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미의 공감 스토리텔링]다문화가정 대안학교 설립한 가수 인순이..외로운 소녀 에레나, '해밀학교' 엄마가 되다

2016. 5. 25.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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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어주세요. 어두운 동굴 문을 이제 그만 열어주세요. 에레나는 내 우울한 유년, 어두웠고 어려웠던 시절의 자화상이기도 하고, 온갖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움으로 인도하는 황금의 열쇠이기도 합니다.”

1987년 인순이의 솔로 음반 <에레나라 불리운 여인> 음반 케이스 뒷면에 인순이가 쓴 글이다. 그 음반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곡 ‘비닐장판 위의 딱정벌레’는 에레나의 외로움을 절절하게 담아낸 명곡이다.

“이봐요, 에레나. 무얼하나. 종일토록 멍하니 앉아 어떤 공상 그리할까. 시집가는 꿈을 꾸나, 돈 버는 꿈을 꾸나. 정말 에레나는 바보 같아. 오늘 하루 이런 난리. 딱정벌레야 너는 아니. 비닐장판 위의 딱정벌레, 하나뿐인 에레나의 친구, 외로움도 닮아가네. 외로움이 닮아가면 어느 사이 다가와서 슬픈 에레나를 바라보네. 울지 마요….”

‘비닐장판 위의 딱정벌레’를 아는 사람이라면 인순이가 부르는 ‘거위의 꿈’을 듣고 느끼는 감동은 배가된다. 삶의 경험이 깊이 발효된 목소리가 전하는 감동은 묵중하다. 유년의 어두운 동굴 문을 열고 나온 에레나는 데뷔 39년차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로 우뚝섰고, 자신과 비슷한 유년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주고자 대안학교를 세웠다. 학비 없는 배움터 ‘해밀학교’ 설립자 김인순을 아이들은 ‘큰엄마’라고 부른다.

“교무실에 쌍무지개가 피었다/ 인순쌤 구름이 비를 쏟아낸다/ 쌍무지개 더욱 짙게 피어난다/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게 개면 비로소 해밀이 된다.”(‘쌍무지개’ 해밀학교 학생 정은찬)

‘해밀’은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이라는 뜻이다. 피부색, 언어, 생활고 등 복합적인 문제로 다중 고통을 겪고 있는 7만명에 가까운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전문적으로 돌보는 학교가 필요하다고 오랜 시간 생각해 왔다. 아이들이 처한 어려움을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키워주는 학교를 만들고 싶었고, 2013년에 꿈은 현실이 되었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전문적으로 돌보는 ‘해밀학교’를 세운 가수 인순이씨. / 박상미

뜻은 좋지만, 힘든 일이 많을 것 같아요.

“학교를 운영하다 보면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하지만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재미가 쏠쏠해요.(웃음) 하나 해결하고 나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고, 몇 달 지나면 또 벽을 만나고요.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고 책임져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힘들면 놓을 수는 있으나 놓아서는 안 되는 일이죠.”

학생들이 선생님들과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는 전액 무료 중학교, 입학조건이 까다로울 것 같아요.

“입학조건은 거의 없어요. 면담을 해서 우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아이가 아니라면, 웬만하면 저희가 다 감당하며 키울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다문화 가정 아이들 중에는 여기서 태어난 아이들도 있지만, 엄마가 재혼을 해서 한국으로 올 때 현지에서 낳은 아이를 데리고 입국하는 경우도 있어요. ‘중도 입국’이라고 하는데요, 그 아이들은 이미 열일곱, 열여덟 살이 돼서 들어와요. 기역 니은도 모르고, 한국말도 모른 채로요. 또 탈북한 아이들, 난민 아이들, 이들이 모두 ‘다문화’의 범주에 속해 있어요. 우리 학교에서 키워야 할 아이들이죠. 그리고 ‘학교 밖’ 아이들도 있어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저희가 데려와요. 다문화 학교로 만들었지만 부모가 키우기 힘든 아이들은 우리가 키우겠다는 마음으로 학생들을 받고 있어요. 엄마가 혼자 키울 수 없는 사정이 있으면 초등 6학년도 받아요. 가까운 데 초등학교가 있으니까 그 학교에서 공부하게 하고, 방과 후에는 우리가 키우면 돼요.”

최근에 <해밀학교> 학생과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는데, ‘큰엄마’는 엄마보다 더 가깝고, 친구 같은 존재라고 하더군요.

