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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박현정 인터뷰 "정명훈 부부가 직원 동원만 안 했어도 없었을 일"

박주연 기자 입력 2016. 03. 20. 18:56 수정 2016. 03. 2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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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4년 12월 그는 ‘마녀’였다. 익명의 서울시향 직원 17명은 그에게 상시적 폭언을 듣고 성희롱·성추행도 당했다며 서울시에 파면과 감사를 촉구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관련보도가 잇따랐고 그는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성희롱·언어폭력에 의한 인권침해가 인정된다는 서울시 인권센터 결정문은 그에게 치명적이었다. 박현정 전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 대표(54)는 그렇게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듯했다.

2016년 3월 ‘반전’이 일어났다. 서울지방경찰청이 지난 3일 박 전 대표에게 제기된 모든 혐의가 허위라고 발표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명훈 전 서울시향 예술감독(63)의 부인이자 미국 국적자인 구모씨(68)가 배후에서 직원들을 사주한 정황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표는 1년3개월만에 일단 누명을 벗었다. 경찰은 시향 전·현직 직원 10명을 기소 의견으로, 해외체류중인 구씨를 기소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한 커피숍에서 박 전 대표를 만났다. 검찰 수사를 앞둔 그의 표정은 밝았다. 경찰 수사 발표 후 그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건 처음이다. 7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원하는 건 권선징악”이라며 “정 감독 부부는 하루빨리 귀국해 검찰 조사를 받아 죄값을 치르고,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는 지난 16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서울시 인권센터의 부실조사가 누명을 벗는 단초가 됐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2014년 12월2일 시향 일부 직원의 호소문 발표 후 막말과 성희롱·성추행 등 ‘가해자’로 몰렸지만 경찰 수사 결과 모두 무혐의로 결론났다.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경찰 수사 결과 혐의를 벗었는데 심경은?

“이 모든 상황이 슬프다. 추악한 일로 언론에 오르내리고 경찰서를 드나들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 생매장됐다가 간신히 살아난 기분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난 하루에 신문을 4개 이상 정독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날 이후 신문도, 인터넷도, TV도 볼 수 없었다. 나를 공격하는 말들이 무섭고 너무 힘들었다. 연예인들이 왜 언론보도나 댓글에 상처입고 자살하는지 알 것 같았다. 심지어 성범죄 전문변호사 홍보 블로그와 성희롱 교육에 내 사례가 사실인 양 등장했다고 들었다. 가장 참담한 건 성범죄 누명을 쓴 것이다. 1994년 직장 내 성희롱 개념을 처음 도입한 내가 20년만에 성희롱 교재의 가해 사례로 추락했으니까.”

-94년이면 삼성화재에 재직할 때인가?

“그렇다. 그해 1월 나는 삼성의 박사인력 채용에 응시해 삼성화재에 입사한 후 삼성인력개발원에 파견됐다. 삼성은 93년부터 여성 대졸인력을 대규모로 채용하기 시작했는데 활용방안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다. 미국·유럽을 다니며 아이템을 찾고 교재도 만들었다. 그 중 하나가 직장 내 성희롱 교육이었다. 당시는 어떤 행위가 성희롱인지 개념조차 없던 때다. 업적으로 생각해 자부심이 컸는데 그게 무너진 것이다.”

-경찰 수사는 어떻게 준비했나?

“힘들었지만 누명을 벗을 유일한 희망이었다. 정신없는 속에서도 호소문이 유포된 2014년 12월2일부터 기억나는 일들을 틈틈히 기록했다. 처음엔 뭐가 뭔지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일련의 과정이 다 짜여진 각본이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경찰에 내가 기록한 내용들과 이메일, 서울시 인권센터 결정문, 시 보도자료 등을 제출했다.”

-경찰 수사에서 반전된 과정이 궁금하다.

“내 말을 전혀 믿지 않던 경찰의 태도가 조금 바뀌기 시작한 건 역설적이지만 시 인권센터 결정문 덕분이다. 결정문에 적시된 내용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증빙자료를 내가 제시했다. 일례로 내가 여직원에게 ‘너 음반 담당이지? 미니스커트 입고 니 다리로라도 음반 팔아오라’고 했다는데 그 말을 들었다는 시기에 해당 직원은 음반담당이 아니었다. 또 예술의전당 사장님 이하 직원들과 서울시향 직원들이 가진 회식 자리에서 나한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남자직원이 해외출장중인 동료에게 그 내용을 카톡으로 전했다는데, 해당 달에는 해외출장자가 없었다. 인권센터는 나를 면담한 녹취록도 왜곡했다. 그러고선 작년 11월 서울시 행정사무감사에서 이를 문제삼아 녹음파일을 요청하니까 이미 폐기했다고 말했다. 인권센터의 부실조사가 드러나 경찰이 수사에 본격 착수했으니, 내겐 기적같은 일이었다.”

