인한 판단력 장애가 있는 인격장애 환자로 추정됨’.

서울남부지검은 지난해 11월 김씨를 살인 혐의로 기소하면서 치료감호를 함께 청구했다. 김씨는 현재 남부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최근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김씨 변호인은 “주변의 무관심 속에 육체적·정신적 질병을 홀로 짊어져야 했던 점을 참작해 선처해달라”고 말했다. 남편 유씨는 딸의 살인범이자 아내인 김씨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여동생은 김씨의 성년 후견인을 자청했다.

외딴 고립감 속에 육아를 하던 엄마가 아이를 살해하는 사건이 해마다 벌어지고 있다. 남편의 자살로 빚을 떠안고 우울증에 시달리던 30대 여성 김모씨가 3세 딸을 베개로 눌러 질식사시킨 혐의로 최근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생후 16개월 여아를 살해한 10대 싱글맘 송모씨도 비슷한 형량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배우자 등에 대한 분노가 폭력적 형태로 표출돼 아동학대를 넘어 살인이란 비극으로 막을 내리는 ‘고립맘’ 살인사건, 누가 막아야 하는가.

◆경찰, 신속 수사키로=경찰청 ‘국민제보’ 앱에 아동학대 신고 코너를 신설키로 했다. 신고 접수 즉시 수사에 착수한다. 총 349명인 학대전담 경찰관도 장기적으로 1200명까지 늘리기로 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아동학대를 근절하려면 국민의 신고와 제보가 중요하다”며 “신고 방법을 다양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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