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홍신은 왜 모교 건국대 비리에 분노했나

2016. 6. 18.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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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건국대 사학비리

참 딱하다. 학과 공부에, 스펙 쌓기에 매학기 등록금 고민까지 대학생의 청춘은 퍼렇게 시들어간다. 제 나이에 졸업해 취업하는 게 유리한 것을 알면서도 휴학을 할 수밖에 없는 건 등록금 마련이 어렵기 때문이다. 공부와 스펙을 쌓을 시간에 시급 6100원의 알바라도 해야 한다. 그렇게 모아서 등록금과 생활비를 보탠다. 사학비리는 이런 학생들의 알바비를 훔치는 짓이다. 그들의 눈물과 한숨값을 모욕하는 일이다. 학교 이사장이 수십억원대의 횡령 및 배임 혐의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는 건국대를 취재했다. 그 눈물에 연대하기 위해서.

소설가이자 전 국회의원 김홍신
김경희 건국대 이사장 항소심서
“사학비리 가장 나쁜 범죄” 증언
7월1일 2심 선고 앞둔 김 이사장
법정 증언 교직원 보복 징계 논란

학교소유 펜트하우스 무단 거주
학교돈 2억원 딸 채무 변제 의혹
4년간 정관계 인사 300명과 골프
학생들 “알바해서 등록금 냈더니
이사장은 수십억 횡령 말이 되나”

“인류역사상 가장 나쁜 범죄가 배고픈 사람 밥 뺏어 먹는 거, 공부하는 사람 교육비 뺏어 먹는 거, 아픈 사람 약 뺏어 먹는 거입니다. (건국대 사학비리가) 그중에 하나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제가 대한민국에서 당당하게 살려면 공익제보해야 된다고 생각해 제보를 했던 겁니다.”

지난 3월25일 오후, 서울고등법원 403호 법정. 업무상 횡령·배임,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건국대학교 김경희(67) 이사장의 항소심 공판에서 검찰 쪽 증인으로 나온 김홍신(70) 전 의원은 사학비리를 가장 나쁜 범죄 중 하나로 꼽았다. 소설가로 더 유명한 그는 2010년 2월부터 2014년 2월까지 학교법인 건국대 이사를 지냈다.

16일 저녁,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김 전 의원은 “이사로 재직할 때 보았던 김경희 이사장의 비리에 대해서 증언을 한 것이다. 그때 겪었던 일들과 수원대 등 다른 대학의 사례를 보태 사학비리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다. 그 소설에 모든 것을 담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건국대 국문과 출신으로 김 이사장의 추천을 통해 이사가 된 그가 건국대 비리를 폭로하고 ‘사학비리의 저격수’로 나서겠다고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비를 가리는 일이 귀찮을 법도 한 황혼의 나이에 되레 부조리를 고발하겠다고 나선 노작가는 대체 그 사이 무슨 비리를 지켜본 것일까?

2004년에도 횡령죄로 벌금형 받아

지난해 12월, 학교법인의 재산을 유용한 혐의로 기소된 김 이사장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서울동부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하현국)는 “오랜 기간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적법하게 자금을 집행해야 함에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며 김 이사장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앞서 김 이사장은 2007년 8월부터 4년여간 9차례 해외출장비와 판공비 3억6000여만원을 개인 여행 비용 등으로 쓴 혐의(업무상 횡령)와 학교 소유 펜트하우스에 법인 자금 약 5억7000만원을 들여 인테리어 공사를 한 뒤 2007년 5월부터 5년여간 주거 공간으로 활용(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한 혐의로 2014년 7월 불구속 기소됐다.

김 이사장이 학교 돈을 유용한 횡령 혐의 등으로 법정에 선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 이사장은 2002년 3월 학교법인 소유 교육용 부동산 매각 대금 등 35억5000만원을 교육부가 지정하지 않은 용도에 사용한 혐의(특경가법상 횡령)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항소한 바 있다. 2004년 11월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8부(재판장 김치중)는 김 이사장에 대해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그분은 학교의 최고 책임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요. 학생들을 돈벌이 수단으로밖에 여기지 않는 거 같아요. 학생들을 두려워했다면 몇 십억원을 횡령 및 배임할 수 있겠어요. 결과적으로 학교를 배움터로 생각하는 학생들을 우롱한 거죠.”