“제가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도 ‘해밀학교’ 아이들이에요. 우리 학교에 한국말을 하나도 못하는 필리핀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2년 반 만에 검정고시에서 60점을 돌파하고 합격했어요. 정확히 60.8점! 기적 같은 일이에요. 저는 이 아이들이 한국 사람으로서 한국 땅에서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면서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건강하게 자라서, 인간관계도 지혜롭게 맺어나가는 사람이 되길 바라요.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내가 싸워야 하는지, 참아야 하는지, 판단을 못할 때가 있잖아요. 우리는 공부는 물론이고, 이런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학교가 되고 싶어요. 4월 23일이 우리 학교 개교기념일이었어요.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연락을 해서 1~2년 다니다 떠난 아이들, 중간에 검정고시 합격해서 나간 아이들, 졸업생들이 다 모여서 잔치가 벌어졌어요. 모두 씩씩하게 자기 길을 가고 있어요. 저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행복하게 살길 바라요. 아이들이 하고 싶은 기술을 배울 수 있게 해주고, 재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싶어요. 기회를 만나야 아이들이 재능을 펼칠 수 있으니까요.”

학교 근처에서 학생들과 송어체험 도중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인순이씨. / 인순이씨 제공

수업을 직접 하실 때도 있나요? 아이들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나요.

“아이들 속에 앉아서 같이 수업을 들을 때는 있지요.(웃음) 저는 같이 밥 먹고 놀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고민 속으로 들어가요. ‘야, 너네 엄마 아빠는 왜 사랑했다니? 왜 한국에서 우리를 낳았다니?’ 물으면 아이들도 ‘그러게 말이에요’ 하는 눈빛으로 저를 쳐다봐요. 그럼 제가 말하죠. ‘근데 내가 나이가 드니까 알겠더라. 사랑하는데 그걸 누가 말리니? 너희도 서로 좋아하는 사람 있잖아. 서로 사랑했으니까 우리를 낳은 거야.’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요. 부모가 헤어지면서 상처받은 아이들은 사춘기를 수십 년 동안 끌고 갈 수 있거든요. 엄마, 아빠 두 사람의 사랑 문제, 부부 문제에 내 인생을 연결시켜서 우울하게 살지 말자고 저는 말해요. 나도 우리 엄마, 아빠 때문에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는데, 부모님 때문에 내 인생을 망가뜨리지 말자고 말해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고, 우리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싶어요.”

선생님의 아픔과 경험이 아이들에겐 가장 좋은 약이 되겠어요.

“나도 어릴 땐 아버지를 원망한 적도 있죠. 제가 2년 전에 미주 투어를 다녀왔는데요, 그때 참전용사들을 초청해서 노래를 했어요. 공연 끝나고 난 후에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그분들께 ‘당신들이 한국전쟁에 왔을 때 몇 살이었어요?’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17살, 18살이라는 거예요. 유엔 공동묘지에도 17살짜리의 묘가 있어요. 아버지라고 생각하면 원망하는 마음이 들죠. 하지만 17살짜리 남자아이, 남의 나라 전쟁에 참전한 아이가 내 아들이라고 생각하면 이해 못할 게 없더라고요. 들어보지도 못한 남의 나라에 와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는데 얼마나 불안했겠어요. 그 불안한 마음을 이겨내려고 사랑을 찾고 여자를 만날 수도 있었겠죠. 그때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어요.”

해밀학교 1회 졸업식 때 예쁘게 화장하고 한복을 입은 졸업생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인순이씨. / 인순이씨 제공

‘해밀학교’에는 마음 아픈 아이들이 많잖아요. 그 아이들의 가장 좋은 상담자 역할을 맡고 계시네요.

