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피해자 가족의 '지옥같은 삶' 아시나요.."국가·사회의 책임"

조재현 기자 2016. 5. 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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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피해자보호실태-1]피해자가족 상처·아픔 방치하면 더 큰 '비극' 보호·지원 없어 제2,3의 피해 빈발..트라우마로 가해자 되기도 피해자 보호·지원은 국민복지 문제..피해자가 원하지 않을 때까지

[편집자 주] 살인·강도·방화 범죄로 인한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사법체계가 피의자에 대한 '일벌백계'(一罰百戒)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면 이제는 피해자와 그들의 가족, 주변을 돌아봐야 할 때라는 것이다. <뉴스1>은 피해자 보호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발생하는 2, 3차 피해 사례와 사법당국의 범죄 피해자 보호 실태,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2회에 걸쳐 정리했다.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서울=뉴스1) 조재현 기자 = 2002년 3월 서울 강남에서 운동을 다녀오던 서울 모 여대 학생이 납치당했다. 법학과에 재학 중이던 22살의 꽃다운 청춘은 끝내 경기 하남의 검단산에서 공기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세간을 충격에 빠트린 것은 범행 배후였다. 여대생과 자신의 판사 사위 사이의 관계를 의심한 모 기업의 회장 아내가 조카 등을 시켜 여대생을 청부 살인한 것이었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이 사건은 잘 알려진 '영남제분 회장 아내의 여대생 청부살인'이다.

그러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한 지 14년이 지난 올해 2월, 피해 여대생의 어머니가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경찰은 영양실조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했다.

딸을 잃은 후 어머니의 삶은 평온하지 못했다.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 남편은 강원도로 떠났지만, 어머니는 딸을 잊지 않으려고 하남에 홀로 남았다. 술에 의지하는 시간은 점차 늘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회장 아내가 교도소가 아닌 병원 특실에서 호화생활을 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어머니의 삶은 더 무너져 내렸다. 소방당국 등이 시신을 수습할 당시 키 165㎝였던 어머니의 몸무게는 38㎏에 불과했다.

◇ 범죄피해 후폭풍, 극복 쉽지 않아…또 다른 피해로

가족이 누군가로부터 살해된다면 남겨진 이들의 삶은 단번에 피폐해진다. 더 큰 문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을 당한 것도 모자라 또 다른 피해가 뒤따른다는 것이다.

2004년 강원도 강릉에서 20대 주부 A씨가 살해됐다. 피의자는 성폭력 전과자로 범행 당일 A씨가 집을 혼자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 후 침입했다. 피의자는 아기용 포대기 끈으로 A씨를 묶은 후 강간을 시도했다. 그 순간 A씨의 아이를 바래다주던 유치원 교사가 집 초인종을 눌렀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의 아버지 행세를 했다. 이후 재차 강간을 시도했으나 A씨가 완강히 거부하자 격분해 살해했다.

평소 밝고 활달한 성격이었던 A씨 아들은 사건 이후 말수가 줄었다. 또 아기용 포대기를 뒤집어쓰고 어른들의 눈치를 보는 버릇이 생겼고, 어린 딸 또한 집에 낯선 이가 방문할 때마다 구석에 웅크리고 숨게 됐다.

사망 사건이 발생한 지 5년여만에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된 '가습기살균제' 사건으로 자녀를 잃은 부모들도 신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체에 유해한 성분임을 알고도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것은 고의성이 인정되는 것으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역시 큰 범주의 범죄피해자로 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부모들은 무엇보다 '제 손으로 자녀를 죽인 것 같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급기야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본격화한 2012년 한국환경보건학회가 발표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사례 조사연구'에 따르면 피해자의 절반 이상이 자살 충동을 느낀 것으로 조사됐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경험한 피해자와 가족도 많았다.

당시 학회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에 접수된 피해사례 174건 중 조사연구 참여를 희망한 76명에게 '사건 이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 있느냐'고 물은 결과 응답자 중 39명(51.3%)이 "그렇다"고 답했다.

