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식장 썰렁한 '고독혼'은 싫어..신랑신부 하객 품앗이

홍상지 2016. 5. 14.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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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하객 대행 체험해 보니

A씨(33)를 알게 된 것은 지난달 결혼·육아 전문 온라인 커뮤니티 ‘레몬테라스’를 통해서였다.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하객이 많지 않을 것 같아 잠이 안 오네요. 급히 ‘품앗이’ 구합니다. 쪽지 주세요.’ 게시판에 올린 A씨의 글을 보고 쪽지를 보냈다.

기자=‘레테(레몬테라스)에 쓰신 글 보고 연락드려요. 저도 돕고 싶네요.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

A씨=‘촉박해서 쪽지가 안 올 줄 알았는데 연락 주시는 분들이 좀 있네요. 감사합니다.’

A씨는 2주 뒤 경기도 성남시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예비 신부였다. 그는 “친구도 별로 없는데 그나마 다들 임신 중이라 하객을 대신 해줄 사람들을 구하고 있다”고 했다.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한 뒤 결혼식장에서 ‘서로 알아보기 위해’ 사진도 교환했다. “친한 언니 결혼식에 왔다고 생각하세요. 도착하면 대기실 들러서 반갑게 인사도 해주고. 단체 사진은 꼭 찍어주셔야 해요.” A씨가 말했다.

기자=‘저 말고 다른 분들도 오시나요?’

A씨=‘네, 경기도 광주에서 한 분 더 오신대요. 예비 신랑이랑 같이요. 7월에 결혼하신대요.’

결혼식 당일인 지난달 23일. 식장은 한산했다. 오전 11시인 예식을 앞두고 A씨의 당부대로 대기실에 들러 인사를 건넸다. “언니, 저 왔어요!” A씨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이내 밝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빨리 왔네?” 대기실에는 A씨의 지인 한 명이 함께 있었다. “내 친한 동생이야. 인사해.”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식장 안으로 들어섰다. 100명도 채 안 되는 하객은 대부분 신랑·신부의 가족과 친지들로 보였다. 일면식 없는 사람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또 한 명의 품앗이 멤버를 찾으려 두리번거렸지만 알아보진 못했다.

식이 끝난 뒤 단체 사진도 찍었다. “신랑·신부 직장 동료와 친구분들 나와주세요.” 사진사의 말에 앞으로 가 신부와 제법 가까운 곳에 섰다. 그렇게 A씨의 웨딩 사진에 생판 모르는 사이인 기자의 얼굴이 남게 됐다. 식이 끝나고 일주일쯤 뒤 A씨로부터 문자가 왔다.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결혼할 때 나도 꼭 갈게요.’

30년 넘게 서로 모르고 살던 A씨와 기자가 ‘신부와 하객’으로 만날 수 있었던 건 A씨의 ‘고독혼 공포증’ 때문이다. 이는 결혼식을 앞둔 대다수 사람이 겪는 결혼철 ‘유행성 질환’이다. 결혼식에 참석할 하객 수를 걱정하는 것인데 주로 ‘하객은 남들에게 보여줄 내 평소 인간관계’라는 인식 때문에 발병한다. 상태가 심각해지면 ‘가짜 하객’을 구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하객 없이 외롭게 결혼하는 ‘고독혼’만은 피하고 싶어서다.

중앙일보와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지난달 11일부터 25일까지 20~30대 미혼남녀 36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240명(66.5%)이 ‘결혼식에 하객이 적을 것 같아 걱정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하객이 적게 올 것 같은 이유로는 ‘서로 살기 바빠서’(42.9%), ‘좁은 인간관계’(33.2%) 등을 꼽았다. 하객이 없을 때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주위 사람들의 안 좋은 시선’(45.4%)이라고 했다.

응답자들은 주로 ‘하객 수가 평소 인간관계를 나타내기 때문에’(45.4%) 결혼식 하객이 중요하다고 했다. 결혼 컨설팅 업체 듀오웨드의 김예원 팀장은 “‘내 하객이 상대편 하객보다 적으면 어쩌죠?’ ‘결혼식 날 사람들이 하객이 적다고 수군거리면 어쩌죠?’ 등 많은 예비 부부가 하객과 관련해 다양한 고민을 털어 놓는다. 하객 대행 사이트를 연결해줄 수 있는지 묻는 고객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 포털 사이트에서 ‘하객 대행’으로 검색하면 관련 사이트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객 1명당 시급은 2만~5만원이다.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해 자리를 지키고 단체 사진을 찍는 것까지 포함해서다.

예비 신랑·신부가 모여 ‘하객 품앗이’를 하는 문화도 생겼다. 레몬테라스에는 4월부터 이달 9일까지 50건 넘는 ‘품앗이’ 모집 글이 올라왔다. 품앗이는 주로 비슷한 시기, 비슷한 지역에서 결혼하는 커플들로 꾸려진다. 6월 결혼을 앞두고 하객 품앗이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정모(31)씨는 “예신(예비신부) 8명이 일종의 ‘계모임’ 형식으로 품앗이를 하고 있다. 자기 결혼식이 끝나면 연락이 두절되는 등 ‘잠수’ 타는 사람이 많아져 보증금도 10만원씩 걸어 놓았다”고 했다.

이렇게 대다수의 사람이 결혼식 하객 수에 집착하는 건 한국 특유의 ‘체면’ 문화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하객 문화는 ‘타인의 시선’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사실 친족과 이웃들로 북적이는 ‘잔칫집’ 분위기의 결혼식은 예전부터 이어져 온 전통 문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결혼식을 가능하게 한 과거의 공동체 사회는 이미 해체된 지 오래다. 한국 사회에서 ‘고독혼 공포증’이 더 심화되고 있는 이유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하객 알바나 품앗이 등의 문화가 갈수록 성행한다는 것은 한국이 점점 ‘고립사회’로 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S BOX] 역할 대행, 가짜 알리바이·사기 등 범죄에 악용 우려

‘30, 여, 대졸, 서울·경기도 활동 가능’.

온라인 역할 대행업체 사이트에 기자가 올린 아르바이트 신청 글이다. 프로필 사진도 덧붙여야 했다. 이 같은 신청 글은 매일 하루 10건 이상 사이트에 올라왔다. 여러 아르바이트 중에서도 하객 대행은 일이 쉬운 ‘꿀 알바’로 통한다.

대행업체에서 역할을 대신해 주는 건 결혼식 하객만이 아니다. 하객은 물론 부모·친지 역할도 구할 수 있다. 결혼식에 한정된 것도 아니다. ‘발표 대신 해 주기’ ‘욕 대신 듣기’ 등 황당한 대행도 있다. 업체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맞춤형 대행인을 제공한다’고 홍보한다. 비용은 역할의 난이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러한 ‘역할 대행’은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일부 대행업체에서는 대행 서비스 중 하나로 수사기관에서 가짜 알리바이를 진술해 주는 일도 맡는다. 적발돼도 처벌로 이어지는 일은 드물다. 경찰이나 검찰 수사 과정에서 한 허위진술은 위증죄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범인은닉죄로 처벌하려면 ‘적극적으로 수사기관을 속였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역할 대행을 이용한 사기범죄도 종종 발생한다. 하지만 이 경우 역시 대행업자들은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간다. 사기사건을 다루는 한 경찰관은 “역할을 대행했다고 해서 피의자와 ‘사전 공모’를 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료출처 듀오] 결혼식 하객 문화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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