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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김민아 칼럼]'충청 대망론'과 '구의역' 사이

김민아 논설위원 입력 2016. 06. 06.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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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5월28일 오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김종필 전 국무총리 자택을 방문했다. ‘충청 대망론’으로 온 나라 매체가 들썩였다. 반 총장은 저녁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전직 총리 4명 등 각계 원로들과 식사를 했다. 그들이 만찬을 할 무렵, 서울 지하철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청년 김모씨가 전동차에 치여 숨졌다. 반 총장이 출국한 5월30일, 구의역에는 김씨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붙기 시작했다.

한 편의 부조리극 같다. 한쪽에선 세계 최대 국제기구 수장이자 장차 대통령이 되려는 인사가 ‘한국의 0.1%’와 만난 뒤 떠났다. 다른 쪽에선 한 달에 144만원을 받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노동자가 홀로 죽어갔다.

‘충청 대망론’과 ‘구의역’ 사이는 멀다. 반 총장과 그가 방한 중 만난 인사들도 지하철을 타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승강장을 ‘일터’로 삼거나 지하철을 ‘통근수단’으로 이용한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3분간 기다려본 기억도 없을 것 같다. 모든 ‘가진 자’들이 ‘서민 코스프레’를 해야 한다고 어깃장을 놓는 게 아니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나 운전기사 딸린 승용차를 타는 사람과 지하철을 타거나 수리하는 사람이 있다. 문제는 계층이 아니다. 그들 사이의 거리를 메울 ‘정치’다. 세상이 평등하지 않기에 정치는 절실하다.

2013년 겨울, 철도노조 파업에 참가한 7000여명이 직위해제될 무렵 청년들이 물었다. “안녕들 하십니까?” 슬픈 예언이었다. 공동체는 안녕하지 못했다. 2014년 봄, 세월호가 침몰했다.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5년 초여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창궐했다. 38명이 사망하고 1만명 이상 격리됐다. 그해 초겨울 농민 백남기씨가 물대포에 맞아 혼수상태에 빠졌다. 2016년 들어선 숨 돌릴 틈조차 없다. 5월17일 서울 강남역 인근 노래방 건물 화장실에서 23세 여성이 살해당했다. 5월28일 구의역에서 19세 청년이, 6월1일 남양주 지하철 공사장에서 50~60대 노동자 4명이 숨졌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희생자도 2011년 판매금지 이후 266명에 이른다. 죽음의 행렬 맨 앞에는 경제·사회적 약자들이 있다.

사건과 사건 사이, 정치가 응답할 기회는 많았다. 모든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겠으나 죽음을 줄일 순 있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이인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생명안전업무 종사자 직접 고용법안’만 국회를 통과했더라도 구의역 청년은 살아있을 터다.

주말인 4일 구의역 강변방향 9-4 승강장에 가보았다. “더 이상 일하다 죽지 말고 분노합시다” “사람을 위해 돈이 필요한데, 이 사회는 돈을 위해 사람이 필요하다” “아닌 걸 알고 있었지만 바꾸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강남·구의역 미안합니다”…. 색색가지 포스트잇이 주변 스크린도어와 벽면을 빼곡히 메우고 있었다. 오후 6시가 가까워오자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만난 이들은 김씨의 분향소가 마련된 건국대병원 장례식장까지 행진을 시작했다. 23세 여성이 살해당한 강남역 10번 출구에서도 청년들이 포스트잇을 붙이며 희생자를 추모했었다.

정치인들도 흰 국화를 바치며 애도하고 있다. 마땅한 도리다. 그러나 ‘헌화 정치’는 엄밀한 의미의 정치가 아니다. 법과 제도를 만들고, 시행하고, 지켜지도록 감시하고, 위반행위를 규제하는 일이 정치다. 약자들이 더 이상 포스트잇을 붙이지 않도록 하는 게 정치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하청·재하청 구조를 비판했다는데, 그건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할 일이다. 집권여당 원내대표라면 당장 국회 문을 열어 ‘위험의 외주화’를 막을 법안부터 통과시켜야 옳다. 비정규직 양산으로 더 많은 죽음을 야기할 파견법 개정에 반대해야 옳다.

반기문,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오세훈, 안희정, 김무성, 이재명, 유승민, 김부겸, 남경필(리얼미터 6월 1주 지지율 순)…,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착취와 죽음의 고리를 끊는 데 실력을 보이라. ‘대망론’은 지역주의 담론 대신 사람을 살려내는 실천에서 나온다. 또 한 가지 분명한 게 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한’ 정치로는 대통령이 돼도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직전 TV토론에서 까다로운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래서 제가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박 대통령은 구의역과 남양주에서 사람들이 죽어갈 때 어디에 있었나. 아프리카와 프랑스에서 ‘추억여행’ 중이었다. 귀국 후에도 죽음의 행렬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이 되려는 이, 그리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지금 당장’ 세상을 바꾸는 데 나서야 한다. 권력을 잡은 뒤 바꾸겠다는 건, 바꿀 생각이 없다는 말이다. 강남역이, 구의역이, 남양주가 로두스다. 여기서 뛰어라!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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