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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 회원들이 광화문에서 방산비리 척결 외친 까닭은

김원진 기자 입력 2016. 05. 15. 11:07 수정 2016. 05. 1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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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방산비리 척결하라!” “현역병 보상 확대하라!”

지난 14일 오후 8시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사 앞에 군복이나 사복 차림의 남성 30여명이 집결했다. 무리 중에는 30대 예비역과 아직 군에 입대하지 않았다고 밝힌 20대 남성도 있었다. 이들은 ‘부를 때는 국가의 자식, 사고나면 누구세요’ ‘병사 월급을 최저시급으로’ 등의 문구가 적힌 A4 용지를 들고 군대 내 적폐를 해결하라는 구호를 반복해서 외쳤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이들 중 일부는 극우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 회원들로 추정된다. 집회의 발단은 예비군 식단이었다. 지난 5월초부터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누가봐도 부실한 6000원짜리 예비군 식단 사진이 나돌았다. 일베에서는 조선말 열악한 처우에 항거해 구식군대가 일으킨 임오군란에 빗대 ‘병신군란’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5·14 예비군 및 병사 처우개선을 위한 대규모 집회’를 홍보하는 포스터도 만들어졌다.

14일 밤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사 앞에서 열린‘예비군과 병사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가한 한 남성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 김원진 기자

주최 측은 이날 집회를 오후 6~7시, 오후 8~9시 두 차례로 나눠 진행했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예비역이라고 스스로 밝힌 집회 진행자는 자유발언과 구호제창을 하면서 시민 질문에 대한 답변도 했다. 중간중간 애국가와 군가를 부르기도 했다. 일부는 선글라스나 마스크를 썼지만, 대부분은 군복에 적힌 이름과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집회의 초점은 현역 병사들과 예비군 처우 개선 그리고 군인에 대한 사회인식 변화에 맞춰졌다. 서울 방배동에 사는 회사원이라는 밝힌 한 예비역은 “예비군과 병사들이 놓여 있는 열악한 환경이 많이 알려지고 처우 개선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자리에 나왔다”고 밝혔다. 이어 “처우 개선을 위해 끝까지 싸워가겠다”고 다짐했다. 서울 목동에 거주한다고 밝힌 한 남성도 “처우개선을 바라는 마음에서 왔다”고 운을 뗀 뒤 “‘군바리’라고 사람들이 흔히 군인을 부르는데, 그런 식으로 비하하면 누가 애국심이 생기겠느냐”고 말했다.

이외에도 “6·25 참전용사 중 가난하게 사는 분들이 얼마나 많나. 이분들에 대한 보상도 확대해야 한다”거나 “국가 존립에 가장 필요한 것은 국방이다. ‘민주’, ‘복지’ 등이 식탁 위 반찬이라면 국방은 식탁 그 자체”라는 발언도 나왔다.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캡처.

이날 집회 참여자들은 일베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경기도 수원에서 온 예비역이라고 밝힌 한 남성이 “일베라고 무조건 매도하는 현실이 답답하다”면서 “정치적 견해를 떠나 방산비리 문제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언급했을 때 유일하게 일베 이야기가 나왔다. 또 집회 진행자는 “모든 분들의 발언은 특정 집단을 대표하는 발언이 아니다”라고 누차 강조했다. 집회 참여자들은 오후 8시50분쯤 집회가 끝난 뒤 집게와 종량제 쓰레기 봉투를 들고 청소에 나섰다.

동아일보사 앞을 지나가던 시민들 100여명도 이날 집회를 지켜봤다. 자녀와 함께 청계천 광장을 지나가던 한 시민은 병사들의 처우를 개선해달라는 발언이 나오자 “지지합니다”를 외치치기도 했다. 박수를 치거나 적극적으로 질문에 나선 시민들도 있었다. 집회가 끝난 뒤 일베 게시판에는 “음료수를 준 시민들에게 감사하다”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이날 집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대학생 하지율씨(27)는 “군가산점을 빼고는 대부분 반대하기 어려운, 즉 동의할 수밖에 없는 발언들이 오늘 집회에서 나왔다”면서 “지금까지 응어리져 있던 ‘일베’ 사용자들의 감정이 거리의 광장에서 어느 정도 표출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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