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이정현 "너희 언론은 내가 어떻게든 없앤다"
[기자수첩] 공영방송 보도국장에는 “나 좀 살려주쇼”… 소규모 매체에는 “이렇게 기사쓰고 버틸 수 있을 것 같나”
지난달 30일 언론 시민단체들이 공개한 세월호 참사 직후 당시 김시곤 KBS 보도국장과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현 새누리당 의원)의 통화녹취에서 눈에 띄는 건 이 전 수석 특유의 화법이었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 ‘핏대’를 세우며 끊임없이 내뱉는 화술이다. “(국방부) XX놈들아”라고 거침없이 욕을 하면서도 상대를 어르고 달래며 본인의 뜻을 관철시키고자 했다. 그가 통화한 후 KBS에서 관련 리포트가 빠졌다고 하니 성과라면 성과랄까.
“뉴스 편집에서 빼 달라.”, “다시 녹음해서 만들어 달라.” KBS보도에 서슴없이 개입하는 것도 충격적이었으나 이 전 수석이 김 전 국장에게 “(대통령님이) KBS를 오늘 봤네. 한 번만 도와주시오. 국장님 나 한번만 도와줘”라며 애걸복걸하는 대목에서는 폭소를 금치 못했다.
▲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왼쪽)과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 (사진=미디어오늘, 연합뉴스) |
당시 동료이자 선배인 김완 기자(현 한겨레21 소속)는 “박근혜 TV토론 ‘아이패드 소지했다’는데”라는 제하의 기사를 썼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TV 대선 토론회 중 아이패드를 보고 커닝했다는 의혹에 대해 당시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선방위) 공보 담당자를 통해 사실 확인을 한 기사였다.
당시 김 기자와 통화한 선방위 관계자는 사실을 확인해줬고 이를 바탕으로 기사는 출고됐다. 기사가 나가고 선방위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는 등 갑론을박이 이어졌지만 무릇 모든 선거가 그렇듯 선거가 끝나자 유야무야됐다.
흥미로운 건 기사 출고 이후 이정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캠프 공보단장 반응이었다. 그는 미디어스로 직접 전화를 걸어와 대뜸 “이건 기사가 아니니까 내리라”고 요구했다. 당시 기자는 미디어스 사무실에서 김완 기자와 이 단장의 전화 통화를 유심히 지켜봤다.
통화가 계속될수록 김완 기자의 얼굴과 목소리가 달아올랐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물었다. “선배, 이정현이 뭐래요?” 돌아오는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어떻게든 너희(미디어스)는 없앤단다.”
4년 전 일을 지금껏 기억하고 있는 까닭은 1년차 기자로서 진짜 직장이 없어지진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막강한 권력의 실세가 소규모 인터넷 매체 하나 없애는 건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기사쓰고 버틸 수 있을 것 같나”, “위에 내가 다 이야기했다”, “내게 찾아와보지도 않고 어떻게 이런 기사를 쓰느냐”, “강구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는 그의 발언들은 회사 동료들 사이에서 오래 회자됐다.
지난해 9월 서울 관악신사시장에서 ‘마약 사위’ 논란의 당사자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앰부시’(ambush)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이때 이 전 수석과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는 “마약 사위 이후 친박계가 김무성 흔들기에 나서고 있다”는 질문에 대해 “(친박이라는 것이) 실체가 없는데도 언론이 자꾸 싸움을 부추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언성을 높였다.
이 전 수석은 “자꾸만 언론이 분열, 편가르기식으로 쓰니까 문제다. 친박이 도대체 뭐냐. 누가 친박이고 친이냐”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불편한 질문에 불편함을 감추지 않는 것, 그게 그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만 도와주시오. 국장님 나 한번만 도와줘.” 30일 공개된 녹취록 말미에 나오는 이야기다. KBS 보도국장 앞에서 거침없이 항의하면서도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자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는 4년 전 동료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이 문득 떠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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