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봐주기 힘들다는 말에.. "시어머니가 애 못 낳게 한다"는 며느리

2016. 5. 26.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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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다방으로 오세요]

황혼 육아의 감옥에 갇혀 신음하는 분들이 우리 별별다방 손님들 중에도 꽤 많으신 듯합니다. 그분들에게서 날아온 눈물겨운 사연들을 읽다보면 저절로 깨닫게 되는 점이 있습니다. 별별다방에 사연까지 쓰게 하는 그들의 고충은, 손자 때문에 얻은 관절병이 아니라, 감사를 모르는 자식들의 무정한 말 한마디라는 점입니다. 육아 방식을 '지적질'하고, 파출부 취급하는 딸 때문에 어느 분은 말합니다. 딸 아이는 절대 봐주지 마라! 그런가 하면 오늘의 손님은 며느리한테 상처를 받으셨네요. 당나귀의 허리를 부러뜨린 마지막 지푸라기는 무엇이었을까요?

홍여사 드림

10여 년 전, 하나뿐인 아들 장가보낸다고 하자, 제 친구들은 축하의 말과 함께 이런 조언을 하더군요. 신혼부부를 아예 멀찍이 떼어놓고 당분간 관심 끊고 살라고요. 요즘 애들은 우리 때와 다르다고, 며느리와 잘 지내 볼 요량으로 자꾸 다가가 봐야 중간에서 내 아들만 힘들어진다고요. 먼저 아들 장가보내 본 친구들의 경험담이기에 저는 그 말을 새겨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애들을 밀어내도, 애들이 제게 다가오더군요. 곧 태어날 아이를 키워달라는 겁니다. 그것도 저희들 집에 와서 지내며 말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예상을 했던 일입니다. 좋은 직장 다니는 며느리이고, 앞으로도 계속 맞벌이를 한다니 누군가는 아이를 키워야겠지요. 손자 키우는 친구들의 그 모든 하소연이 떠올라 아뜩하긴 했지만, 저는 마음을 다잡고 그 부탁을 받아들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며느리가 굳이 안 해도 좋을 말을 냉큼 내놓더군요. "우리 엄마는 몸이 약해서 못해요, 어머니. 그리고 울 엄마, 평생 너무 불쌍하게 살았잖아요. 더는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요."

저는 이게 무슨 말인가 했습니다. 사부인이 몸이 약하다는 것도 저는 미처 몰랐지만, 평생 불쌍하게 살았다는 말은 또 무슨 소리인지. 제가 알기로 사부인이나 저나 별반 다를 게 없는 보통 사람의 삶을 살아왔고, 지금은 똑같이 외로운 독거노인 신세입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친정 엄마는 더는 고생하면 안 되는 사람이고 시어머니는 고생 좀 더 해도 되는 사람인지….

설령 속마음은 친엄마를 더 생각한다 해도, 다 같은 부모 자리를 그렇게 둘로 나누어 말하다니…. 저도 이제는 더 고생 안 하고, 자식 보호를 받고 싶은 나이이지 않습니까?

사실, 친구들은 이런 말도 했더랬습니다. 절대로 애는 봐주지 마라. 그러나 저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달리 생각했습니다. 내 몸, 내 여생만 생각하면 얼른 내빼버리는 게 상책이겠지만, 부모·자식 간에 내 생각만 할 수 있나요? 봐달라고 하면 뼈가 부서지도록 봐줘야지요. 그리고 아마 입찬 소리 뱉어내던 친구들도 속생각은 저와 비슷했을 겁니다.

그런데 친손녀 둘을 8년 동안 키워주고 도우미 신세를 겨우 면한 지금은 생각이 좀 다릅니다. 손자는 봐주지 말라는 인생 선배들의 말은, 순전히 몸이 고되어서 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내 딴에는 자식이 안쓰러운 마음에, 내 몸을 바수며 돕는 것인데, 그 마음을 자식은 몰라주더군요. 물론 인사나 듣자고 한 일은 아닙니다만, 손자를 돌봐주는 시간 동안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에 감사와 신뢰보다는 짜증과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습니다. 예전 같으면 시어머니가 일방적으로 며느리를 가르치는 관계였지만 요즘은 양쪽이 모두 숨을 죽이며 삽니다. 저는 잔소리를 안 하려고 기를 쓰고, 며느리는 저한테 아는 척을 안 하려고 조심을 하고요. 엄마와 딸 같으면 한판 다투고 나서 풀어지기라도 할 텐데, 고부는 그렇게 풀 수조차 없으니…. 그 과정이 아이 키우는 수고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녀들도, 이제는 이 할머니를 별로 쳐주지를 않아요. 물고 빨고 키워놓으니 제 어미밖에 모르더라는 육아 선배들의 말을 새기며 또 한 번 웃을 수밖에요.

그런데 도저히 그냥 웃어넘길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사실 우리 아들 내외는 한동안 셋째를 갖는 문제로 고민을 했습니다. 딸이 둘이고 보니 아들 욕심도 났던 게지요. 어느 날 며느리가 저에게 넌지시 묻더군요. 셋째 키워주실 수 있느냐고. 그래서 제가 손사래를 치며 마다했습니다. 더는 사양한다 얘야. 내 나이도 이제 곧 칠십이다. 저라고 손자 욕심이 안 나는 거 아니지만, 당장 제 앞에 떨어질 숙제를 생각하니 저절로 마음이 접히더군요.

그런데 그날 이후 며느리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시어머니가 아이 못 낳게 했다고요. 누가 며느리에게, 셋째 생각 없느냐 물으면 며느리는 목청을 높여서 대답합니다. 우리 시어머님이 반대하셔서 못 낳았잖아요. 그리고는 저한테도 못을 박습니다. 어머님이 싫다고 하셔서 셋째 못 낳은 거 아시죠?

저는 그 말이 억울하고 불편합니다. 힘들어서 키워줄 수 없다고 하는 게, 아이를 못 낳게 하는 건가요? 원칙적으로 자식은 저희가 알아서 낳고 키워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러나 저는 잠자코 입을 다뭅니다. 세월 가면 저도 철이 들겠지요. 다만 한 가지 씁쓸한 것은, 며느리의 속이 엿보여서입니다. 늙은 시어머니의 수고를 고마워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런 생각, 그런 말은 차마 안 나올 겁니다. 어쩌면 며느리는 시어머니보다 자신이 그동안 심적으로 더 고생 많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 봐주는 시어머니 눈치 봐가며 사느라 말입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보다는 서운한 마음만 남아 있는지도 모르지요. 이것이 고부 관계의 한계일까요?

저도 이제 어디 가면 그런 말을 합니다. 손자는 봐주지 마라. 특히 며느리 아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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