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포세대? 나의 한 표는 포기못해

2016. 3. 3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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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D-13]1997년생 '나의 첫 투표'새내기 유권자 100명의 생각은
[동아일보]
올해 열아홉 살인 1997년생의 일기장에는 다사다난(多事多難)한 국가적 사건이 기록돼 있다. 1997년 세상에 태어났더니 외환위기가 터졌다. 부모님이 금 모으기 운동에 돌반지를 기증한 탓에 돌반지 없는 97년생이 흔하다. 2009년 초등학교 6학년 때 신종인플루엔자A(H1N1)가 유행해 수학여행이 대거 취소됐다. 2014년 4월엔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동갑내기 단원고 학생 250명의 안타까운 죽음과 실종을 목격했다. 지난해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악조건 속에서 대학입시를 준비해야 했다.

2주 앞으로 다가온 4·13총선에서 1997년생(1월 1일∼4월 14일 출생)이 생애 첫 투표를 한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25일부터 30일까지 4·13총선을 주제로 첫 투표권 행사를 앞둔 1997년생 100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대학 입학과 동시에 취업을 걱정하고 세기의 바둑 대결에서 인간을 이긴 알파고를 보면서 남은 일자리마저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고 있다. 그럼에도 투표로 세상을 바꿔보겠다며 불운과 고난을 이겨낸 ‘극복 세대’로 불러 달라고 했다. 약 20만 명으로 추정되는 1997년생 첫 투표자들을 다 대변할 순 없지만 그 세대가 이번 선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가늠할 수 있었다.

97년생은 존재감을 투표로 알리겠다는 각오가 강했다. 응답자 100명 중 87명이 투표 의사를 밝혔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19세 유권자 중 47.2%가 투표에 참여한 것에 비하면 높은 수치다. 서울대 임모 씨는 “우리 또래는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행동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깨달았다”며 “청년 투표율이 높지 않으면 정당은 계속 우리를 무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균관대 강창현 씨는 “대학생을 위한 공약을 찾을 수 없어 무효표를 던지러 투표장에 가겠다”며 “투표율을 높여야 우리를 의식하고 나은 정치를 할 것 같다”고 했다.

97년생은 투표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컸다.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건강한 시민의식과 벼랑 끝에 놓였다는 절박함이 공존했다. 서강대 최순호 씨는 “다 포기하는 ‘N포세대’(수학에서 부정수를 뜻하는 ‘n’에서 따와 결혼 취업 등 여러가지를 포기한 세대를 뜻함)로 불리는 우리지만 선거마저 포기할 수 없다”며 “생애 첫 투표, 첫 시작을 잘하면 세상을 바꾸는 ‘극복 세대’가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한국정치학회장인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1997년생은 외환위기와 세월호 침몰,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국가와 정치를 고민하게 됐다”며 “이를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한 고민이 많아 투표에도 많이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후보자 선택 기준은 능력보다 청렴을 택했다. 투표 선택 기준은 청렴한 후보(36명)가 가장 많고 능력 있는 후보(30명), 후보자의 정당(12명) 등의 순이었다. 청렴한 후보를 택한 데는 권력층의 비리와 ‘금수저 세습’을 향한 분노가 크게 작용했다. 인하대 박진성 씨는 “후보자의 공약과 스펙이 훌륭해도 당선되고 나면 제대로 일하지 않았다”며 “자기 욕심 없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깨끗한 후보를 찍겠다”고 말했다.

경제위기를 타개할 수 있다면 후보자의 흠결을 눈감아 줄 수 있다는 답도 많았다. 여기에 청렴성은 이미 포기한 지 오래라는 냉소도 녹아 있다. 중앙대 박웅빈 씨는 “이젠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19대 국회는 각종 민생법안 처리를 외면하고 정쟁에만 몰두한 역대 가장 무능한 국회로 불린다. 97년생의 국회를 향한 분노도 상당했다. 서울대 김민준 씨는 “정당 당론은 정해져 있고 각 정당의 힘 있는 사람들의 주장이 그 정당의 당론이 되는 것 같다”며 “무조건 상대 정당에서 나온 의견은 반대하고 발목을 잡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20대 국회를 향한 당부와 부탁도 많았다. 청춘을 위한 정책 고민 없이 청춘을 마케팅 수단으로 삼는 정당에 대해선 따끔하게 비판했다. 성균관대 설모 씨는 “어린 나이를 무기로 앞세운 청년 정치인을 보고 싶지 않다”며 “젊다면 새로운 어젠다를 제시해야지 이미지에만 호소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인의 ‘노오력(노력)’ 부족 탓으로 돌리는 기성 정당도 비판했다. 고려대 이해랑 씨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무책임한 말만 하지 말아 달라”며 “행복한 청춘 만들기는 국가의 일이니 청년 개인의 노력 문제로 치부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박훈상 tigermask@donga.com·허동준·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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