“제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이해 못할 아이는 없어요. 저도 시도는 안 해봤지만, 자살 생각을 안 해봤다면 거짓말이죠. 약 먹고 죽으려니까 약값이 없고, 뛰어내리려니까 아플 것 같고.(웃음) 어느 날 새벽에 한 녀석이 문자를 보내왔어요. ‘선생님, 저 지금 학교 옥상에 와 있어요.’ 저는 바로 일어나서 자는 선생님들 다 깨워서 애를 찾아보라고 당부하고, 학교는 난리가 나죠. 하지만 저는 아주 침착하게 답을 해요. ‘달빛이 그렇게 좋으냐? 여기는 별도 안 보이는데, 거기 달빛은 어때?’ 이러면서 시간을 끌어요. 그러면서 계속 얘기를 나누죠. ‘추운데 얼른 내려와~ 집에서 자자. 응?’ 그러면 아이는 ‘나는 선생님이 이래서 좋아요’ 그래요. ‘그치? 나도 네가 얼마나 착한 아이인지 알아. 다음에 또 옥상에 올라가게 되면, 달 보면서 예쁜 시 하나 써주라!’ 이러죠. 왜 그러냐고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니라 그냥 평소처럼 대하는 거예요. 농담처럼 이야기하다 보면 아이가 깔깔깔 웃다가 해 뜨기 전에 내려오게 되어 있어요.(웃음) 얼마 전엔 졸업생 하나가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 많이 힘든 것 같더라고요. 우리 집에 불러서 재우고, 부산으로 여행을 갔어요. 유엔 공동묘지에 가서 온종일 같이 기도했죠. 손잡고 다니면서 맛있는 거 먹고, 바다도 보고요. 아이들은 어른이 훈계하는 거보다 같이 있으면서 안아주고 얘기 들어주면 금세 마음 문 열고 얼굴이 밝아져요.”

심리학 전공한 사람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해주니까, 졸업을 해도 인순이 엄마를 떠나지 못하겠네요. 마음 다 털어놓아도 될 것 같은, 안겨서 울면 등 두드려 줄 것 같은 사람…. 늘 활기찬 모습이 보기 좋지만, 가끔은 저 사람 늘 웃느라 참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삶의 바닥 끝까지 내려가 본 사람은 더 내려갈 곳이 없어서 올라올 수밖에 없어요. 어려서부터 삶이 내게 가르쳐 준 것 같아요. 덕분에 저는 잘 참는 어른으로 자랐죠. 저는 술도 못 마시고 담배도 못 피기 때문에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혼자 참아야 해요. 가족 앞에서는 늘 밝은 목소리로 얘기하지만, 혼자 있을 땐 엉엉 울기도 해요. 얼마 전에 무척 힘든 일이 있었는데, 조찬 모임에 가서 밝게 웃으며 사람들을 만난 뒤에 혼자 차에 탔는데, 그때부터 눈물이 멈추지를 않는 거예요. 주차장을 빠져나올 때 엉엉 울면서 주차비를 드렸더니, 주차비 받는 분이 ‘왜 울어요. 울지 마세요.’ 하며 저를 위로해 주시는 거예요.(웃음) 무대가 아닌 곳에서 제가 우는 모습을 본 건 그 사람이 유일할 거예요. 긴 시간 울고 싶어서 홍천에 있는 학교로 차를 몰고 갔어요. 가는 동안 실컷 울고, 웃으면서 학교에 들어갔죠. 선생님들과 우리 아이들을 만나니 마음이 환해져서 집으로 돌아왔어요.”

해밀학교 학생들과 수업을 하고 있는 인순이씨. / 인순이씨 제공

늘 씩씩해야 하고, 쓰러져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

“청소년 시절부터 집안의 가장이었기 때문에 저는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동생을 제가 책임지고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고등학교 입학도 포기해야 했죠. 어릴 때 엄마 혼자 저를 키우느라 너무 가난했어요. 월말이 되면 구멍가게 주인이 외상값 받으러 오고, 집주인이 방세 받으러 와서 엄마 어디 있냐고 다그쳐요. 엄마는 방에 숨어서 ‘엄마 없다고 말해줄래?’ 그래요. 저는 망설이다가 ‘우리 엄마가… 없다고… 말해 달래요…’ 그랬어요. 어릴 때부터 거짓말은 못하겠더라고요.(웃음)”

페이스북을 통해서 <해밀학교>가 문 연 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지켜봤어요. 선생님, 마을주민, 학생들, 모두가 가족처럼 재밌게 지내더라고요. 1기 졸업식 때 예쁘게 화장하고 한복을 차려 입은 아이들이 눈부시게 환하더군요.

“다섯 명이 졸업을 하고 고등학교로 진학했어요. 시집 보내는 마음이었죠. 최고로 유명한 곳에서 메이크업을 받게 하고 예쁜 한복도 입혔어요. 마을 어른들도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해 주시는지 몰라요. 같이 농사도 짓고, 축제 때는 돼지도 잡아 오고, 김장 담그기 행사도 같이하고요. 우리 선생님들도 천사가 따로 없어요. 그들이 다 모여 사는 곳이 ‘해밀학교’입니다. 우리의 꿈은 학교가 인가를 받는 거예요. 인가를 내면 선생님과 아이들의 자긍심도 달라지겠죠. 아이들이 국가에서 인증하는 졸업장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학교는 후원금으로 운영되나요? 학교 인가를 받는 건 많이 어려운가요.

