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人터스텔라] 21년 된 콩트 코메디 듀오 컬투 "미국이면 저택에 개인 비행기 있어야"

김지수 대중문화전문기자 입력 2016. 5. 28. 06:59 수정 2016. 5. 30. 15:0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역할이 정확한 콩트 코미디 듀오였다. 컬투의 원조는 컬트 트리오다. 그리고 애초의 명명대로 그들의 코미디는 ‘컬트적인(마니아층의 광기에 가까운 열광)’ 기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사진=이태경 기자.
일본 개그맨 기타노 다케시의 심상한 기운이 풍기는 정찬우와 개구쟁이 김태균. 그들의 라디오 콩트 연기는 전부 리허설 없는 즉흥이다./사진=이태경 기자
정찬우는 주목받는 걸 좋아하지 않아 자신이 연예인 기질이 맞는다고 한다./사진=이태경 기자
긍정적인 기운이 넘치는 김태균./사진=이태경 기자
지금 헤어져도 여한이 없다는 컬투./사진=이태경 기자
모든 게 다 운이었다고 말하는 정찬우./사진=이태경 기자
김태균은 4살 위인 정찬우가 늘 고맙다고 했다./사진=이태경 기자
21년 된 노부부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컬투./사진=이태경 기자
컬투 치킨 프랜차이즈 사업은 책임감을 갖고 진행하고 있다./사진=이태경 기자
’컬투쇼’ 10년이 눈깜작할 사이 지나갔다./사진=이태경 기자

21년 간 변함없는 코메디 듀오, 치킨 프랜차이즈 사업도 순항 중 부동의 1위, 10년 된 라디오쇼 ‘컬투쇼'는 대본 미리 안보는 ‘즉흥 방송’이 매력인터넷 기부 방송으로 1년 6개월 만에 17억 기부

강호동이 넘치는 스태미너로 예능인의 코미디 체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고, 유재석이 버라이어티계에 동심과 형제애를 불어넣고, 김제동이 재담에 정치를 섞어 ‘억압된 성적 본능’을 흘려보냈다면, 컬투는 21년 동안 변함없이 공개 코미디에 어울리는 만능 ‘콩트 꾼'으로 존재해왔다.

자기 안에 깃든 명랑한 욕망을 자동 타자기 같은 혀로 튀어 올릴 수 있는, 말하자면 정해진 시간에 기대에 맞춰 팡파르를 울리는 피에로 같은 존재로!

지난 5월 1일, SBS 라디오 POWER FM, 107.7MHz에서 방송되는 ‘2시 탈출 컬투쇼’가 만 10년을 맞았다.

동 시간대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청취율 부동의 1위를 고수한 채. 웃음의 위력은 크다. ‘컬투쇼 베스트 사연'은 몇 년째 인터넷 인기 동영상으로 네티즌들의 사랑을 받는다. 방송국엔 라디오를 듣다 자살을 돌이켰다는 편지도 도착한다.

자연스럽게 과장하고, 개구지게 일탈하는 컬투의 유머는 우리를 자유롭게 풀어준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답게, 아줌마는 아줌마답게, 군인은 군인답게, 소녀는 소녀답게.

사연 속에선 다양한 사람이 등장한다. 사자성어와 서양 철학으로 경로당에서 세기의 결투를 벌이는 할아버지들, 면접 보러 갔다가 습관대로 벽을 더듬어 불을 끄고 나온 취준생, 혼자서 세숫대야에 똥을 싸다 119대원을 맞은 자취생, 할머니에게 아들 목소리를 들려주는 택배 아저씨, 우는 아이 앞에서 아이스크림 옵션 매뉴얼만 읊는 융통성 없는 청년, 경비실 안내 방송으로 고주망태가 된 남편을 찾으러 온 아줌마...

채플린이 말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그런데 컬투는 우리의 일상 가까이에 웃음의 돋보기를 들이댄다. 컬투의 콩트를 들으면 기가 차서 웃고, 슬퍼서 웃고, 처절해서 웃고, 어이없어 웃고, 나도 웃고 너도 웃고, 웃겨서 웃을 수밖에 없는 사연들. 웃다 보면 인생 열심히 웃다 가는 거 말고 별거 있나 싶기도 하다.

