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막장 드라마 '정운호 게이트' 총정리 [더(The)친절한 기자들]

김지은 2016. 5. 15.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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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 기자들][더(The) 친절한 기자들]
'전관예우'에서부터 '사법 엘리트들의 인질극·사기극' 분석까지
법조계 뿌리깊은 병폐 드러낸 '법피아 100억 돈잔치' 사태의 민낯
홍만표 변호사

잘나가던 화장품업체 대표가 회삿돈으로 100억원대 국외 원정도박을 했다가 덜미를 잡혀 징역을 살고 있습니다. 그의 항소심 변론을 맡았던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보석을 통한 석방을 약속하고 50억원을 챙기려다, 구속됐습니다. 이에 앞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이 화장품업체 대표가 무혐의 처분을 받도록 하기 위해 뛰었지만, 후배 검사들에게 소환될 처지에 놓였습니다.

이 검은 거래의 실체는 두 ‘전관’ 변호사에게 수십억원을 들여가면서까지 하루빨리 바깥세상에 나오고 싶었던 화장품업체 대표의 ‘소원’이 성취되지 않자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와 ‘전관’ 변호사들의 법조 로비 의혹 사건입니다. 등장인물도 많고 복잡한 이 사건, <한겨레>가 지금까지 드러난 의혹을 ‘중간’ 정리해봤습니다.

왼쪽부터 정운호 대표

정운호부터 홍만표까지…누가 개입됐나

■ 정운호(51·남)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자수성가한 수천억원대 자산가이자 화장품업계 거물. 2012~2014년 마카오 등에서 100억원대 도박을 외상으로 하고 한국에서 회삿돈을 이용해 갚는 ‘환치기’ 수법을 쓰다 상습원정도박 혐의 등으로 지난해 말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2심에선 징역 8개월 선고받아 수감 중.

■ 최유정(46·여) 변호사: 2014년까지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부장판사로 재직하다가 개업한 ‘전관’ 변호사. 정운호 대표와 송아무개 이숨투자자문 대표로부터 수임료로 50억원씩 모두 100억원을 챙긴 것으로 알려져.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

■ 홍만표(57·남) 변호사: 2011년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을 끝으로 변호사로 개업한 ‘전관’ 변호사.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김현철씨가 연루된 한보비리 수사 등 굵직한 사건 맡았던 검찰 내 ‘특수통’. 2009년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 시절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돈거래 의혹 수사도. 돈이 되는 사건을 싹쓸이한다고 ‘서초동 쌍끌이(바닥을 훑는 저인망 어선)’라는 별명이 붙기도. 2013년엔 91억여원에 달하는 소득을 올려 화제. 네이처리퍼블릭의 고문 변호사로, 2014~2015년 정 대표의 도박 혐의 사건을 맡아 경찰과 검찰을 오가며 2차례 무혐의 처분 받아내.

■ 이아무개(56·남) 브로커: 정운호 대표의 측근으로 청와대 수석, ○○부 차관, 검사 등과 친분 과시. 정 대표의 항소심 재판장에게 식사대접을 하며 선처 부탁. 홍만표 변호사의 고교 동문으로 정 대표에게 홍 변호사를 소개한 인물. 서울메트로에 네이처리퍼블릭 입점 로비 명목으로 정 대표한테서 9억여원 수수 의혹. 수배 중.

■ 송아무개(40·남) 이숨투자자문 대표: 1300억원대 투자 사기 혐의로 지난달 징역 13년 선고받고 복역 중. 2013년 기소된 별도의 사기사건 항소심 당시 최유정 변호사에게 변론 맡겨. 1심의 징역 4년형이 2심서 집행유예로 낮아짐. 최 변호사에게 선임료 50억원을 준 것으로 알려짐. 구치소에서 정 대표에게 최 변호사 소개한 인물.

■ 이아무개(44·남) 이숨투자자문 이사: 송아무개 이숨투자자문 대표에게 최 변호사를 소개한 인물로 정·관계 브로커. 사기, 탈세, 금괴 밀반출 등 관련 전과 10범. 최유정 변호사의 ‘동업자’로 알려져.

■ 한아무개(58·남) 브로커: 정운호 대표 측근. 네이처리퍼블릭 화장품 군납 로비 과정에서 전 방위사업청장에게 청탁 의혹. 롯데면세점 입점 관련 롯데가 2세인 ㅅ씨와의 친분 내세우며 로비 명목으로 정 대표에게서 10억원가량 받은 혐의 등 관련해 구속.

■ 그 밖 인물들: 임아무개 부장판사(정 대표 측근 브로커 이아무개씨한테서 저녁 접대받은 뒤 정 대표 항소심 사건 재배당 요청, 사직서 제출)/박아무개(43· 정 대표 측근으로 경찰 담당 브로커로 알려짐)

사건의 발단…내 20억을 돌려달라!

