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왜 옥시만 때리나?

2016. 5. 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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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가습기 살균제 판매한 다른 대기업들 혐의엔 눈감아
세월호 참사때 유병언 개인에 시선 묶어놓은 행태 반복

옥시(레킷벤키저코리아)가 요즘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한 검찰 수사가 옥시에 집중하고, 수사를 뒤따라가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관행 때문일 것이다. 살균제 판매량이나 피해자의 규모로 보아 옥시가 수사와 보도의 초점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요즘 언론 보도가 애경, 롯데, 이마트, 홈플러스 등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다른 대기업들은 제쳐두고, 유독 ‘옥시’에만 집중하는 것은 정도가 지나치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피해자의 규모(사망자만 142명 이상)로 보나,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세계 최초의 바이오사이드(biocide, 생물학적 독극물) 사건’(2014년 질병관리본부 폐 손상 조사위원회 발표)이라는 성격으로 보나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아 마땅하다. 검찰 수사나 피해자단체, 또는 시민단체의 주장을 수동적으로 전달하는 데 그치지 말고, 탐사보도로 나아가야 한다. 특히 검찰이 아예 수사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애경 제품에 대한 탐사보도는 더욱 절실하다.

검찰 수사와 언론 보도가 유사한 혐의를 받는 다른 기업들은 그냥 두고 유독 한 기업에만 집중하면, 그 기업만 불매운동과 같은 대중의 몰매를 맞는 효과를 가져온다. 대중의 시선을 한쪽에만 집중시키는, 일종의 ‘시선 돌리기’ 효과다. 도망자가 지니고 다니면서 추적견을 따돌린다는, 냄새가 지독한 훈제 청어(red herring)가 하는 역할과 비슷하다. 이번 사건에서 시선 돌리기로 득을 보는 쪽이 어딘지는 뻔하다.

시선 돌리기는 권력자들이 애용하는 통치수법의 하나다. 2년 전 세월호 참사 때 박근혜 대통령과 국정원 등 정부로 향하던 국민적인 분노와 의혹의 시선을 유병언 쪽으로 돌리게 유도한 것이 전형적인 시선 돌리기 기법이다. 사건이 터진 뒤 7시간 동안 박 대통령의 행적과 참사의 직접적 원인, 그리고 세월호의 실소유주를 둘러싼 온갖 의혹들이 쏟아졌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세월호가 국정원 소유라고 확신한다”는 글을 올렸다가 보수단체의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세월호 참사 수사의 초점을 처음부터 유병언 당시 청해진해운 회장에 맞췄다. 이에 따라 ‘유병언 도주’→‘유병언 사망’→‘유병언 시체 발견’이라는 수사과정을 실시간으로, 아주 소상하게 알림으로써 국민적인 분노를 유병언 개인에게 묶어두는 데 성공했다. 결국 국회가 특별조사위원회까지 만들었지만, 세월호 진상규명을 밀고 나갈 대중적 에너지는 이미 상실한 뒤다.

세월호 참사에 대응하면서 권력이 대중의 시선을 박 대통령과 정부가 아니라 유병언 쪽으로 돌리는 데 성공한 것은 언론이라는 조력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신문·방송들은 수사기관의 발표에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춤을 추느라, 참사의 원인에 대한 독자적인 탐사보도에는 손을 놓고 있었다. 결국 기자들이 ‘기레기’(기자 쓰레기)라는 치욕적인 이름까지 얻게 된 것이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살균제 참사와 같은 국민적인 분노를 불러일으킨 사건이 터지면, 권력은 철저한 수사로 혐의자들을 몽땅 법정에 세울 수도 있고, 반대로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는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다. 권력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언론이 이를 어떻게 보도하느냐에 달려 있다. 언론은 왜 애경은 보도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에 무어라 대답할 것인가?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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