“전 이상한 아이였어요. 2남 1녀 중 차남이었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혼자 돈을 벌었어요. 철사, 구리를 주워서 고물상에 가져다주고 놀이터 그네와 시소 주변에서 떨어진 동전을 모아서 먹고 싶은 걸 사 먹었죠.

그러던 어느 날 저의 재능을 발견했어요.아버지가 제가 6살 때 제가 한 말을 녹음해 뒀다 들려주셨는데 깜짝 놀랐어요. 녹음기 안에서 어린 애가 각 지역 사투리를(북한말까지) 흉내 내며 공연을 하고 있었어요. “난 천재구나, 코메디언이 되어야지” 그렇게 생각했죠.” 그는 1994년 7월 8일 MBC 공개 개그맨 시험에 합격했다. 정찬우(49세)다.

“사 남매의 막내였어요. 아버지가 6살 때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혼자서 보험 외판원 하면서 가족을 부양했어요. 어릴 때부터 집에서 밥 해먹으면서 혼자 있을 때가 많았어요. ‘끼’를 발견한 건 교회에서였어요. 교회 행사할 때, 무대에 나가 뮤지컬도 하고 사회도 보면서 신이 났죠. 형편은 어려웠지만 밝게 보이려고 노력했죠.” 그도 1994년 7월 8일 MBC 공개 개그맨 시험에 합격했다. 김태균(45세)이다.

키도 비슷하고 얼굴 크기도 비슷했던 두 청년은 한 친구를 더해 ‘컬트 삼총사'를 만들었다. 2002년 멤버 정성한이 탈퇴하면서 지금의 ‘컬투'가 되었다. 그들은 일반적인 개그맨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단역으로 여기저기 끼어 개그를 하는 대신, 팀으로 개그를 짜서 주도적으로 콩트를 만들었다. 외로운 ‘코미디 재야 인생'이 시작되었다.

지금이야 예능이 대세고, 스타 예능인으로 대우를 받지만, 당시만 해도 코미디언은 방송 출연자 피라미드에서 가장 아래 단계에 있었다. 그들은 권위적으로 군림하는 PD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대학로 극장을 빌려 자기들만의 공연 세상을 펼쳐가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컬트 트리오'의 ‘개그콘서트'.

“소극장 공연이 너무 잘 됐어요. 그래서 방송국 개그 프로에서도 기가 죽지 않고 팀으로 하겠다고 했어요. 자연스럽게 퇴출이 됐죠.” 그뒤 컬투는 예능 PD들에게 지배받지 않는 ‘자유로운 콘텐츠 제작자'가 되었다.

그들이 노래도 하고 콩트도 하는 대학로 소극장 공연으로 대박을 터뜨리고 있을 때, KBS에서 전화가 왔다. “우리가 쓰는 있는 ‘개그콘서트'라는 이름을 방송 프로그램 이름으로 써도 되겠냐고요. 아무 생각 없이 그러라고 했죠.” 그게 지금의 KBS 간판 코미디 프로인 ‘개그콘서트'다.

‘개그콘서트'가 한창 인기를 끌자, 2004년 SBS에서는 몇몇 개그맨들과 함께 대항마인 ‘웃찾사'를 만들기로 했다. 전달력, 호소력, 변신이 뛰어난 목소리를 가진 이 ‘샴쌍둥이’는 초기 ‘웃찾사’를 공동설계한 개그 리더로 ‘미친 소' 코너를 만들어 시청률을 27%까지 끌어올렸다.

나는 10년 전 ‘웃찾사' 녹화 현장을 찾아 컬투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때 그들은 말했다.

“전형적인 슬랩스틱은 지양합니다. 우리의 뿌리는 스탠딩업 개그입니다. 표현의 영역이 확장된 보다 원초적인 것… 여장도 불사하는 일본 다운타운 개그 같은 겁니다. 말이 주는 세련미가 아니라면 극단적으로 말이 필요 없는 표현적인 개그 같은 거죠.”

