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향신문] ㆍ연극 ‘보도지침’ 실제 주인공 김주언·신홍범씨
“김대중 사진을 쓰지 말 것” “부천서 성고문사건은 ‘부천사건’으로 쓸 것” “농촌 파멸 직전이란 표현을 쓰지 말 것”….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언론사에 하달했던 ‘보도지침’이다. 기사 작성부터 편집 방향까지 지시했던 ‘보도지침’은 1986년 9월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언협)가 월간 ‘말’ 특집호에 ‘보도지침, 권력과 언론의 음모-권력이 언론에 보내는 비밀통신문’을 게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여론이 권력에 의해 어떻게 조작되고 유포되는지를 낱낱이 폭로한 ‘보도지침’ 사건이 30년 만에 연극으로 만들어졌다. 연극 <보도지침>은 실제 사건에 극중 인물들이 같은 대학 연극반 출신이라는 허구를 더해 이들의 재판 과정을 그렸다.

연극 <보도지침>을 무대에 올리고 있는 서울 동숭동 수현재씨어터에서 ‘보도지침’ 사건의 실제 주역들을 최근 만났다. ‘말’지 발행 30주년을 맞아 마련한 공동관람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극단을 찾은 이들은 민언협에 보도지침 문건을 넘긴 김주언 시민사회신문 편집장(62), 조선일보 해직기자 출신으로 민언협 실행위원을 지낸 신홍범 두레출판 대표(75) 등이다.
공연 시작 전 김주언 편집장은 “‘보도지침’ 사건을 과거에 묻어버릴 게 아니라 현재의 시점에서 언론 자유의 문제를 다뤄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신 대표는 “‘보도지침’ 사건은 어떤 형태로든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며 “연극 공연을 통해 과연 오늘날 ‘보도지침은 없는가’ ‘언론은 자유로운가’ 등을 묻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독재정권이 언론 장악에 열을 올리던 시절 비밀문건은 어떻게 세상에 알려졌을까. 당시 김주언 한국일보 기자는 1985년 10월부터 10개월간 문화공보부가 각 언론사에 팩스로 보낸 584개의 보도지침이 담긴 문건을 복사해 민언협에 전달했다. 민언협은 ‘말’ 특집호를 발행해 언론의 자유가 훼손되고 있는 현실을 폭로했다. 당시 김 기자와 김태홍 민언협 사무국장(2011년 별세), 신홍범 실행위원 등은 국가보안법 및 국가모독죄로 구속됐다. 세 사람은 1995년 12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말’ 특집호가 나온 지 9년3개월 만이었다.
신 대표는 “무죄 선고는 우리를 기소한 검찰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그때 참 기뻤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4차 공판 법정진술에서 그는 “언론사 통폐합이 잇달았던 1980년 8월이 한국 언론의 ‘25시’였다면, ‘보도지침’을 폭로했다고 해서 우리를 법정에 세운 지금은 한국 언론의 ‘26시’다”라고 개탄한 바 있다. 김 편집장은 “변호를 맡았던 한승헌 변호사가 재판 중에 ‘이 사건은 불을 낸 사람이 119에 신고한 사람을 잡아 신문하는 격’이라고 했다”면서 당시를 회고했다.
“한승헌 변호사를 비롯해 작고하신 조영래 변호사 등 12명의 인권변호사들이 보도지침 사건의 변론을 맡아주셨지요. 밤을 새워가며 책을 만든 김태홍 사무국장 등 민언협 관계자들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등 저희를 지지해주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당시 미국·캐나다의 앰네스티 등 국제 인권단체에서도 항의성명을 발표했지요. 언론 자유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감옥에서나 재판 과정에서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습니다.”
언론개혁 운동에 매진해온 두 사람은 “정부의 언론 통제는 간접통제로 바뀌었을 뿐 언론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공영방송의 ‘낙하산 사장’, 편파적인 정부 광고 집행 등을 통해 지금도 은밀하게 언론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 편집장은 “최근엔 인터넷 댓글을 통제하는 등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시도가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다. 신 대표는 “자본으로부터, 권력으로부터의 언론 독립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이명희 기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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