사건은 지난달 12일, 서울구치소 접견실에서 시작됩니다. 정운호 대표는 최유정 변호사에게 보석 등 석방을 전제로 건넸다는 20억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최 변호사는 거부했습니다. 최 변호사는 50억원 가운데 성공보수 명목으로 알려진 30억원에 우선해 착수금으로 20억원을 받아간 상태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둘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고, 최 변호사는 정 대표가 자신을 폭행했다고 주장하며 15일 정 대표를 고소합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순간입니다.

‘전관’ 앞세운 전방위 로비?

애초 이 사건은 지난달 말께 ‘화장품업계 거물이 여성 변호사를 폭행해 피소됐다’는 ‘가십성’ 사건으로 회자됐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착수금 20억원’이 둘 사이 논쟁의 핵심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태풍의 핵으로 떠오릅니다. 변호사 한 명이 수임료로, 그것도 착수금으로만 20억원을 받았다는 얘기는 공개된 적이 없는 규모였습니다. 수년전 재벌 회장들이 법원 문턱을 드나들 때 이들의 변호사 수임료가 50억원이라는 풍문이 돌았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자연스레 눈길은 최 변호사에게로 쏠렸습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전관 변호사를 둘러싼 이 묘한 사건의 진상조사에 나섰습니다.

최유정 변호사

화살이 자신을 향하자 최 변호사가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최 변호사 쪽은 “정 대표로부터 받은 돈은 6800만원뿐”이라며 “정 대표가 연루된 민·형사 사건 16건을 로펌 3곳 30여명의 변호사들에게 분산 위임해 금액도 나눴다”고 주장합니다. ( ▶ 바로 가기 : <한국일보> “네이처리퍼블릭 20억 착수금 변호사 30명에게 나눠 전달” ) 하지만 최 변호사의 주장 가운데 지금까지 확인된 건 정 대표의 항소심 공동변론을 맡았던 대형 로펌 법무법인 ㅎ의 ㅇ변호사에게 기록 검토비 명목으로 지급된 5000만원이 전부입니다.

최 변호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틀 뒤엔 정 대표가 자필로 작성해 자신에게 건넸다는 ‘8인 리스트’를 언론에 흘립니다. 최 변호사는 이를 ‘정 대표가 작성한 구명 로비스트 명단’이라고 밝혔습니다. ( ▶ 바로 가기 : <뉴시스> ‘정운호 로비 리스트’ 있다…검사장 출신 유명 변호사, 현직 판사 등장 )

여기에 끗발 날리던 홍 변호사가 등장합니다. 이때부터 사건은 본격적인 법조비리 의혹으로 탈바꿈합니다. 검찰이 확보하지 못했지만 최 변호사가 정 대표를 만날 때마다 접견 내용을 녹음한 ‘보이스 펜’도 어딘가에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내용이 공개되면 파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곧이어 정 대표의 측근인 브로커 이씨가 항소심 재판장이었던 임아무개 부장판사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하며 선처를 부탁했다는 사실도 드러납니다. 임 부장판사는 브로커 이씨를 만난 이튿날 법원에 정 대표 항소심에 대한 회피신청을 했고, 정 대표의 항소심은 곧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됩니다.

정 대표 쪽은 재빨리 평소 ‘형님’이라고 부르던 수도권의 한 판사를 통해 새 재판장에 대한 로비를 시도합니다. 동시에 ㅇ변호사를 정 대표 항소심의 공동변호인으로 선임합니다. ㅇ변호사는 항소심 재판장과 연수원 동기이자 같은 학회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또 다른 ‘맞춤형’ 전관 변호사가 투입됐다는 의혹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 재판장은 2개월 만에 다른 법원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결국 이 사건은 중앙지법 형사5부의 재판장 장일혁 부장판사에게 넘어갔고, 정 대표는 4월8일 징역 8개월을 선고받습니다.

보석 혹은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해주겠다며 50억원을 요구했다는 최 변호사의 약속과 달리 보석 신청은 기각되고 또다시 실형이 선고되자, 정 대표는 최 변호사에게 “내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는 겁니다.

검찰 수사 관전 포인트…또 팔은 안으로 굽을 것인가?

현재 이 법조비리 의혹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이원석)가 맡아 수사 중입니다. 지난달까지 만해도 검찰은 정 대표의 재판 과정에서 브로커 역할을 한 “이씨에 대한 수사”라며 “정 대표(사건)와는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하지만 의혹이 점점 구체화되자, 검찰은 이달 초 네이처리퍼블릭 본사와 최 변호사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며 본격적으로 정 대표 구명을 둘러싼 법조 로비 의혹 수사에 나섰습니다. 10일에는 불과 4년 전까지 검찰조직의 핵심 간부였던 홍 변호사의 집과 사무실을 수색했습니다.

