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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밀착형 도시 정치' 유럽을 바꾸는 시장들

이인숙 기자 입력 2016. 06. 06.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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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부패 척결 공약 ‘당선 유력’ 로마 시장후보 비르지니아 라지 등
ㆍ‘경유차 대기오염과 전쟁’ ‘무상급식’ 생활정책에 시민들 열광

이탈리아 정치권에 만연한 부패와 경제위기에 들고 일어난 대안정당 ‘오성운동(M5S)’의 후보 비르지니아 라지(37)가 5일(현지시간) 치러진 로마 시장 선거 1차 투표에서 1위를 해 로마의 첫 여성 시장 탄생을 예고했다. 기득권 정치의 틀을 벗어나 지속가능한 개발과 ‘생활밀착형 정치’를 내세운 새로운 정치가 로마에서도 싹틀지 주목된다.

일간 라스탐파에 따르면 라지는 1차 투표에서 35%를 득표해 집권 민주당(PD)의 로베르토 자케티를 10%포인트 차로 넉넉하게 앞서며 1위로 결선에 진출했다. 19일 결선투표에서 라지가 이기면 로마의 첫 여성 시장이 된다. 오성운동은 2009년 좌우 정당 할 것 없이 연루된 부패 스캔들을 계기로 코미디언이자 유명 블로거인 베페 그릴로가 만든 정당이다. 로마는 지난해 10월 민주당 소속 시장이 부패로 물러나 시장직이 공석이다. 라지가 내건 부패 척결과 대중교통 개선 등 생활 공약이 유권자의 민심을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 1~2년 내 유럽 곳곳에서는 새로운 ‘도시 정치’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첫 여성 시장이자 이민자 가정 출신인 안 이달고, 스페인 ‘분노하라’ 시위의 결실로 탄생한 좌파정당 포데모스의 지원에 힘입어 지난해 당선된 마누엘라 카르메나 마드리드 시장과 아다 콜라우 바르셀로나 시장, 지난달 영국 런던의 첫 무슬림 시장이 된 사디크 칸 등이 그 주역이다.

2014년 4월 취임한 파리의 이달고는 대기오염을 해결하기 위해 올 들어 한 달에 한 번씩 일요일마다 ‘차 없는 샹젤리제 거리’를 시행하고 있다. 위생이 열악한 파리 북부 임시 난민촌은 철거하고 정식 난민촌을 짓기로 했다. 런던의 새 시장 칸은 ‘대기오염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도심에 초저배출구역(ULEZ)을 만들어 기준에 미달하는 차량과 모든 경유차량에 대기오염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준공 뒤 6개월이 안된 집은 외지인이 아닌 런던 거주민에게만 내놓게 하고, 서민 주택을 많이 짓게 하겠다는 정책도 내놨다.

2015년 6월 나란히 취임한 스페인의 카르메나와 콜라우는 취임하자마자 권위와 특권을 해체해 ‘변화의 시장’으로 불린다. 카르메나는 지하철로 출퇴근하고 오페라하우스와 투우장 무료 입장권을 포기했다. 카르메나는 시 재정 자립을 위해 시립 공공은행 설립과 도심 재개발, 도시미화 사업도 벌이고 있다. 콜라우는 “관광객들에게 주민이 밀려나는 일이 없도록” 도심의 관광객용 숙박시설 건설사업 30여개를 중단시켰다. 시장 연봉을 연 14만유로(1억8500만원)에서 2만8600유로(3780만원)로 확 줄이려다 야당의 반발로 일부만 삭감하고 나머지는 기부하기로 했다. 시청 대회의실에서 후안 카를로스 1세 전 국왕의 흉상이 사라졌고 아우디 관용차는 미니밴으로 바뀌었다. 바르셀로나 그랑프리서킷 보조금 400만유로는 초등학교 급식 재원으로 돌렸다. 그 대신 빈민가 3곳을 개발하는 ‘이웃 동네 계획’을 세웠다.

유럽연합(EU)이 분열 위기를 맞고 회원국 정부들이 무능을 드러내면서, 빈틈을 메우는 도시들의 도전은 더욱 두드러진다. 유럽의회 선거나 회원국 총선에서는 반이민 극우파가 기승을 부리고 국가별 이기주의가 판치지만 시민 생활과 밀접한 지방선거에서는 기득권 정치에 맞서는 새 얼굴들이 속속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국경을 넘는 도시들의 연대도 시작됐다. 스페인에서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사라고사, 발렌시아 등이 ‘시우다데스 델 캄비오(변화의 도시들)’라는 동맹체를 만들었다. 지난해 12월에는 유럽판 도시동맹을 추진하는 ‘유로피언 얼터너티브’가 탄생했다. 이들은 홈페이지에서 “우리 시대의 시급한 정치적·문화적·사회적 도전들은 더 이상 국가 차원에서 해결되기 어렵다. 기술관료들이 이끄는 유럽의 통치는 민주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다”며 “시민들이 스스로 미래를 통제할 수 있도록 국가를 넘나드는 조직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인숙 기자 sook9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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