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집회 동원 탈북 할아버지 "하루 2만원이 어디야"

입력 2016. 4. 24. 19:56 수정 2016. 4. 24.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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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어버이연합 관제데모 논란

대부분 생활고 겪는 60~70대
집회 나가는 건 ‘어르신 신종 알바’
“7~8년 전 4만~5만원 받던 돈
참여자 늘어나 2만원으로 줄어”

세월호 반대 집회 등 줄줄이 참석
돈 대신 가전제품·김 등 받기도
정부 임대아파트에 주로 살아
지역 총책이 100~200명씩 연락

“집에서 놀면 뭐하겠어.”

10여년 전 북한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북한이탈주민(탈북민) 나영식(가명)씨가 2014년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씨는 그해 여름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KBS) 건물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했다. ‘케이비에스가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일본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 등의 내용이 담긴) 강연 내용을 악의적으로 짜깁기해 왜곡보도했다’고 규탄하는 내용의 항의집회였다. 평소 알고 지내던 탈북단체 관계자로부터 연락을 받은 나씨는 서울 종로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집회 장소로 이동했다. 일행 200여명 중에 50여명은 탈북민이었다. “케이비에스가 문창극 총리 시키면 안 된다고 폭로한 거 같아. 그래서 ‘왜 이렇게 좋은 사람을 국무총리 안 시켜주냐’ 한 시간 떠들다 돌아왔지. 그렇게 우르르 (몰려가) 했지.” 나씨는 그날 현금 2만원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같은 해 경기도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유죄판결 촉구 집회와 세월호 반대 집회 등 보수단체의 집회에 서너 차례 참석하며 2만원 용돈벌이를 했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과 대한민국재향경우회 등 보수단체들이 탈북민들에게 일당을 주고 보수단체 집회에 ‘동원’했다는 것이 사실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보수단체들이 생활고를 겪고 있는 탈북민에게 푼돈을 쥐여주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탈북민들은 이른바 ‘지역 총책’ 등을 통해 알음알음 집회 참여를 권유받는다. 탈북민은 주로 인천과 서울 노원·양천 등 정부에서 지급하는 임대아파트를 중심으로 모여 사는 경우가 많은데, 그중 인맥이 두터운 탈북민이 집회 동원 연락책을 맡아 주변 탈북민에게 ‘며칠 몇시까지 지하철 무슨 역 몇번 출구에서 내려 어디에 가면 된다. 이를 아무개가 조직한다’는 내용의 전화나 문자를 돌리는 식이라는 것이다. 한 탈북단체 관계자는 “탈북자들을 불러달라고 하면 100명이든 200명이든 동원하는 브로커가 있다”고도 전했다.

탈북민들은 집회에 한 번 참여할 때마다 2만원 정도의 돈을 지급받는다. 돈 대신 도시락이나 가전제품, 김 같은 경품을 주는 등 “(방식은) 주최자가 조직하기 나름”이라는 게 이 관계자의 얘기다. 한 탈북민은 “집회에 참여하는 탈북민이 늘면서 7~8년 전에는 4만~5만원이던 돈이 2만원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탈북민에게 집회 참여는 ‘이삭주이’와 다름없는 일이다. 이삭주이는 농작물을 거두고 난 뒤 땅에 떨어진 낟알이나 채소 등을 줍는다는 뜻의 북한말이다. “푼돈이라도 아쉬운 노인들이 집회에 참여하면서 2만원씩 모아 생활비에 보탠다”는 의미에서다.

실제 집회에 참여하는 탈북민을 보면 대부분이 60·70대 고령자다.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고령의 탈북민들은 정부에서 지급되는 40만~50만원의 기초생활수급비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러나 이 돈으로는 기본적인 의식주도 해결하기 힘든 탓에 2만원이라도 쥐여주는 집회로 향하게 된다는 것이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 천안함 폭침 등 사건이 잇따라 발생한 2012년 북한을 규탄하는 내용의 집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는 탈북민 박민순(가명)씨는 “집회에 나가는 탈북민들은 최하층 빈민”이라며 “동네에서 박스 줍기라도 하려고 해도 다 터줏대감들이 있다 보니, 옛날엔 (집회에 참가하면) 5만원을 줬다지만 지금은 2만원, 나중엔 1만원만 줘도 능히 동원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탈북민 복지사업을 하고 있는 단체 관계자는 “(이 사람들에겐 집회를 주최하는 게) 좌파든, 우파든 그런 건 알 바 아니다. 젊은 사람들은 아르바이트라도 구할 수 있는데, 탈북민에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더 어렵다. 집회 참여는 생계 유지를 위한 어르신들의 신종 아르바이트와 같다”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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