홍 변호사는 정 대표와 어떤 관계일까요? 정 대표는 이번 사건에 앞서 2013년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의 수사망에 오른 바 있습니다. 2012년 마카오에서 329억원 상당의 도박을 한 혐의 때문이었습니다. 경찰은 2014년 7월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혐의 의견으로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에 송치했습니다. 넉달 뒤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립니다. 그런데도 정 대표 쪽은 ‘무죄를 입증하겠다’며 마카오에서 수집한 자료를 검찰에 제출하는 ‘기행’을 보입니다. 자료를 건네받은 검찰은 2015년 2월 나흘 동안 자료를 검토한 뒤 두 번째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검찰을 오가며 정 대표를 변호한 것이 바로 홍 변호사입니다. ( ▶ 바로 가기 : [한겨레] 정운호 두차례 수상한 무혐의…‘전관’ 홍만표 몸값 올렸나 )

홍 변호사가 정 대표 사건에서 검찰 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제기되는 의혹은 또 있습니다. 우선 정 대표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 강력부가 당시 정 대표의 회삿돈 횡령 정황을 확인하고도 도박 혐의만 기소해 ‘봐주기 기소’ 의혹을 샀습니다. ( ▶ 바로 가기 : <한겨레>[단독] ‘정운호 횡령’ 정황에도 검찰, 도박만 기소했다 ) 이 밖에도 정 대표의 1심에서 징역 3년을 구형했던 검찰이 2심에서는 2년6개월을 구형한 점도 석연치 않습니다. 징역 1년을 선고한 법원에 항소한 검찰이 형량을 낮춰 구형하는 일은 이례적이기 때문입니다.

제 식구였던 홍 변호사에게 검찰이 ‘칼’을 댈지가 이 사건의 주요 관전 포인트인 이유입니다.

전관예우가 대체 뭐길래…답답하지만 ‘노답’!

전관예우. <두산백과>에는 “전직 판사 또는 검사가 변호사로 개업하여 처음 맡은 소송에 대해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특혜”라고 나옵니다. 일반적으로는 현직 판·검사들이 ‘예’를 갖춰 퇴직한 판·검사 출신 변호사에게 유리하게 사건을 처리한다는 뜻으로 통합니다. 법조계의 뿌리깊은 병폐로 지적되지만 수십 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2011년에는 소위 ‘전관예우금지법’도 생겼습니다. 판·검사가 변호사로 개업할 경우 1년간은 퇴임 전 근무했던 법원이나 검찰청의 사건을 맡지 못하도록 변호사법(31조)을 개정한 것입니다.

하지만 2014년 서울지방변호사회가 회원 1101명에게 물어본 결과, 변호사 10명 중 9명(89.7%)은 ‘여전히 전관예우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는 답을 내놨습니다. 5명 중 4명은 ‘전관예우는 없어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고, 응답자의 64.7%는 ‘(전관들이) 법을 피해 우회적으로 사건을 수임하고 있어 전관예우법은 사실상 효과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검찰의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서보학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은 “본질적으로는 판·검사들이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을 하고, 몸담고 있던 조직에 남아있는 영향력과 인맥을 이용해서 돈벌이에 이용하는 시스템의 문제”라고 꼬집습니다. 그는 “현직에 있는 사람도 전관들의 편의를 봐줘야 자신들이 변호사로 개업할 때 좋은 로펌에 스카웃된다든가 후배들에게 특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입니다. 정년퇴임 때까지 판·검사직을 유지하고 이후 공무원 연금이나 준연금제 등으로 일정한 수입이 보장되는 독일과 일본 법조계의 예를 들지만, 당장은 우리 사회에서 전관예우를 없앨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는 안타까움도 내비쳤습니다.

<한겨레>에서 수년간 법조계 취재를 해온 한 고참 기자는 “이번 사건은 사법 엘리트들이 벌이는 인질극”이라고 분석합니다. 재조 법조인인 검사와 판사가 범죄자를 구속해 잡아놓고, 재야 법조인인 전관 변호사들이 범죄자의 석방을 미끼로 막대한 몸값을 받아내는 격이라는 논리입니다. 이런 메커니즘이 가능한 건, 수사와 재판을 한 검사와 판사들도 옷을 벗으면 이런 형태로 돈벌이를 할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는 정 대표 사건을 16세기 잉카제국의 마지막 황제 아타우알파 감금 사건에 빗댑니다. 당시 침략자인 스페인의 피사로는 아타우알파가 갇힌 방을 황금으로 가득 채우면 풀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잉카의 신민들은 방을 황금으로 채웠지만, 피사로는 약속을 저버리고 아타우알파를 처형합니다. 인질극인 동시에 사기극이었습니다.

50억원을 걸었는데도 풀려나지 못한 정 대표는 자신이 아타우알파처럼 인질극 겸 사기극의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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