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한겨레

'무늬만 종일반'에 속터지는 직장맘 "달라진 것 하나 없는데.."

입력 2016. 07. 03. 20:46 수정 2016. 07. 05. 09:36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한겨레] 종일반 시간 보장 안돼도
정부는 아무런 대책 없어
맞춤-종일반 보육료 차이 미미
어린이집, 여전히 맞춤반 선호

맞춤형 보육이 시행된 지난 1일 오전,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이 서울 성동구 소재 신영창의 어린이집에서 학부모 등의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 복지부 제공.

“일하는 부모를 위한 ‘맞춤형 보육’이라고요? 달라진 건 하나도 없는데….”

맞벌이 직장인 ㄱ씨는 서울 용산구의 한 민간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있지만 지난 1일 ‘맞춤형 보육’ 시행을 앞두고 어린이집으로부터 별다른 공지를 받은 게 없다. 다른 아이들의 하원시간에 맞춰야 하는 어린이집 분위기 때문에 ㄱ씨는 한 달 100만원을 들여 등하원 도우미에게 아이를 맡기고 있다. 그는 “아이가 종일반(하루 12시간)에 해당하지만 그렇다고 지금보다 더 오래 돌봐준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어린이집에선 맞춤반(하루 6시간) 부모들만을 대상으로 오리엔테이션을 열어 하원시간을 오후 4시에서 3시로 변경한다는 공지를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부는 맞벌이 등 양육 부담이 큰 가정의 아이는 종일반을 이용하게 하고 홑벌이 가정은 어린이집 이용시간을 제한하는 맞춤형 보육을 지난 1일부터 도입했다. 하지만 정작 종일반이 제대로 운영되도록 하는 대책 없이 제도가 시작되자, 현장에선 “뭐가 달라졌느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시행 초기부터 정책 실효성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제도 시행 이후, 가장 달라진 풍경은 맞춤반 아이들의 등하원 시각이 일부 바뀌고 있다는 점 정도다. 정부는 어린이집 사정에 따라 탄력적으로 맞춤반 이용시간을 정하도록 안내했지만, 기본 보육시간이 정부가 애초 홍보한 오전 9시~오후 3시로 인식되면서 오전 10시~오후 4시로 운영해온 곳들도 한 시간씩 당기는 등 어린이집들이 등하원 시각 조정에 나섰기 때문이다. 실제 이용시간이 줄었다기보다는 하원시각이 바뀌면서 아이들의 낮잠이나 간식 시간이 바뀐 경우가 더 많다.

종일반 아이들은 그야말로 ‘무늬만 종일반’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학부모들은 입을 모은다. 오전 7시30분~오후 7시30분까지 맡길 수 있기는커녕 늦어도 오후 5시 이전에 집으로 돌아가던 종전과 달라진 게 없는 경우가 많다. 서울 중구의 한 어린이집에 25개월 된 아이를 보내는 ㄴ씨(맞벌이 직장인)는 “1일에도 기존에 해오던 것처럼 오전 10시에 아이를 맡기고 오후 4시에 데려왔다. 늦게까지 아이를 놔두면 눈치를 주기 때문에 시어머니에게 등하원을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종일반과 맞춤반에 대한 보육료 지원에 차등을 두면, 어린이집이 종일반 중심으로 운영되고 맞벌이 가정 아이들이 더 이상 눈치 보지 않게 될 것으로 기대해왔다. 하지만 어린이집 반발로 애초 정부안이 수정되고 보육료 지원 차이가 미미해지면서, 홑벌이 가정 아이의 일과에 맞춘 하루 6~7시간의 어린이집 운영은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종일반과 맞춤반에 지원되는 보육료 차이는 0살 반이 애초 10만5천원에서 2만6천원으로, 1살 반은 5만4천원에서 1만6천원으로, 2살 반은 2만8천원에서 3천원으로 크게 줄었다. 또 정부 예상과 달리, 연령대별로 맞춤반과 종일반을 별도로 꾸려서 운영하기 어려운 곳들이 적지 않다. 육아 커뮤니티 ‘맘스홀릭’의 한 학부모는 “보육료 차이가 거의 없으니 어린이집에서는 여전히 일찍 데려갈 수 있는 맞춤반을 선호할 것이고 종일반 부모들은 눈치를 보는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런 문제에 대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어린이집들이 종일반 시간을 제대로 보장해주는지 등을 일일이 확인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일부 어린이집들은 종일반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더 확충하는 것보다는 벌써부터 각종 편법을 동원해 맞춤반에 대한 정부 지원을 더 받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학부모들의 필요에 따라 쓰도록 한 ‘긴급보육바우처’(월 15시간)를 무조건 쓰는 것으로 전제하고 맞춤반 하원시각을 일괄적으로 오후 3시에서 3시40분으로 늘리는 식이다. 학부모들은 어린이집의 운영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다.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예방의학 전문의)는 “정부가 어린이집에 보육료만 지원하고 그에 따른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는 구조에서는 맞춤형 보육을 시행해도 종일반 아이들이 방치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문희 한국보육진흥원장은 “방과 후에 종일반 아이들을 모아서 별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거점형 어린이집을 설치하는 등 현실적으로 맞벌이 가정의 보육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정부는 원래 맞춤반에 대한 보육료 삭감으로 올해 375억원의 예산을 줄일 수 있었지만 기본보육료를 깎지 않기로 하면서 다시 200억원을 더 써야 하는 상황이어서, 정책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불필요한 보육수요를 줄이고 재정을 아낀다는 정책 효과도 반감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또 어린이집의 기본보육료를 보전해주기로 하면서 그 돈을 보육교사 처우에 쓰도록 했지만, 이를 강제할 수단도 마땅히 없어 보육의 질 개선을 기대하기도 섣부른 상황이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