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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안 씻으면 때려라? 파키스탄 '아내 체벌法案' 논란

곽아람 기자 입력 2016. 06. 04. 03:03 수정 2016. 06. 04.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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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교리가 체벌 허용? "아내가 말 안 들으면 가볍게 때려 줄 수 있어.." 코란 구절 맥락없이 수용 폭력 허용하는게 아니라 옳은 길로 인도하라는 뜻 가부장제 질서 유지하려 여성 억압 수단으로 활용

"남편이 원하는 옷차림을 하지 않았을 때, 특별히 종교적인 이유 없이 성관계를 거부할 때, 성관계 후나 생리 중에 씻지 않을 때 남편은 아내를 가볍게 때릴 수 있도록 허용하여야 한다."

파키스탄 이슬람 이념자문위원회가 최근 이런 내용을 담은 법안을 의회에 제출해 여성 인권 침해 논란을 낳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무함마드 칸 시라니 자문위원회 의장은 "아내의 버릇을 고치고 싶다면 처음에는 충고해야 한다. 만약에 아내가 거부하면 아내와 말을 섞지 말고 침대도 같이 쓰지 말아야 한다. 그래도 아내가 바뀌지 않으면 좀 더 엄격한 방법을 써야 한다"면서 "아내를 손수건, 모자, 터번 등 가벼운 것들로 때려라. 단 얼굴이나 은밀한 부위는 때리지 마라"고 말했다. 이슬람 이념자문위원회는 법령이 이슬람 교리에 부합하는지를 검토·조언하는 역할을 하는 헌법기구다.

남편의 아내 체벌 허용 근거가 되는 이슬람 교리란 실재하는 걸까. 실제로 코란에는 "남편이 아내가 말을 안 들으면 가볍게 때려줄 수 있다"는 구절이 있다. 그렇지만 국내 이슬람 연구자들은 "이번 파키스탄 아내 체벌법 추진은 경전의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텍스트만 받아들인 결과"라고 말한다. 오은경 동덕여대 유라시아투르크연구소장은 "파키스탄은 이슬람 국가 중에서도 여성 지위가 굉장히 낮은 나라다. 매년 1000여명가량의 여성이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집안 남자들에게 살해당하고 있다"면서 "코란의 그 구절은 남성이 여성의 보호자 역할을 하던 14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폭력을 써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식을 교육하듯 가볍게 가르쳐서라도 옳은 길로 인도하라는 뉘앙스"라고 말했다. 다른 이슬람 연구자는 "파키스탄은 다른 아랍 국가들도 혀를 내두를 만큼 보수적인 세계다. 이슬람 근본주의인 와하비즘이 득세하며 경전에 대한 보수적인 해석이 강한 곳이라 이런 법안이 나오는 것"이라면서 "파키스탄만의 문제일 뿐 모든 아랍 세계가 이렇다고 오해하면 안 된다"고 했다.

몸을 씻지 않는 것까지 체벌 사유로 삼은 까닭은 뭘까. 엄익란 단국대 GCC국가연구소 교수는 "이슬람이 원래 정결(淨潔)을 강조하는 종교라 그렇다. 무함마드 언행록인 '하디스'에는 '남녀 모두 신체를 깨끗하게 유지하라'는 구절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슬람에서는 신체 분비물을 모두 불결하다고 본다. 성관계 중 분비물뿐 아니라 피를 굉장히 불결하게 여긴다"면서 "그 때문에 '아내 체벌법'에 그런 조항을 집어넣은 것 같지만 정결은 남녀 모두에게 해당되는 의무"라고 했다. 이슬람은 남녀 관계의 금욕을 강조하기보다는 쾌락을 허용하는 종교로, 성관계 거부 시 체벌 가능 조항은 그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엄익란 교수는 "남녀의 쾌락을 모두 중요시하기 때문에 중동 쪽에서는 남편이 성불능일 경우에 아내가 이혼을 요구할 수 있다"면서 "코란은 남성과 여성의 공평함을 강조할 뿐 여성을 남성에 비해 열등한 존재로 규정하지 않는다. 이번 파키스탄 입법 논란은 이슬람 교리를 가부장제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고 여성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활용한 결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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