지극히 컬트적이었던 컬투를 10년 만에 다시 만났다. 인터뷰에 앞선 사진 촬영에도 두 친구는 별말 없이 척척 포즈의 궁합이 맞았다. 닭가슴살로 체중을 관리하고 전자 담배로 연기를 뿜어내는 정찬우와 적당히 살오른 몸으로 적재적소에 알맞은 멘트를 찔러 넣는 김태균은 불균질해 보이면서도 평화로운 느낌을 주는 묘한 한 쌍이었다.

-컬투가 웃을 때는 언제인가요? 태균 씨는 명랑해 보이지만, 찬우 씨는 일본의 국민 코미디언이자 영화감독인 기타노 다케시처럼 약간 시니컬 해요. 기타노 다케시는 스탠딩 코미디 무대에서 남들 배꼽 잡게 웃겨 놓고 자기는 시무룩해요. 영화도 굉장히 허무적이고요.

정찬우(이하 찬우): 저는 오달수 씨가 그렇게 웃겨요. 자기가 왜 웃긴지 모르는 인간이 진짜 웃겨요. 제일 웃긴 사람은 김흥국 씨예요. 진짜 웃긴 사람은 절대 작정하고 웃기지 않아요. 그냥 봐도 웃긴 거예요.

-웃는 지점이 상당히 독특하군요. 어떤 영화가 가장 웃겼나요? 주성치표 코미디 영화?

찬우: 주성치 코미디 영화는 웃긴 장면을 화면 안에 반복적으로 박아 놓는 전형적인 백그라운드 코미디고요. 저는 가령 ‘태극기 휘날리며'같은 정극 영화를 보면서 웃음이 터져요. 원빈과 장동건이 격투하는 장면에서 아주 배꼽을 잡았어요. 처음엔 몰입해서 봤는데, 문제는 너무 오래 싸우는 거죠(웃음).

아무리 그래도 형제인데, 저 정도로 서로를 못 알아보고 싸우나 해서 빵 터졌어요. 엔딩도 너무 웃겨요. 벙어리 엄마가 국수를 말다가 1년 넘게 전쟁터 나갔다 살아 돌아온 아들 원빈을 만났거든요. 그런데 딱 1초 안아 주고 다시 국수를 마는 거예요(웃음).

김태균(이하 태균): 저는 15년 전 인도 영화 ‘컵'을 보고 많이 웃었어요. 그게 스님들이 그냥 축구하는 얘기인데, 배꼽을 잡고 웃었어요. TV는 ‘6시 내 고향'에서 나오는 어르신들 보고 웃어요.

-무성 영화 시대의 희극 배우였던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은 어떤가요?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습니다만.

태균: 대단한 양반이죠. 희극과 비극 사이에서 그 연기력 자체가 정말 어마어마해요.

찬우: 코미디는 연기력이 가장 중요해요. 배역을 맡는 것만 연기가 아니에요. 말하는 것 자체가 다 연기예요. ‘말 연기’죠.

-그런 면에서 두 사람은 ‘토커(Talker)’라기 보다는 ‘액터(Actor)’에 가깝죠.

찬우: 저는 색깔이 강해서 막 밀어붙이는 연기를 해요. ‘미친 소' 캐릭터처럼 에너지가 센 편인데, 설득되면 또 잘 먹혀요.

-다른 예능인들과 교류는 있습니까?

찬우: 다른 연예인 집단과 못 어울려요. 예능인들과 있으면 낯설어요. 신동엽 정도만 친하죠(신동엽은 MC들 중 유일하게 콩트의 신으로 불린다).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가 1등 MC도 아니고 2등 MC 정도인데, 라디오 DJ로는 또 최고잖아요.

이를테면 무림의 고수인데, 그 고수가 계파가 없어요. 그런데 그 공력이 엄청나서 소문이 많아 나 있는 거죠. 쟤들이랑 싸워봤자 지면 속상하고 이기면 부담스럽고, 그런 거예요.

