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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8월 26일 12.12 및 5·18사건 선고공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한 전두환(오른쪽), 노태우 전 대통령.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t1.daumcdn.net/news/201605/12/yonhap/20160512141334922exnp.jpg)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끊이지 않는 5·18 민주화운동 왜곡의 최초 생산자는 학살 당사자인 신군부 세력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오승용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연구교수는 12일 공개한 논문 '5·18민주화운동 왜곡의 심화: 분석과 대안'을 통해 최초로 항쟁의 성격을 왜곡하고 거짓 정보를 만들어 유포한 주체는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라고 규정했다.
오 교수는 논문에서 "신군부가 계엄군의 살인적인 진압은 은폐하고 시민들의 정당한 저항은 왜곡했다"며 "어떤 정치적 의도에서 어떻게 왜곡했는가를 규명하면 5·18 왜곡의 전체적인 윤곽을 그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 보수 세력이 주도하는 왜곡 담론들은 대부분의 내용이 신군부가 생산·유포했던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며 "이들의 왜곡은 신군부의 왜곡을 정교화하는 작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고 부연했다.
신군부가 생산한 왜곡은 항쟁 이후에도 수명이 지속했다. 1989년 광주청문회가 열릴 때까지 5·18은 '소요', '사태', '광주사태', '폭동' 등으로 불렸다. 오 교수는 이 시기를 폭동 대 민중항쟁의 경합 시기라고 지칭했다.
논문에 따르면 청문회 국면에서 왜곡의 밀도는 이전 시기보다 훨씬 높아졌다. 신군부의 일원이었던 노태우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청문회에 대한 정권 차원의 대응이 이뤄졌다.
청문회 이후 1998년 특별법 제정 및 전두환·노태우 재판까지 5·18 진실규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를 맞아 보수 세력의 불만은 하나의 여론을 형성했다.
보수 세력의 조직적인 대응은 5공화국 정통성 옹호가 대표적이다. 간첩침투 등 이들이 내세운 논리는 전두환 정권이 제기했던 방식과 다르지 않다.
오 교수는 나름의 원죄의식에 침묵하던 보수 세력이 5·18 진실규명에 왜곡으로 맞서는 상황의 전개가 역설적이게도 '민주화의 효과 혹은 산물'이라는 평가에 동의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보수세력의 5·18 왜곡은 급격하게 퍼졌다. 왜곡 콘텐츠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은 지만원(74)씨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로 집계됐다. '북한이 기획·연출한 폭동'이라는 큰 틀에서 신군부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오 교수는 5·18 왜곡의 대응방안으로 ▲ 왜곡 담론에 대한 해명이 아닌 항쟁의 이해를 높이는 진실규명 ▲ 5·18의 전국화라는 목표로 소통과 연대의 확장 ▲ 집단극단화를 해결하는 최후의 수단으로서 사법정의 호소 등을 꼽았다.
이번 논문은 13일 전남대학교 용지관 광주은행홀에서 전남대 5·18연구소와 5·18기념재단이 공동 주관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36주년 학술대회에서 발표된다.
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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