-정명훈 전 감독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고 6억원 상당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시 인권보호관 3명과 이 사건을 최초 보도한 일간지 기자, 서울시향 직원 등 5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도 냈다.

“내가 그동안 언론보도에 대응하지 않은 게 기사 내용이 사실이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정 감독 측에서 말했다고 들었다. 또 정 감독은 기자회견과 언론 인터뷰, 단원들에게 보낸 편지 등 모두 3차례에 걸쳐 거짓말로 나를 비난했다. 의도를 갖고 나를 생매장한 이들의 책임을 묻을 것이다.”

익명의 17명 시향 직원들의 호소문 발표로 막말과 성희롱·성추행 등 혐의를 받은 박현정 서울시향 대표가 2014년 12월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반박 기자회견을 시작하기 전 인사를 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정 감독과의 관계가 틀어진 결정적 계기가 있었나?

“정 감독 처형의 친구이자 막내아들의 피아노 선생님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그 분은 정 감독이 2006년 시향 예술감독으로 처음 취임할 당시 모시고 온 분이다. 그 분은 시향 명함을 가지고 정 감독의 개인재단인 ‘미라클 오브 뮤직(MoM)’의 협찬을 따오고, 정 감독 막내아들이 지휘하는 부산소년의집 알로이시아 오케스트라 지원도 했다. 그러다 70세를 목전에 두고 2013년 퇴직했다. 서울시 특별감사 지적과 서울시의회의 개선요구로 시향에 정년제도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정 감독은 내게 그 분의 복직을 거듭 요구했다. 나는 ‘서울시 입장이라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이후 정 감독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렇다고 정 감독과 사이가 나빠졌다는 게 이해가 잘 안 간다.

“MoM 협찬에 차질이 빚어져서였을 것이다. 정 감독은 서울시향과의 계약을 위반하고 MoM 펀딩을 위해 개인 피아노 리사이틀도 열었다.”

-지난해 2월 기자회견에선 “서울시향을 개혁하려는 데 대한 반발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사실 개혁이라고 할 수도 없다. 정 감독이 사용하는 항공료와 호텔비를 법인카드로 결제하라는 것과, 시향과 관련한 어떤 계약서든 시향 자문변호사에게 자문 받으라고 한 게 개혁인가? 난 그저 상식적인 조직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2015년 1월23일 서울시 특별감사에서 정 감독을 둘러싼 여러 문제점들이 대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예술감독의 관리감독자인 박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시향 대표를 선임할 때 박 시장 마음에 든 후보도 정 감독이 OK 하지 않아 무산된 조직이다. 그런데 어떻게 관리감독이 가능하겠나? 누구도 정 감독이 하는 일에 토를 달지 않았다. 시스템 문제인데 나는 지난 10년간 서울시가 감사를 뭘 했는지 의문스럽다. 정 감독과 직접 소통도 안됐다. 만나거나 논의를 하려면 매번 비서와 부인, 두 단계를 거쳐야 했다.”

-특별감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2015년 서울시는 정 감독과 재계약하려 했는데…

“예상한 결과다. 박 시장은 정 감독과의 재계약을 위해 나를 내쫓았으니까.”

-시향 직원들이 호소문을 내고 퇴진을 요구한 하루 전날 박원순 시장을 독대한 것으로 안다.

“그에 앞서 서울시 정무비서관과 행정1부시장 등으로부터 2014년 10월14일 정 감독이 ‘직원 10명이 서명한 연판장’을 박 시장에게 전달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정 감독과 진은숙 상임 작곡가가 나를 해임하지 않으면 서울시향과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것도 들었다. 내가 그만 두겠다고 했다. 시향 대표의 주 역할은 연간 40~50억의 사업비를 마련하는 건데, 나를 싫어하는 이들을 위해 협찬을 유치하러 다니고 싶지 않았다. 한달쯤 후 박 시장 수행비서에게 연락이 와서 12월1일 박 시장을 만나 50분간 독대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탄원서를 보여달라, 음해성 투서가 들어오면 무조건 믿으시느냐, 소명기회도 주고 사실조사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시의회 회기가 끝난 후 그만둘테니 2~3주만 말미를 달라 했다. 박 시장은 ‘애들이 터뜨리려고 한다. 왜 이렇게 어거지를 부리냐’고 하더니, 나가버렸다. 그날 자정부터 시향 직원들의 호소문 관련 기사가 떴다.” (독대 대화내용에 대해서는 양측 주장이 엇갈린다. 서울시 관계자는 “박 시장이 ‘당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가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한 커피숍에서 이뤄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에 응하고 있다. / 정지윤기자

-문화예술계에도 무소불위 권력이 있다고 생각하나?