-10년간 라디오를 했고, 동시대 주파수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부동의 1위라면, 정규직 SBS PD보다 더 힘이 강해보입니다. ‘야인'으로 그런 지위를 누릴 수 있는 비결은 뭔가요?

태균: 우리가 제일 잘해요. 잘하는데 열심히까지 하니까(웃음). 오래 갈 수 있었던 건 솔직해서예요. 우린 말도 안 되게 형식을 파괴해서 막 하는 것 같은데, 막 하는 것 같아도 선을 넘거나 거칠게 하진 않아요.

사실 딱딱한 말도 찰떡처럼 주물러 주는 토크쇼 MC로서의 재능이야 다들 출중하지만, 개그맨들이 작정하고 웃기려 들 때 불발처럼 터지는 ‘인신공격’과 웃음으로 인품의 흠을 물 타는 ‘자기방어적 자세’가 컬투에게는 없다.

-작가가 써준 라디오 오프닝 멘트 원고를 읽지 않는다는 게 사실인가요?

태균: 오프닝 멘트는 반년 넘게 안 읽었어요. 그랬더니 작가가 ‘십수 년 넘게 방송국 생활했는데, 오프닝 멘트를 읽지 않는 DJ를 만났다’고 써서, 그건 읽었죠(웃음).

찬우: 난 지금도 오프닝 멘트는 안 봐요. 그건 작가의 생각이고 작가의 문장이잖아. 그거 읽으면 내가 사라지는 것 같아요. 오늘이 ‘세계 평화의 날'이라고 설명하는 게 기존의 라디오 멘트였다면, 우린 그냥 “날씨가 흐려서 기분이 안 좋네요"하고 던져요.

세계 평화보다 내 기분이 먼저라는 이들의 태도는 청취자들에게 묘한 쾌감을 안겨주었다.

태균: 멋지고 서정적인 얘기는 내 얘기가 아니니까. 오늘 점심 국밥 먹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오늘은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나서 좀 우울하네요. 그렇게 그 순간의 진짜 내 말을 해요. 그러니까 소통이 잘 돼요. 작가들도 이젠 참고용으로만 원고를 주더라고.

인터넷에서 레전드 동영상으로 몇 년 동안 회자하고 있는 ‘컬투쇼 베스트 사연'도 모두 그들의 즉석, 즉흥 연기의 산물이다.

찬우: 청취자들이 보내는 웃기는 사연들은 처음 볼 때 가장 웃겨요. 내가 웃겨야 듣는 사람도 웃기거든요.

태균: 영화배우들도 미리 대본 분석해서 가는 사람도 있고, 현장의 기운대로 가는 사람이 있잖아요. 저희는 후자인 거죠. 저는 돌발 상황을 대비해서 대본의 윤곽만 조금 봐요.

-오로지 청취자들과의 교감이 최우선이란 건가요?

태균: 우린 청취자 사연도 재미없으면 그 자리에서 막 구겨버려요. 공개 방송에 온 방청객도 열심히 안 하면 윽박지르고 혼내죠(웃음). 그런데 그렇다고 우리가 자유인이냐? 아니에요. 자유롭게 편해 보이는 게 목표인 거죠.

찬우:(시큰둥하게) 매일 정해진 시간에 라디오 하면 자유는 없어요. 라디오가 우리 자유를 다 뺐었어요.

-진짜 프로페셔널 야인이군요. 마치 성감대처럼 상대의 쾌와 불쾌의 지점을 잘 알고 자극하는 것 같습니다. 우울할 땐 어떡하나요? 사람들은 2시만 되면 컬투의 입담에 지레 웃을 준비를 하는데요.

찬우: 우울해도 웃기는 방법을 알죠. 주변 상황이 너무 힘들고 지겨워도 웃길 수가 있어요. 어떨 땐 내가 참 기계 같다 싶을 때도 있지만, 이건 우리 일이에요. 좋고 싫고가 없죠.

태균: 신기하게 우울할 때도 기술이 나와요. 재작년에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그땐 정말 힘들었어요. 가슴이 천근만근인데도, 내 입은 막 저 혼자 말을 하고 있더라고.