2012년에 건국대에 입학한 ㅅ씨(24)는 김 이사장에 대해 “괘씸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해 8월, 한 학기를 남겨두고 집안 형편으로 고민 끝에 휴학을 했다는 ㅅ씨는 현재 일주일에 3일을 영어학원에서 수업조교로 일한다. 아침 6시에 출근해 늦을 때는 오후 5시까지 강의 자료를 프린트하고 수업 준비를 하고서 받는 돈은 65만원 남짓이다. 책 값 등 다음 학기 생활비를 모으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은 고3 영어 과외도 한다. 그렇게 해서 한 달에 50만원을 모은다. “저는 서울 이모집에서 지내서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에요. 학교 민자기숙사에서 지내는 동기들 보면 생활비가 더 들죠.”

민자로 지어진 건국대 기숙사비는 학교 앞에 있는 원룸보다 더 비싸다. 실제 지난 2월 한국사학진흥재단이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연세대 에스케이(SK)국제학사의 기숙사비는 한 학기(4개월)당 약 264만원, 고려대 프런티어관은 232만원, 건국대 쿨하우스는 219만원으로 주변 원룸 월세 시세와 비교했을 때 각각 33만4000원, 32만원, 31만원 더 비싼 것으로 드러났다.

ㅅ씨가 김 이사장과 학교에 특히 분노하는 지점도 바로 이 대목이다. “학생들에게는 비싸게 기숙사비를 받으면서 이사장은 학교 소유 펜트하우스에 5년 동안 공짜로 살아 10억여원의 손실을 끼쳤다는 게 말이 되나요? 학생 등록금을 자기가 번 돈이라고 생각하지 않고서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그 돈이면 1년에 대략 250명의 학생들이 기숙사를 이용할 수 있잖아요.”

2007년 5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김 이사장이 학교 재산인 서울 자양동 더샵스타시티의 펜트하우스를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은 2013년 건국대에 대한 교육부 회계감사에서도 확인됐다. 당시 교육부는 “이사회 의결 없이 수익용 기본재산인 ‘스타시티’의 펜트하우스(99평형, 244㎡)를 ○○○ 이사장이 5년8개월간 임의로 사용하게 하여 6억3900만원의 임대료 손실이 발생하였고, 관리비 8000여만원 및 수익용으로 활용하지 않아 추징된 부가세 1억2600여만원 또한 법인회계에서 납부”한 점을 적발해 김 이사장을 임원승인취소 처분하고 이듬해 1월, 검찰에 고발 및 수사의뢰했다.

이틀에 한번꼴 골프장을 찾을 정도

교육부 감사에서 적발된 사항은 이 밖에도 수두룩하다. 특히 다음과 같은 증빙 없는 업무추진비 사용, 국외출장비 유용, 개인 소송비용 회계 처리 등은 사학비리에 단골로 등장하는 비위 사실들이다. “이사장 ○○○은 ’08년도부터 ’13년도까지 108회에 걸쳐 판공비 명목으로 3억2700여만원을 수령하여 이를 용도 불명으로 사용하고, 19회에 걸쳐 법인카드로 1156여만원을 용도 불명으로 사용. 8회에 걸쳐 목적 불명으로 해외를 다녀오면서 출장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빙을 제출하지 않고 출장비 1억600여만원 사용. 노동조합 등을 상대로 개인의 명예훼손과 관련된 3건의 소송을 진행하면서 쟁송비용 5590여만원을 법인회계에서 부담.” 이에 대해 건국대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건국대 관계자는 “이미 교육부 처분에 따른 시정이 전부 이뤄진 부분이다. 김 이사장이 스타시티 사업 등을 통해 학교 위상을 높인 점도 함께 봐야 한다”고 했다.

김 이사장이 학교법인 돈을 자기 돈처럼 가져다 썼다는 의혹은 또 있다. 검찰은 김 이사장이 학교법인의 업무추진비 2억원을 횡령하여 자신의 차녀 유아무개씨의 아파트 대출원리금 변제 등에 유용했다고 보고 있다. 심지어 이틀에 한 번꼴로 골프장을 찾을 정도로 유별났던 김 이사장의 ‘골프 사랑’도 비리의 온상이 됐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김 이사장은 골프를 로비나 인맥관리에 적극 활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겨레>가 입수한 2010년 1월1일부터 2013년 6월15일까지 총 164주 동안의 김 이사장의 ‘일정표’와 법인카드 사용내역, 검찰 공소장에 첨부된 김 이사장의 골프 일정(‘범죄일람표9’), 건국대의 ‘주요동문 초청 골프 일정(안)’ 등의 자료를 종합하면, 3년여 동안 김 이사장은 학교 소유의 스마트 케이유(KU) 파빌리온 골프장 등지에서 정계와 언론계, 법조계 인사 등 300여명과 골프 회동을 했다. 검찰 수사 결과, 그 가운데 69회 합계 6100여만원 상당의 파빌리온 골프장 비용은 지급하지도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와 함께 라운딩을 한 것으로 나와 있는 정·관계 인사들은 박희태·박관용 전 국회의장, 주호영·홍일표·김학용·김도읍 새누리당 의원,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이해구·이재선·박상희·박계동·이은재·이범래·전혜숙 전 의원, 양건 전 감사원장, 김성호 전 국정원장, 차의환 전 청와대 혁신관리수석, 김조원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류화선 전 파주시장, 이명규 전 부산경찰청장 등이다. 법조계 인사로는 안대희 전 대법관과 조용호 헌법재판소 재판관, 송인준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이성보 전 국민권익위원장 등이 거론됐다. 이 기간 중 조 재판관은 4번, 안 전 대법관은 2번, 이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1번 김경희 이사장과 골프를 친 것으로 나온다. 김 이사장과 골프모임을 한 시기는 이들이 대법관이나 법원장 등으로 현직에 몸담고 있을 때였다.