“뼈저리게 실감했다. 문화부 기자나 평론가마저 정 감독이 티켓까지 판매된 시향 일정을 개인 일정 때문에 바꿔도, 목 디스크를 이유로 돌연 공연을 펑크내도 지적하지 않았다.”

-경찰 발표대로라면, 부하직원들이 상사가 하지도 않은 언행을 성희롱, 성추행이라는 범죄행위로 몰아간 셈이다. 진실이 어떻든 박 대표도 조직의 수장으로서 직장 내 인간관계나 리더십에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닌가?

“정 감독 부부가 나를 내쫓기 위해 직원들을 앞세우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상식적으로 직장 내 인권유린을 당했다면 국가인권위에 제소하거나 서울시 인권센터에 조사를 의뢰하는 게 우선이지 않나? 세상 어떤 조직의 직원들이 대표가 싫다는 이유로 호소문을 발표하고 고소까지 하나?”

-그럼 방송에 공개된 박 대표의 욕설 녹취파일은 어떻게 된 건가?

“그날 격앙된 상태였고 직원들에게 한 말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앞 뒤 맥락을 자른 채 편집된 것이다. 내가 말이 직설적이고 거침없긴 해도 앞에 있는 사람을 욕한 적은 없다. 그날은 유럽 투어 직후였다. 시향 예산과 출연료 수입으로도 모자라 발품을 팔아 협찬과 후원을 겨우 받아 간 공연이었다. 연주 후 파티가 열렸는데 헤드테이블엔 정 감독 부부, 정 감독의 소속사이자 서울시향의 해외투어 주선 댓가로 거액의 기획료를 챙기는 영국회사 아스코나스홀트(AH) 관계자들, 도이치 그라마폰 부사장 등 정 감독의 지인들만 앉았다. 시향 대표인 내 자리도 없었고 파티 분위기는 그들 중심이었다. 시향 관계자와 단원들, 서울에서 플래카드까지 만들어 따라온 응원단도 배제됐다. 시향과 대한민국이 무시받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AH와 정 감독이 자신들과 AH 소속 협연자의 수익을 늘릴 목적으로 서울시민의 혈세가 들어가는 시향의 해외투어 일정을 짠다는 사실도 이날 깨달았다. 녹음파일은 입국 후 첫 출근날 팀장회의에서 AH를 비난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난 그런 돈 못 모은다. 다른 X나 XX 불러 모으라’고 했다. 나는 팀장들이 같이 공분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검찰 수사가 남아있다.

“정 감독 측에서 선임한 변호인은 이 사건이 배당된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의 부장을 2년 전에 했던 분이다. 검찰이 문화권력이든, 정치권력이든 눈치보지 말고 법앞에서 평등하게 수사해주길 희망한다. 2014년 10월부터 직원들과 연락한 서울시 정무비서관과 나의 녹취록을 왜곡한 시민인권보호관도 조사해주길 바란다.”

-정명훈 예술감독은 서울시향을 아시아 정상급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 사태로 정 감독을 잃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예술가는 편법·불법을 저질러도 괜찮다는 건가? 정 감독은 대한민국에서 엄청난 혜택과 사랑을 받았다. 그러면 조국의 법도 준수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사법처리인가?

“권선징악이다. 내겐 2015년이 없다. 아직도 일이 터진 2014년 12월이 엊그제 같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한다. 하지만 죄책감도, 반성도 없이 계속 거짓말하는 걸 용서할 수 없다. 주동자도 있고 조직내 왕따가 두려워 단순 가담한 사람도 있다. 정 감독 부부도 하루빨리 귀국해 검찰조사를 성실히 받고, 죄값도 치르시라고 말하고 싶다. 박 시장 또한 행동엔 책임이 따른다고 늘 강조하셨으니 그 말씀을 스스로 지켜주시기 바란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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