‘2시 탈출 컬투쇼'는 2006년 5월 1일 첫 방송을 시작했다. 방송 일주일 전에 섭외된 터라, 대타였을 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과 함께. 공개 코미디에 능한 컬투는 제1의 조건으로 방청객을 요청했고, 첫 방청객으로 매니저와 코디, 작가 등 5~6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첫 전파를 탔다. 오프닝 음악은 당시 ‘웃찾사'의 코너인 ‘나 몰라 패밀리' 백 음악으로, 그조차 임시방편이었다(그 시그널이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그간 ‘컬투쇼'를 다녀간 방청객은 10만 명이 넘는다.

찬우: 보통 DJ들처럼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 전에 ‘박철의 2시 탈출'이 형식 파괴의 원조였는데, 그렇게 하고 싶었죠. ‘막방송'은 줄타기 같은 거예요. 못하면 욕먹고 물러나야 하는데, 다행히 우리 스타일이 잘 먹혔어요.

태균: 저는 그 전에 PMB 라디오 위성 방송을 잠깐 했었는데, 몇 명이나 들을까 너무 궁금했어요. 그래서 지금 듣고 계신 분 댓글 남기라고 했더니, 놀랍게도 딱 5명이었어요(웃음). ‘컬투쇼'는 10년 전에 급하게 출발했지만, 신기하게도 다 준비가 되어있었던 것 같아요.

정찬우는 모든 게 다 운이라고 했다. 1994년에 만났으니, 정찬우와 김태균은 21년 된 사이. 그들은 얼굴 크기도 목 굵기도 키도 체구도 비슷하지만, 그 외 많은 부분이 달랐다. 정찬우가 무성 영화 시대 배우 같다면, 김태균은 덩치 큰 이웃집 초등학생 같다. 둘 다 웃기는 덴 도가 텄지만 정찬우가 약간 심각하다면 김태균은 명랑하다.

정찬우가 힘을 쭉 뺀 ‘할아버지' 연기의 달인이라면, 김태균은 터질 듯이 돌발하는 ‘소년 소녀' 연기의 달인이다.

그들은 서로를 ‘노부부'라고 부른다. 21년 함께 산 노부부는 식성도 다르다. 정찬우는 매운 국물과 생선을 좋아하고, 김태균은 맑은 국물과 고기를 좋아한다. 둘이 있을 때 정찬우와 김태균은 아무 말 없이 코 박고 각자의 일을 한다. 그들이 21년간 금슬이 좋았던 이유는 두 가지가 맞았기 때문이다. ‘마음대로' 그리고 ‘마음껏'! 이름하여 자유와 열정이다.

-슬럼프는 없었습니까?

태균: 컬트 트리오로 있다가 컬투로 바뀔 때, 처음에 사업이 잘 안 됐을 때… 좀 아쉬운 적은 있었지만, 하는 일을 못 하거나 그런 적은 없었어요.

찬우: 나이 먹으면서 배우는 게 있어요. 내가 다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다는 거예요. 이만큼 사랑받으면서 실수 안 하고 사는 게 감사한 거죠. 내가 어디서 날린 돈, 내가 한 실수로 또 누군가는 돈을 벌고 우연히 자기 포지션이 생기고 그랬을 거예요. 사랑, 인격, 돈… 모두 다 내 것이 아니고 적당히 돌면서 분배되고 있다고 보면, 슬럼프에 쉽게 안 빠져요.

-타의에 의해 일을 못 하거나 수입이 끊긴 적은 없었단 말이지요?

찬우: 가장 큰 건 운이죠. 정말 다 운이에요. 소극장 공연이 잘 된 것도 컬투쇼가 10년을 맞게 된 것도 운이 없으면 불가능해요.

-컬투는 오래전부터 컬투 엔터테인먼트로 독립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몇 경우를 보면 선배 개그맨들이 만든 기획사는 불화도 많고 출연료를 안 주는 경우도 많던데 왜 그런가요?

