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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 조형물이 나치 하켄크로이츠라고?

백철 기자 입력 2016. 06. 0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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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일베 조형물 사건·강남역 핑크 코끼리 사건 이후 논쟁 시작

# 1일 새벽 2시30분쯤, 20대 초반 청년이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정문에 세워져 있던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를 손 모양으로 표현한 조형물을 두 손으로 강하게 밀쳤다. 이틀 전에 세워진 조형물은 받침대 위에서 흔들거리다 결국 바닥으로 떨어졌고, 조형물의 손가락은 산산히 부서졌다.

# 5월 20일, 서울 지하철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모인 사람들이 강남역 살인사건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한 일베 회원이 분홍색 코끼리 탈을 쓴 채 ‘육식동물이 나쁜 게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는 동물이 나쁜 겁니다’라는 글이 쓰인 화이트보드를 들고 서 있었다. 추모의 취지와 어울리지 않는 문구라는 문제제기가 시작됐고, 급기야는 일부 추모객들이 이 일베 회원의 탈을 벗기려 하는 등 물리적 충돌도 발생했다.

홍대 일베 조형물 사건 이후 때아닌 ‘표현의 자유’ 논쟁이 시작됐다. 한쪽에서는 일베 조형물 등이 교묘하게 일베를 홍보할 목적을 갖고 있어 불쾌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표현의 자유를 물리력으로 막는 행위에 문제가 있다고 맞선다. 논쟁은 ‘표현의 자유’라는 추상적 개념에 갇혀 공전되기 일쑤였다.

법학자들은 어떤 이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법적으로 가로막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 ‘표현의 자유’의 취지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혐오 표현(혐오 발언, 헤이트 스피치)에 대해서만큼은 자유로워서는 안 된다는 데 대체로 견해가 일치한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표현의 자유’를 전반적으로 신장시키기 위해서도 혐오 표현을 규제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홍 교수는 “혐오 표현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에 근거해 그들을 모욕·위협하고,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적대심을 고취시킨다. 소수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혐오 표현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혐오 표현을 표현의 자유로 둔갑시키는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난해 10월 조우석 KBS 이사는 성소수자 인권운동가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동성애자 무리는 더러운 좌파”라고 말했다. 이 발언에 대한 사회적 비난여론이 일자 한 인터넷 보수매체는 ‘타인의 표현의 자유, 생각의 자유를 억압한다’며 조 이사를 옹호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세월호 유족들이 거리 행동에 나서자 유가족들이 ‘시체장사를 한다’고 비난하는 이들이 있었다. 당시 세월호 유가족 측 변호인들은 “고발당한 사람은 대부분 ‘표현의 자유’라며 반박한다”고 말했다.

헌법도 모든 표현을 자유라는 미명으로 보호하지는 않는다. 헌법 2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지만 4항에서는 언론, 출판의 경우 ‘타인의 명예나 권리,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되어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거나 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하는 글은 ‘표현의 자유’가 아닌 것이다.

반면 홍대 일베 조형물이나 강남역 핑크 코끼리의 화이트보드 문구는 혐오 표현이라고 단정짓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드러난 표현만 가지고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교수는 “강남역 핑크 코끼리의 경우 그가 들고 있던 문구는 문제될 만한 표현이 아니다. 다만 일베 회원이 들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받은 것이다. 표현한 사람에 따라 같은 표현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면, 같은 책이더라도 누가 들고 있느냐에 따라 이적표현물이냐 아니냐 평가하는 것처럼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홍대 일베 조형물의 경우, 하켄크로이츠 등 나치 상징물로 비유되며 분노와 불쾌감을 느꼈다는 의견이 있었다. 조형물 주변에 ‘이 작품을 철거해달라’는 포스트잇도 나붙었다. 독일은 형법에 나치와 관련 있는 상징물을 공개적으로 사용하기만 해도 처벌할 수 있게 돼 있다. 박경신 교수는 “나치는 위계질서를 가진 정치집단으로 유태인 수백만명을 조직적으로 학살했다. 나치와 같은 조직과 일베와 같은 커뮤니티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일베 조형물’을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와 동급으로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홍성수 교수는 “학생회 차원에서 문제제기도 했고 조각상 앞에서 시위를 한다든지 여러 가지 방법이 가능했다.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마찬가지로 표현의 자유로 맞서야지 사적 규제로 해결하는 것든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고 말했다.

박경신 교수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잘못이라는 “국가적인 선언” 자체가 없다며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아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나 차별을 선동하는 발언을 법적으로 처벌할 수가 없다. 기업에서 특정 지역 출신은 채용하지 않는다, 외국어 학원에서 유색인종은 뽑지 않는다고 해도 법적으로 막을 수가 없다. 소수자 차별 금지에 대한 기본적인 원리를 확립시켜 놔야 표현의 자유의 구체적인 범위도 함께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너희들은 나쁜 녀석들이고, 그 표현에 내가 기분이 나빴다”는 감정싸움만으로는 표현의 자유도 지킬 수 없고, 혐오 표현에 대한 규제도 만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는 혐오 표현 규제에 대한 시민사회 차원의 다양한 논의가 벌어졌고, 법제화에 반영된 것도 있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영국의 시민단체 ‘아티클 나인틴’(ARTICLE 19)은 2009년 ‘표현의 자유와 평등에 관한 캄덴 원칙’을 발표한 바 있다. 혐오 표현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캄덴 원칙 12조는 모든 국가가 혐오 표현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캄덴 원칙은 혐오 표현에 대해 ‘표적집단에 대한 증오를 공개적으로 조장하려는 의도로 그 집단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차별, 적대감 등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을 만드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홍 교수는 “아티클 나인틴에서도 매년 캄덴 원칙의 내용을 더욱 구체화하는 연구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국내 학계에서 해외의 다양한 논의를 연구해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가 다시 시작될 때 그 연구 성과를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표현의 자유’라는 틀에 대한 논의는 많은 반면, 표현의 내용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층적 위계관계가 있는 현실에서 누구에게 자유로운 표현의 권리가 있는지, 그 내용은 무엇인지, 표현의 효과는 무엇인지를 따져봐야 하는데, 표현의 자유냐 아니냐만 따져 논쟁의 틀이 좁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특권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늘 불편하고 불안하다. 실제 일베에서 고통을 당했던 한 학생은 일베 조형물을 보고 과거의 경험이 떠올라서 가슴이 뛰고 불안했다고 한다. 누군가의 표현이 우리가 지키려는 민주주의, 평등, 인권 등의 가치를 훼손하는 표현이라면 과연 그것을 보호할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수년간 일베, 소라넷 등 온라인 상에서 여성을 비하하고 혐오하는 표현들이 ‘표현의 자유’라는 이유로 방치됐다. 소수자 차별을 강화하는 담론을 방치했을 때 이는 극우세력이 성장하는 토양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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