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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마저 짓밟힌 18세 미혼모..비극의 시작은 가정내 폭력

이은아,홍장원,안정훈,홍성윤,정순우,배미정,백상경,연규욱,홍성용,박윤구 입력 2016. 03. 28. 17:54 수정 2016. 03. 29.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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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폭력 지켜본 젖먹이..18세 엄마 "제발 기억 못했으면"아동학대 80%는 부모가 저질러..기관·학교·사회 협업 매우허약

◆ 우리 마음속 10敵 / ② 아동학대·성희롱 둔감 ◆

"우리 아이는 아이 아빠를 닮지 않는 게 소원이에요."

18세 소녀 손지수(가명) 양의 소원이 애달프다. 지수는 이제 막 돌을 앞둔 아들을 둔 엄마지만 세상은 '미혼모'라고 부른다. 한창 부모 사랑을 받으며 꿈을 꽃피울 나이인 지수가 '미혼모' 꼬리표를 달고 살게 된 것은 가정 폭력 때문이었다.

어려서 부모가 이혼하고 아버지의 잦은 폭행으로 집에 정을 붙이기 어려웠던 지수. 뮤지컬 배우를 꿈꿨지만 예상하지 못한 임신으로 꿈을 접어야 했다. 고등학교 진학마저 포기했다. 그런 지수에게 남자친구는 폭행을 일삼았다. 아들 지운(가명)이 위험한 처지에 놓이자 지수는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고, 남자친구는 결국 구속됐다. 아버지와 남자친구의 연이은 폭력은 18세 소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지난 14일 오후 2시 또래 친구들이 한창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을 시간, 지수는 10㎡(3평)가 채 안 되는 단칸방에서 아들 지운이와 취재진을 맞았다. 방 한쪽에 켜진 TV 속 연예인을 보며 좋아하는 지수는 영락없는 18세 소녀였다. 지운이도 낯선 이들의 방문에 신나했다. 하지만 두 아이의 환한 표정 뒤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감춰져 있었다.

"다섯 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아빠와 새 아줌마랑 같이 살았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턴가 두 분이 싸울 때마다 아빠가 저한테 스트레스를 풀기 시작했어요. 그럴 때마다 친구 집에 도망가곤 했는데 아빠가 미안하다고 해서 다시 집에 들어가면 또다시…."

아버지의 체벌은 항상 사소한 부부싸움에서 시작됐다. 그러다 부부싸움이 끝나면 아버지는 딸을 구타하는 것으로 화를 풀었다. 친구 어머니의 소개로 청소년 쉼터로 피신했지만 오래 있을 만한 곳은 아니었다. 지금도 지수는 쉼터에 가라는 주변 권유를 거부하고 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학대 피해 아동을 위한 전용 쉼터는 전국에 47개인데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1개소당 7명씩 329명에 불과하다. 연령은 물론 남녀 성별·장애 여부와 같은 특성별로 아동을 선별 수용하기에 쉼터는 턱없이 부족하다.

지수는 고향 친구들이 많이 사는 경기도에 살고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한 후 연락이 끊긴지 오래다. 지금도 지수는 외로움 때문에 가끔씩 집을 비워둔 채 지운이와 친구집을 전전한다.

지수는 중학교 때 뮤지컬 아카데미를 다니며 꿈을 키웠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었다. 아버지의 잦은 폭행으로 집보다는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지수는 친구 소개로 만난 동갑내기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덜컥 임신까지 하게 됐다.

남녀관계나 성관계 등에 대해 조언해주고 어려움에 처한 지수를 도와줄 어른도 주변에 없었다. 임신은 지수의 삶을 예상치 못한 길로 이끌었다. 고등학교 입학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더 공포스러웠던 건 남자친구의 폭력이었다. 화날 때마다 손찌검하는 남자친구의 돌변한 모습은 어릴 적 아버지 모습과 겹쳐 더욱 무서웠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지운이가 지켜보고 있었다. 아동을 직접 때리지 않아도 아이가 보는 앞에서 다른 사람을 폭행하는 것도 엄연한 학대다.

지난 14일 경기도의 한 단칸방에서 아들 지운이(가명·오른쪽)를 안고 인터뷰하던 지수(가명·왼쪽)가 지난날을 떠올리며 눈물을 닦고 있다. [이승환 기자]
어렸을 때처럼 참고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한 지수는 용기를 내 경찰에 신고했다. 남자친구는 현재 구속된 상태다. 지수는 아직도 그때 충격이 며칠 전 일인 것처럼 생생하다. 이날도 그때 일이 떠오르자 눈물이 맺히고 입술이 떨려 말을 더 잇지 못했다.

"(남자친구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요. 지운이는 어떨지…. 지운이가 제발 아빠를 닮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이에요."

지수의 머릿속은 아들 걱정으로 가득했다. 아들에게만은 불행한 기억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게 지수의 가장 큰 바람이다. 지수는 홀로 꿋꿋하게 지운이와 새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지운이가 저랑 떨어져 있으려고 하지 않아요. 제가 화장실에만 가도 문을 두드리면서 울어요. (그때 충격 때문에 더) 불안해하는 건 아닌지. 일하러 나가려면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아직 미성년인 지수가 홀로 지운이를 키우기는 쉽지 않다. 매달 정부에서 기초수급 지원금과 양육수당이 나오지만 월세를 내고 나면 지운이 기저귀와 분유 값, 식비를 대기에도 버겁다. 뮤지컬배우의 꿈은 포기한 지 오래고, 검정고시를 준비할 생각조차 못 하고 있다.

"지운이를 잘 키우려면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하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답답하죠. 학교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고, 검정고시라도 준비해야겠지만…. 지금은 돈 버는 게 더 급해요. 아르바이트든 뭐든 할 거예요."

주변에서는 이런 지운이를 홀로 키울 수밖에 없는 지수 사정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다. 4대악 근절의 일환으로 관할경찰서 학대전담경찰관(APO)이 이들 모자 상태를 주기적으로 체크하고 있지만 거기까지가 한계다. 권영선 APO는 "보호자 지원이 필요하지만 과거 가정폭력에 노출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보호자에게 의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학대를 예방하려면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중심으로 학교, 복지관, 지역아동센터, 병원 등 지역사회 협업 체계가 작동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사회 안전망이 매우 허약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수는 아들 지운이가 혹시나 아파서 병원 갈 일이 생길까봐, 제대로 못 먹이게 될까봐 하루하루가 근심이다. 늘 좋은 엄마가 돼 주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 "잘 키울 수 있다고, 잘 키울 거라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지만 당장 내일을 생각하면 걱정이죠. 지운이는 저 같은 경험을 하게 하고 싶지 않은데…. 잘할 수 있겠죠?" 18세 소녀의 가녀린 물음에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특별취재팀 = 이은아 부장(팀장) / 홍장원 기자 / 안정훈 기자 / 홍성윤 기자 / 정순우 기자 / 배미정 기자 / 백상경 기자 / 연규욱 기자 / 홍성용 기자 / 박윤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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