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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벼룩시장에 내리쬔 봄의 마술

입력 2016. 04. 2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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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

독일 베를린 벼룩시장. 맨몸으로 고향을 떠나온 난민들에게는 생필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고마운 장소다.

봄이 왔다. 거리가 봄기운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베를린의 봄은 서울의 봄과는 모습이 많이 다르다. 따스한 햇살도 귀하디귀할뿐더러 사람들의 옷차림도 언뜻 보기엔 겨울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꼭 섭씨 몇 도, 일조량 몇 프로가 되어야 봄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누구에게나 봄은, 봄이 왔다고 느껴지는 그 순간부터다.  

봄이 되면 특히 활기를 띠는 곳은 벼룩시장이다. 왠지 모르게 낡은 것을 정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게 만드는 것은 봄의 마술인가 보다. 여전히 파카 차림에 목도리를 두르고도 표정만은 한층 여유로워진 사람들이 벼룩시장으로 모여든다.  

솔직히 고물 시장이라고 해서 다 같은 고물 시장은 아니다. 버려지기 일보직전의 물건들이 모여 있는 그야말로 쓰레기 시장부터 앤티크 가구와 골동품이 즐비한 보물 시장까지 그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그중에서도 우리 동네 고물 시장은 베를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쓰레기 시장이다. 손님도 상인도 대부분 외국인, 그중에서도 터키인이 가장 많다. 산보도 할 겸 터키 음식을 사 먹거나 간단한 물건들을 찾으러 우리는 그 시장에 종종 들른다.  

지난주 일요일 남편과 나는 꽤 오래간만에 그 시장을 찾았다가 적잖이 놀랐다. 상인들도 그대로고 물건들도 그대로였는데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손님들로 꽉 차 시장 안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가 넘쳐 보였기 때문이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절대로 팔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물건들이 팔려 나가는 모습이었다. 흩어진 색연필이며 낡은 슬리퍼, 짝짝이 살림살이들이 내 눈앞에서 속속 사라져갔다. 여느 때 같으면 그저 핸드폰이나 뒤적이며 무료히 앉아 있었을 상인들이 그날은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서서 장사에 여념이 없었다. 시장은 이미 우리가 알던 그 쓰레기 시장이 아니었다.  

나는 한참 동안 멍청하게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낯선 옷차림의 사람들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했을 때 얼마 전에 우리 동네에 새로운 난민보호시설이 마련되었다는 뉴스가 머릿속을 휙 훑고 지나갔다. 그러는 사이 얼굴을 아는 몇몇 상인들이 인사를 건네왔다. 그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몸만 간신히 빠져나와서 이 비싼 물가에 어떻게 필요한 걸 다 새로 살 수 있겠어. 저 사람들이 살 길은 여기뿐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그 남자의 얼굴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희망 찬 얼굴이었다.  

그 뒤로 얇은 티셔츠 차림의 세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딸로 보이는 한 소녀가 케밥 한 개를 한입씩 번갈아 가며 나누어 먹고 있었다. 반팔 블라우스에 맨발에 까만 구두를 신은 그 어린 소녀는 한순간도 엄마 손에 들린 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며 왜 나는 괜히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풀어 다시 고쳐 둘렀는지 모르겠다.  

봄이 왔다. 2016년 봄은 손님을 데리고 왔다. 부디 저 손님들에게 베를린의 첫봄이 너무 쌀쌀맞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글 사진 이재인 재독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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