찬우: 출연료가 적어서 그래요. 재능 있는 개그맨들은 많은데 코미디 프로는 너무 적어요. 몇십 명이 나가서 연기하는데, 제작비도 출연료도 정말 짜거든요. 미국에서 우리 정도의 인기면, 사실 대저택에 살면서 개인 비행기 타고 다녀야 맞는데 말이죠(웃음).

-얼마 전 오랫동안 우정을 다져오던 정우성과 이정재가 함께 아티스트 컴퍼니를 차렸어요. 소식을 듣고 어떤 기분이 들던가요?

찬우: 부럽죠. 작품 출연료로 거액을 받고 일 년의 절반은 쉬고, 여행도 가고 연예인이라면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건데 말이죠.

태균: 저와 동갑인데, 정말 다른 생을 사는 것 같아요. 그들은 부러움을 주는 연예인이고, 우린 공감을 주는 연예인인 거죠(웃음).

저택에 살 지도 않고 개인 비행기도 없고 1년에 절반 휴가는커녕, 10년째 같은 시간에 출근해 방송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개미처럼' 열심히 살았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아동 학대 예방부터 쌀, 조정경기, 탈춤페스티벌까지 다양한 홍보 대사 활동을 하고 있던데, 어떤 목적이 있습니까?

태균: 없어요. 그냥 해요. 가령 11월 11일에 방송하면서, “오늘 ‘빼빼로데이' 이런 거 말고, 우리 쌀로 ‘가래떡 해먹는 날’로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 정도 말하면 우리를 쌀 홍보대사 시켜줘야 하는 데 말이죠" 그러면 진짜 기관에서 연락이 오는 거예요.

-라디오의 힘이 정말 대단하군요! 그 시간대엔 전 국민이 귀가 컬투의 입에 쏠려있다는 얘긴데요.

찬우: 하지만 저희는 정치적 신조? 금전적 보상? 이런 거 없어요. 그냥 들어오면 거절은 안 해요(웃음). 뭐 대단한 사명감은 없지만, 우리가 재미난 놈들이니까, 적어도 우리가 웃으면서 얘기하면 그 의미를 친근하게 받아들이니까요.

-특히 정찬우 씨는 기부를 컨셉으로 하는 인터넷 라디오 방송 ‘기부스'를 매주 한 번 진행하고 있더군요. 기부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찬우: 그것도 접근이 좀 웃겨요. 전 광고를 하고 싶었어요. 저희가 치킨 사업을 하니까 그것도 할 겸, 광고 방송을 하나 해보자, 그랬죠, 그랬더니 너무 속 보이는 거예요. 그럼 무료로 광고를 해주고 돈을 받아 전부 기부를 하면 되겠다, 그걸 ‘기부 천사' 션에게 얘기해서 같이 시작하게 됐어요.

아! 그런데 제가 진짜 지금은 마음이 바뀌어서 ‘기부스' 방송이 제일 행복해요. 1년 반 사이에 17억을 모아서 기부했어요. 저는 몸으로 하는 기부를 안 했으니, 절대 ‘기부인'이라고 제 입으로 말 안 해요. 전 제 아이도 균이 묻을까 봐 태어났을 때 못 만진 사람이에요. 아픈 아이들 돌보고 그런 거 맘 아파서 못해요.

한번은 ‘성인용품' 파는 분이 홍보도 하고 기부도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분들이 3백만 원 기부하면서 별도로 ‘딜도, 진동기' 등등 물건을 3백만 원어치 또 기부를 했어요. 이 처치 곤란한 걸 어떡하나 했는데, 그게 몇 시간 만에 동났어요. 장애인들한테 ‘성인용품'이 너무 절실했던 거죠.

그건 정말 제가 몰랐던 세상이에요. 또 한 번은 보육원 아이들한테 뷔페 식사권 20장을 기부했어요. 그랬더니 그 아이들이 그거 먹고, 너무 감사하다며 자기들끼리 십시일반 돈 모아서 10만 원을 기부하겠다고 가져왔어요. 와, 세상이 그렇더라고요.

