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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상무차관, 공정위와 '수상한 만남'

나현준 입력 2016. 03. 30. 17:46 수정 2016. 03. 31.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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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기업 반론권 요구..오라클·퀄컴조사에 영향력 행사 논란
공정거래위원회가 오라클과 퀄컴 등 미국계 회사에 대한 조사 및 심의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 고위 관료가 공정위를 비공식 방문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이에 이들 기업에 대한 공정위의 결정이 계속 늦춰지는 게 미국 정부의 압박 때문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30일 복수의 공정위 관계자에 따르면 스테펀 셀리그 미국 상무부 차관이 지난 1월 25일 우태희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과 공식 면담한 직후 자리를 옮겨 김학현 공정위 부위원장과 비공식 면담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에서는 미국 기업 이익을 대표하는 상무부 차관이 공정위를 방문한 것이 사실상 처음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셀리그 차관은 "한국 공정위가 피조사업체의 반론권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취지에 어긋나는 행위"라는 내용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셀리그 차관은 현재 공정위가 조사·심의 중인 오라클과 퀄컴 등 구체적인 기업 이름은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공정위 내부에서는 사실상 오라클·퀄컴 건과 관련한 무언의 압박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우리 법 체계상으로 반론권을 충분히 보장하고 있음에도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무역대표부(USTR) 등을 통해 미국 기업의 항의가 많이 들어온다"며 "최근에는 상무부 차관까지 방문했으니 '우회적으로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도 "현재 조사 중인 사건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미국 상무부 차관이 와서 피조사업체의 반론권을 언급한 것은 부적절하게 비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현재 조사 중인 오라클 건은 2014년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한 후 지난해 10월 전원회의에 심사보고서가 상정됐다. 하지만 그 이후 다섯 달이 넘도록 결론이 나지 않고 있어 의혹이 커지는 상황이다.

만약 오라클이 기업용 소프트웨어 차기 버전을 끼워팔았다는 혐의가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결정 날 경우 전 세계 최초 제재 사례가 될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경쟁 당국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미국과 한국 정부 모두 민감하게 보는 사안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2006년 마이크로소프트(MS), 2009년 퀄컴 등과 관련한 선례를 봤을 때 다국적 기업과 관련된 심사는 사안이 복잡해 심의 결론 자체가 늦어지는 사례가 왕왕 발생한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한편 셀리그 차관을 만난 김학현 공정위 부위원장은 "오라클과 관련된 어떠한 내용도 언급하지 않았으며, 반론권 보장 등도 원론적인 차원에서만 언급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오라클은 전 세계 기업용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DBMS) 시장 40%를 차지하는 미국계 다국적 IT기업이다. DBMS란 컴퓨터 운영체제(OS)와 더불어 기업이 서버를 구축할 때 필수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시장 점유율이 높다 보니 호환이 잘된다는 이점 때문에 세계적으로 많은 공공기관·기업들이 오라클 제품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오라클은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약 44조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오라클은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이 같은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고 있다. 오라클 제품의 한국시장 점유율은 약 58%에 달하며 지난 4~5년간 유지·보수 서비스를 기업들에 팔면서 다음 버전 소프트웨어를 끼워팔았다는 이유로 공정위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끼워팔기를 통해 오라클이 2014년 한 해 한국시장에서 벌어들인 돈은 2500억원으로 추정되며, 이는 오라클 한국지사 매출의 약 30%를 차지한다. 공정위는 오라클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불공정 계약을 주도했고, 이를 통해 IBM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다른 경쟁 업체와의 정당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와 기업들은 한국 공정위의 오라클 조사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공정거래 관련 변호사들은 "한국과 미국의 법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자주 빚어지는 문제"라고 말한다. 미국 경쟁 당국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통상적으로 시장 점유율이 70% 이상일 경우에만 시장지배적 지위를 통해 경쟁을 제한할 수 있다며 조사에 착수한다. 반면 한국은 시장지배자 지위의 기준이 점유율 50%다.

 또 스테펀 셀리그 미국 상무부 차관이 지적한 '반론권' 문제도 법체계상 차이로 인해 오해의 소지가 있다. 법원의 재판 절차와 비슷한 심의 절차를 밟게 될 경우 미국 FTC는 경쟁 제한 행위를 한 피조사 업체뿐만 아니라 해당 업체와 경쟁관계에 있는 업체의 영업자료까지 모두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경쟁업체들이 동의해야만 조사 자료를 피조사 업체에 공개할 수 있다. 즉 오라클은 IBM과 MS 등이 동의하지 않는 한 이들이 공정위에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자신들이 경쟁을 제한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다.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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