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낮잠 시간'에 어린이집 방문한 복지부 장관

세종=정현수 기자 입력 2016. 6. 23. 17:02 수정 2016. 6. 23.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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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현장 목소리 듣기 위해 어린이집 방문..정작 아이들 '낮잠 방해'

[머니투데이 세종=정현수 기자] [보육현장 목소리 듣기 위해 어린이집 방문…정작 아이들 '낮잠 방해']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사진 왼쪽)이 23일 오후 충남 공주시의 한 민간어린이집을 방문했다./사진=뉴스1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이 23일 오후2시 충청남도 공주시의 한 민간어린이집을 방문했다. 민간어린이집이 '맞춤형 보육'에 반발해 이날부터 집단 휴원에 들어가자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현장을 점검한다는 취지였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취지는 좋았다. 하지만 방문 시간이 문제였다.

정 장관이 찾아 간 시간은 어린이집 영유아들의 낮잠시간이었다. 해당 어린이집 1층에서는 자율등원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집으로 나온 8명 가량의 아이들이 자고 있었다.

정 장관의 방문 소식이 이날 오전 출입기자들에게 공지됐기 때문에 상당수 언론들이 동행 취재에 나섰다. 그러나 장관의 방문으로 어린이집은 소란스러운 상황이 됐다. 낮잠 자는 아이들을 위한 배려가 없었다는 지적이 나와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정부가 7월부터 강행하려는 '맞춤형 보육'은 현재 어린이집과 일부 부모들의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정 장관은 지난 22일 브리핑에서 "맞춤형 보육은 우리나라 영아들이 더 밝게 자라고, 더 나은 보육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해 시행하는 제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정 장관의 현장행보는 아이들의 '더 나은 보육환경'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물론 현장에서도 자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복지부 관계자가 "아이들이 자고 있는 점을 감안해 달라"며 현장 일정을 최소화하려고 했지만, 장관의 현장 방문은 중단되지 않았다. 장관의 동선엔 아이들의 낮잠 방 바로 앞도 있었다.

결국 아이들이 낮잠을 자고 있는 방문 바로 앞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모습까지 연출됐다. 처음부터 방문 일정을 아이들을 위한 '맞춤형'으로 짰어야 하는데, 장관의 일정에 맞춘 탓이다.

국실장 6명을 포함해 55명의 복지부 공무원들이 '상황대응반'을 만들고 '맞춤형 보육' 관철을 위한 현장 방문 아이디어를 짜냈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아이들에 대한 고려는 없었던 셈이다.

민간어린이집이 이날 집단 행동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민간어린이집은 맞춤형 보육 시행으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오해'로 규정, 강행한다는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

결국 23일 오전 10시 기준으로 5185개의 어린이집이 '자율등원'이라는 방식으로 집단 행동에 나섰다.

어린이집의 문을 닫게 되면 관련법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되는데, 자율등원을 통해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자율등원은 어린이집의 가동률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자 보육교사들은 거리로 나섰다. 충남민간어린이집연합회 소속 회원들은 이날 세종시에 있는 보건복지부를 방문해 항의 집회를 열었다.

노란색 모자를 맞춰 쓴 회원들은 '저가 맞춤형보육 결사반대'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항의했다.

장진환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장은 "민간 어린이집 단체들은 맞춤형 보육이 현장 운영여건 개선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제도라는 데 확신을 가지고 있다"며 "정부가 맞춤형 보육을 강행할 경우 이달 28일부터 집단 폐업 신청을 하는 등 장기적인 반대운동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gustn9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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