“처음 1년 동안은 제 돈으로 모든 걸 다 했어요. 그런데 지인들이 혼자 다 키우려고 하지 말고 많은 사람들이 마음으로 함께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후원을 받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300여명이 후원해 주세요. 매월 1만원, 2만원, 5만원 내시는 분들도 있고, 한 번에 500만원을 후원하는 분도 있어요. 우리는 작은 마음을 정기적으로 후원하시는 분들이 참 반가워요. ‘우리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아이들도 느낄 수 있고요. 지금 학교 옆에 폐교를 하나 샀는데, 6억이 통장에 있다는 것을 증빙해야 국가 지원을 받을 수 있어요. 많은 분들이 마음을 모아주셔서 4억이 됐어요. 하지만 아직 2억이 모자라요. 후원금을 받으러 계속 다녀야 하는데, 지칠 때도 많아요. 어떤 사람들은 내가 왜 당신 사업에 후원을 해줘야 하느냐고 말해요. 우리는 사단법인이기 때문에, 제가 학교 일을 그만둬도 학교에 낸 수억원 중에 10원도 못 가지고 나와요. 해마다 학교 운영비의 절반을 제가 내기 때문에, 후원금을 요청할 때도 떳떳할 수 있어서 좋아요.”

해밀학교 학생들과 수업을 하고 있는 인순이씨. / 인순이씨 제공

방송에 ‘해밀학교’를 자주 소개하면 후원이 늘지 않을까요.

“제가 원치 않아요. 그들은 자꾸 아이들이 눈물 흘리는 장면을 원해요. 아이들에게 밝은 미래를 보여주려고, 밝은 웃음을 찾아주려고 학교를 연 건데, 왜 아이들의 아픔을 들춰내고, 눈물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하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쉬지 않고 다니면서 도움을 청하면 돼요. 아이들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많이 웃고!(웃음)”

이제 다 이룬 것 같은데, 남은 꿈이 있나요.

“전 앞으로도 열심히 일할 거예요. 아니 일해야만 해요. 힘들게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을 응원해 주고, 그들이 기술을 배우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고 싶어요.”

그녀를 만나던 날, 그녀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고, 지금도 여전히 힘든 스물두살 제자 J를 데리고 나갔다. 함께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J가 힘을 얻게 될 것 같아서였다. 학생의 사정을 들은 그녀는 조용히 J의 전화번호를 입력해 갔다. 그리고… 그녀는 J에게 매일 문자메시지로 말을 걸고 있었다. “우리, 힘들어도 웃으면서 살자. 언제든 힘들면 내게 도움을 청해. 그리고 나랑 같이 좋은 강의 들으러 다니자. 난 모르는 게 많아서 강의 들으러 열심히 다닌단다. 답답한 날엔 같이 산에 갈래?” 학생이 보여준 문자메시지다. “밥 굶지 말라고 용돈도 주셨는데, 어떡하죠?” J의 눈이 빨갰다. J에게도 또 하나의 든든한 엄마가 생긴 것 같아서 더불어 기뻤다.

하나밖에 없는 딸, 박세인양은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 사이언스를 전공했고, 다음 달에 졸업한다. ‘해밀학교’ 아이들 자랑에 열정적이던 그녀가 세인이 이야기가 나오자 말을 아꼈다. 입학 당시에 ‘엄마를 닮아서 열심히 산다는 얘기를 듣고 싶다’고 말하던 소녀는, 얼마 전 세계인이 다 아는 글로벌 기업 신입 공채에 합격했다. 졸업식 날은 졸업생 상위 10% 이내에 든 학생에게만 주는 상도 받는다. 입사 이야기, 수상 이야기를 그의 지인에게서 듣고 축하 인사를 건네니, 그건 절대로 쓰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다. 이 글을 보면 그녀는 내게 화낼 것이다. 하지만, 해밀의 아이들과 엄마의 사랑을 나누어 가진 세인씨 참 장하다고, 엄마처럼 열심히 사는 모습 멋지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가난, 혼혈, 한부모 가정, 중졸…. 친구가 없던 외로운 소녀 에레나는 편견과 차별의 어두운 동굴 문을 활짝 열고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법을 가르치는 ‘해밀학교’의 엄마가 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개념 있는 여자’ 김인순. 지금처럼 강하고 따뜻한 엄마의 모습으로 더 많은 아이들을 안아 줬으면 좋겠다.(사단법인 인순이와 좋은 사람들-신한은행 100-028-968075)

<박상미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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