-아름다운 이야기군요. 사업 얘기를 좀 해볼까요? 2011년부터 (주)컬투 에프앤비를 만들어 ‘컬투 치킨' 을 런칭했지요? 알다시피 치킨 프랜차이즈는 기술 없는 은퇴 직장인들이 자기 자본으로 처음 시작하는 절실한 생명줄 같은 건데, 연예인이 벌이는 치킨 사업은 그만큼의 책임과 진정성을 갖고 있나요?

찬우: 연예인들에게도 일반 대중들에게도 치킨 프랜차이즈는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비즈니스예요. 저희는 1년 동안 닭을 튀겨봤어요. 지금 5년째 사업을 지속하고 있고요. 주인이 나오고 안 나오고 가게 운영에 차이가 난다면, 저희는 직접 가게에 나오는 쪽이에요.

태균: 저희는 로열티와 가맹비를 안 받고, 인테리어도 원가에 제공하죠. 가맹점주들이 느끼는 고통을 같이 느끼려고 해요. 치킨집이 돈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 풀뿌리 잡는 심정으로 시작하는 사업일 텐데, 그분들이 우리 고객이라는 거 안 잊으려고 해요. 우리 대신 전쟁터에서 싸워주는 분들이다…

-CEO로서 두 사람의 경영 스타일은 어떻게 다른가요?

찬우: 저는 막 추진하고.

태균: 저는 뒤에서 꼼꼼하게 챙겨요. 참 저희 닭은 100% 국내산인 데다, 키운 농가 주인의 이름을 넣는 닭 실명제를 시행하고 있어요.

-코미디 전문학교가 생기면 무엇을 가르치고 싶은가요?

찬우: 저는 솔직함. 어떻게 웃기는지는 가르칠 수 없어요. 그건 재능이에요. 다만 개그맨은 솔직해야 길게 갈 수 있어요. 나를 꾸미기 위해 맘에 없는 말을 하면, 오래 못 가요.

태균: 저는 콩트 짜서 무조건 무대에 올려보라고 하고 싶어요. 천 번을 무대에 서서 대중 경험을 쌓으면 내가 재능이 있구나, 없구나 정도는 알게 되죠.

-사람들이 웃지 않아서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요?

태균: 종종 있죠. 가령 건설회사 남자분들이 모여 술 마시는 데 그림을 위해 저희를 MC로 불렀을 경우. 그런 분들은 절대 집중을 안 해요. 그럴 땐 관객 반응 신경 안 쓰고 우리 둘이 알아서 해요. “너넨 얘기해라. 우린 개그 한다.”

찬우: (씁쓸하게) 개그도 안되면 포기할 줄 알아야죠.

김태균은 슬하에 11살 아들을 두고 있고, 정찬우는 18살, 15살 남매가 있다. ‘웃기는’ 아빠를 둔 아이들은 행복할까? “집에선 조용한데,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엄청나게 웃기 대요.” 웃음은 그렇게 아이들 세대로 유전된다.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읜 김태균은 아들에게 재밌는 아빠가 되고 싶어 최선을 다한다. 아들이 웃으면 그걸 보고 아내가 웃는다. 달변가에 정이 많았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던 정찬우는 아버지처럼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딱 아버지만큼만 되고 싶어요."

21년 산 노부부는, 정말 21년간 손발 맞춰 잘 살아온 ‘노부부' 같았다. 혹여 제 갈 길 갈 상황이 온다 해도, ‘긴 시간 수고 많았다'고 서로를 놓아주겠다며. 그들이 지나가듯 내뱉은 ‘존재 자체가 고맙다’는 건, 대체 어떤 느낌일까?

오후 2시 SBS 라디오 POWER FM, 107.7MHz를 켜면, 어김없이 컬투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우울하면 우울한 대로, 신나면 신나는 대로, 기운 내서 장단을 맞추는 한결같이 근면한 우리의 친구. 하루가 영원처럼 제 나름의 산전수전 겪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들은 속삭인다. ‘웃으며 복이 와요'라는 평범한 진리를!

- Copyrights ⓒ 조선비즈 & Chosun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