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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으로 한 달 살아보니

김연희 기자 입력 2016. 05. 06.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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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봄, 꼭 이맘때였다. 20일차 기자였던 나는 한 음식점의 1일차 아르바이트생이기도 했다. ‘최저임금으로 한 달 살기’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기자 신분을 숨기고 면접을 본 식당에서 합격 전화를 받던 순간이 또렷이 기억난다. 세월호 1주기로 대규모 집회가 벌어진 서울 광화문 현장이었는데 차 벽을 넘어가려는 유가족과 막는 경찰과 항의하는 시민들이 뒤엉켜 주위가 무척 소란스러웠다. '네, 뭐라고요? 잘 안 들려요' '월요일 10시까지 나오시라고요!' 혹여 집회 소리가 들어갈까 봐 황급히 휴대전화 송화구를 손으로 가렸다.

ⓒ시사IN 양한모 :

잠입 취재를 하고 있다는 긴장감은 가게 문을 열자마자 사라졌다. 식당이 자리 잡은 곳은 유커(중국인 관광객) 특수를 맞은 명동 한복판. 오픈 시간부터 손님이 밀려들었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주문 앞에서 원래부터 희미했던 기자 정체성은 자취를 감추었다. 선배의 지시로 매일 썼던 일기에는 '일본인을 사랑하게 됐다'라고 적혀 있다. 일본인 여행객들은 보통 식사를 천천히 하기에 그들이 오면 테이블 회전 속도가 한결 느려진다.

동료들은 20대 초반이 대부분이었다. 고등학생도 꽤 있었다. 그중 석빈(가명)이는 눈에 띄는 친구였다. 가게에서 제공해주는 밥을 먹을 때마다 셀프로 퍼올 수 있는 샐러드를 산처럼 쌓아놓고 먹었다. 식당 이모도 딱한지 석빈이 밥만은 푸짐하게 퍼주었다. 내가 그곳에서 일하는 한 달 사이에 석빈이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가족들과도 따로 산다고 했다.

‘최저임금 체험’이 끝난 뒤에야 이유를 알게 됐다. 회사 근처로 찾아온 석빈이를 데리고 닭칼국수 집에 갔다. 그는 얼마 전 암으로 할아버지를 잃었는데 돈이 없어서 제대로 된 치료도 받게 해드리지 못했다고 했다. 그때 찾아온 우울증과 원망으로 학교를 자퇴하고 가족과도 떨어져 지내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해온 합기도도 그만두었다고 했다. 추가한 만두 사리까지 깨끗이 먹어치운 뒤 그는 다음번에는 자기가 사겠다는 말을 남기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그 후로는 석빈이를 보지 못했다. 신발 가게로 알바 자리를 옮겼다는 소식이 마지막이다. 안부가 궁금했지만 1년이나 지나 연락을 해보기가 어쩐지 겸연쩍었다. 2017년 최저임금을 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4월7일 첫 회의를 시작했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1만원을, 경영계는 동결을 요구하고 있어서 또다시 팽팽한 갈등이 예상된다. 이번에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된다면 그 핑계로 석빈이에게 연락이나 해볼까. '너 그때 누나 밥 사준다고 하지 않았니?'

김연희 기자 /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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