김 이사장과 골프를 친 것으로 적혀 있는 법조계 인사들 중 일부는 서울동부지법과 인연이 깊었다. 건국대는 동부지법 관할이다. 1심에서 검찰은 김 이사장에게 징역 4년과 추징금 2억5000여만원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김 이사장에 대한 공소사실 가운데 해외출장비와 판공비 1억3천여만원에 대해서만 횡령을 인정해 ‘봐주기 판결’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재판부는 법인 소유의 골프장에서 유력 인사들과 골프를 친 뒤 6100여만원 상당의 그린피를 면제받은 부분도 “함께 라운딩한 사람들의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볼 때 골프장을 홍보하거나 운영 및 관리에 조언을 듣는 등 공적으로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며 무죄로 봤다. 또 학교 소유 펜트하우스에 대한 배임 혐의는 “공적인 목적으로 (펜트하우스를) 사용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의심이 많이 간다”면서도 “김 이사장이 가회동 자택에서 거주한 점 등 여러가지 사정을 고려할 때 개인적으로 사용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골프 리스트에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매일경제> <한국방송>(KBS) <에스비에스>(SBS) 전·현직 사장과 편집국장 등 언론인들의 이름도 빠지지 않는다. 건국대는 “골프장 개장 초기 저명인사들을 대상으로 홍보를 하기 위한 통상적인 마케팅이었다. 이제 2심 판단을 앞두고 새롭게 시작하려고 하는데 3년 전 일을 다시 꺼내는 건 곤란하다”고 했다.

성명서 작성 전자우편 보냈다고 해임

학교는 새롭게 시작을 한다고 밝혔지만, 학교 구성원들의 시선은 차가운 편이다. 김 이사장이 검찰 수사 때 사실대로 진술을 하거나 1심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해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교직원들에 대해 징계성 보복인사를 남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홍정희 건국대 상임노조부위원장은 “지난해 5월 공판에 나와 증언을 한 학교법인 전 감사과장 이아무개씨가 지난해 8월 강등발령을 받은 뒤 올해 3월17일자로 해임됐다. 검찰 조사와 1심 재판 증언 시 허위사실을 진술했다는 것이 처분사유”였다고 했다. 건국대는 “업무평가를 통한 정당한 인사조처였지 결코 보복성 징계가 아니었다”고 설명했지만, 지난 1일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사실과 다르거나 불분명한 내용을 포함한 원로교수 성명서를 받기 위해 전자우편으로 참여를 독려해 학교운영을 방해하고 학내질서를 문란하게 했다’는 사유로 학교로부터 해임된 안병진 교수에 대해 부당해임이라며 취소 처분을 내렸다.

2010년에 건국대에 입학한 이아무개(26)씨는 김 이사장의 2013년 일정 가운데 4월17일부터 4월28일까지 대목에서 쓴웃음을 지었다. 일정표에는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김 이사장이 6차례나 파빌리온 골프장을 찾은 것으로 나와 있었다. “이때는 제가 휴학을 하고 야간 편의점 알바를 할 때였거든요. 날을 새워서 하루에 번 돈이 4만8000원이었어요. 노가다도 하고 휴학 기간 동안 안 쓰고 안 입고 모으고 모아서 등록금 낼 때 부모님께 100만원을 드렸어요. 김씨(이사장)는 결과적으로 제가 알바할 때 권력자들에게 골프 접대를 한 거네요. 이사장의 주요 업무가 힘있는 사람들과 골프를 치는 것이었다니 할 말이 없네요.” 김 이사장의 항소심 선고 공판은 오는 7월1일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최재형)의 심리로 열린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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