'사건 이후 자살하려는 시도나 계획'에 대해 "있었다"는 답변은 8명이었다. 자살 시도 횟수는 1회 2명, 2~3회 3명, 5번 이상 1명 등이었다. '죽고 싶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서는 "죄책감"이 4명으로 가장 많았다.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범죄 피해자 보호는 국가와 사회 신뢰에 대한 문제"

전문가들은 범죄피해자를 보호하는 문제는 곧 국가와 사회에 대한 신뢰와 직결된다고 보고 있다.

범죄심리학박사인 공정식 사단법인 안전문화포럼 회장은 "사건 전 국가와 사회에 대한 신뢰를 하고 있었던 범죄피해자들은 사건 후 접하게 되는 국가기관이 피해자의 욕구만큼 충분하게 보호와 지원을 해주지 않으면 분노의 감정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누구도 범죄로 인한 피해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범죄피해자를 향해 운이 없었다거나 조심성이 없었다고 치부해버리면 피해자들은 더이상 국가와 사회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면서 "이같은 측면에서 범죄피해자의 보호와 지원이 충분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 회장은 특히 사건 초기 범죄피해자를 위한 경제적 지원을 강조했다. 범죄피해 이후 사건에 온 가족이 매달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니 가장 중요한 생계에 위협을 받게 되고, 더불어 사회적 심리적 충격으로 모든 것을 자포자기하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사단법인 피해자포럼에 따르면 살인범죄로 딸을 잃은 아버지 B씨는 사건 전 월평균 300만~40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하지만 딸과 관련된 사건 수습에 매달리다 보니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이어가지 못했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등록됐으나 10분의 1가량으로 줄어든 수입은 B씨를 더 힘들게 했다. 좀처럼 잠을 잘 수 없어 의지했던 수면제와 술 때문에 시신경이 마비돼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장석헌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초기상담이 가장 중요하다"며 "상담지원, 경제적 지원, 법률적 지원, 의료지원, 취업지원 등 다양하지만 이같은 사례는 생계비지원 등 경제적 지원이 가장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공 회장은 "범죄피해 이후 피해자들에게 가장 큰 고통은 경제적인 어려움"이라며 "사건 초기부터 경제적으로 안정될 수 있도록 조기에 지원해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범죄피해자 트라우마, 새로운 '가해자' 되기도

이같은 범죄피해자 보호가 제때 이뤄지지 않는다면 피해자의 트라우마나 증오는 새로운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지난 2008년 12월 경북 경주에서는 중국 교포인 아내가 가출한 것에 화가 난 C씨가 아내를 소개해준 제수를 살해하는 일이 발생했다. C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 자살했다. 2년 뒤 C씨의 동생 D씨도 아내를 잃은 상실감에 자살했고, 그의 두 아들은 누나의 손에 맡겨졌다.

시간이 흘러 지난해 13세가 된 큰아들은 밤새 인터넷 게임에 빠져 학업을 게을리했고, "게임을 너무 자주 한다"라며 고모가 자신을 꾸짖자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이를 목격한 동생 또한 살해하려 했다.

공 회장은 "범죄 피해를 본 이들은 평생 생각해본 적도 없는 사건충격으로 인해 트라우마가 매우 극심한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다"라며 "피해자의 심리상태를 고려한 단계적 치료프로그램의 제공도 매우 중요하다"라고 했다.

◇ "범죄 피해자 보호는 국민 복지"…"보호는 피해자가 원하지 않을 때까지"

범죄피해자 보호와 지원은 피해자들이 만족할 때까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들이 다시 국가와 사회를 신뢰하고, 일상생활을 안정적으로 영위할 수 있어야 성공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911테러 당시의 피해자들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국가와 사회로부터 보호와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 회장은 "범죄피해자 보호와 지원은 국민복지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라면서 "범죄피해자들의 고통은 장기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감안, 보호와 지원은 피해자들이 더는 원하지 않을 때까지 제공돼야 한다"라고 밝혔다.

cho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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