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77> 추억의 타잔

최희재 2016. 7. 4.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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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부르는 영화가 공개됐다. ‘타잔의 전설(Legend of Tarzan, 2016)’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감독으로 유명한 데이빗 예이츠가 연출하고 스웨덴 출신 알렉산더 스카스고드가 타이틀 롤을 맡았다. 원래 타잔의 원작 소설 두 편을 토대로 만들어질 예정이었으나 새롭게 만들다보니 원작 소설들과는 완전히 다른 줄거리가 됐다고.

이 영화 바로 직전에 나온 타잔은 월트 디즈니판 아니면 유럽산 애니메이션이어서 실사영화만큼 실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번에는 실사영화여서 추억을 되살릴 만하다. 다만 최신판 타잔은 타잔의 ‘유니폼’이라고 할 가죽 가리개 대신 바지를 입고 등장해 위화감을 준다. 그래도 타잔이라는 캐릭터와 그가 이끌어가는 정글 속 이야기는 너무도 익숙하고 정겹다. 특히 1970년대던가, 국내 TV(아마도 KBS)에서 대단히 이례적으로 TV 시리즈가 아니라 극장용 타잔영화들을 매주 고정적으로 편성해 방영하는 것을 빼놓지 않고 보면서 열광하던 추억이 절로 살아난다. 물론 당시 방영된 것들이 타잔영화들을 총망라한 것은 아니었다. 대충 중요한 것들만 추렸겠지. 그럴 만도 한 게 최초의 타잔 영화가 개봉된 1918년 이후 지금까지 모두 200여편이나 되는 타잔 영화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타잔은 미국 작가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의 창작품으로 현대의 고전으로 꼽힌다. 나중에 미국의 SF작가 필립 호세 파머가 타잔을 실존인물로, 버로스의 소설은 타잔의 실제 모험담을 묘사한 실화 수기로 상정한 책을 여러 권 냈지만 이는 물론 공상의 산물일 뿐 타잔은 버로스의 또 다른 창작품 ‘바숨’ 시리즈의 주인공 존 카터와 더불어 20세기를 대표하는 양대 ‘픽션 히어로’다. 타잔은 1912년 잡지를 통해 첫 선을 보인데 이어 책으로는 1914년에 첫 권이 나온 후 모두 25권이 출간됐다. 하지만 버로스 사후 다른 작가들에 의해 공식 비공식적으로 여러 종의 소설이 더 나왔다. 이언 플레밍 사후 제임스 본드 소설이 그랬던 것처럼.

영화는 첫 소설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1918년에 무성영화로 첫 작품이 나온 뒤 TV영화와 무대극, 애니메이션을 포함해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만들어졌다. 타잔역을 맡은 배우만도 초대 엘모 링컨부터 시작해 스카스고드까지 21명이나 된다.

아역 타잔 배우를 제외하고 성인 타잔을 연기한 배우들의 면면을 보자. 초대 엘모 링컨. 거한(巨漢)이었으나 균형 잡힌 모습이 아니라 맥주통 배를 지닌, 50대 아저씨처럼 보이는 타잔이었다. 그래도 그가 주연한 최초의 타잔 영화는 성공을 거뒀다. 2대 진 폴라. 뉴욕의 소방관이었던 그는 멋진 체격으로 타잔에 발탁됐으나 영화사들 간의 문제로 후속작을 찍지 못하고 소방관으로 돌아갔다.

3대 제임스 피어스는 미식축구 선수 출신으로 버로스의 딸과 결혼하면서 타잔으로 출연할 기회를 잡았다.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으나 비평가들로부터는 혹평을 받았다. 그는 단 한 편 출연으로 그쳤다. 4대 프랭크 메릴은 초대 엘모 링컨의 타잔 대역을 맡아했던 스턴트맨 출신이었다. 그가 출연한 1929년작 타잔은 일부만 유성영화였으나 그의 발성이 도저히 유성영화를 따라가지 못해 더 이상 영화를 찍지 못했다.

5대 조니 와이즈뮬러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타잔 배우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타잔 하면 그를 떠올린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5개나 따낸 수영선수 출신인 그는 타잔 배우들 중 최다인 12편에서 타잔역을 맡았다. 타잔의 가장 큰 특징인 괴성 지르기(동물들을 부르기 위한)와 유명한 어눌한 대사 “나 타잔, 너 제인(Me Tarzan, You Jane)”도 그의 영화에서 나왔다.

와이즈뮬러의 뒤를 이은 6대 버스터 크랩도 올림픽 메달리스트 수영선수 출신이다. 수영선수로서 멋진 몸매와 발군의 수영실력 등이 와이즈뮬러의 후계자로 손색없었으나 불행하게도 한편으로 끝났다.

7대는 약간 방향을 바꿔 육상스타 출신이 타잔으로 발탁됐다. 허먼 브릭스. 그는 당초 타잔역을 놓고 와이즈뮬러와 경합했으나 어깨를 다치는 바람에 와이즈뮬러에게 패한 전력이 있다. 타잔으로는 두 편에 출연한 뒤 브루스 베넷으로 이름을 바꾸고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 등 비(非)타잔영화에서 활약했다. 8대는 역시 육상선수 출신인 글렌 모리스다. 그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10종경기 금메달을 차지함으로써 언론의 주목을 받은데 이어 타잔으로 발탁됐다. 그는 그러나 한 편의 영화에 출연한 뒤 혹평을 받자 아예 영화계를 떠나버렸다.

9대는 스포츠 스타 아닌 전문배우 렉스 바커다. 소소한 역을 전전하다 타잔역을 맡아 스타덤에 올랐다. 영화도 제법 인기를 끌어 모두 6편에서 타잔으로 활약했다. 그는 5번의 결혼을 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결혼상대 중에는 그 유명한 라나 터너도 있었다.

10대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최고의 타잔 배우’로 평가받는 고든 스콧이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수상 인명구조원으로 일하던 그는 훌륭한 체격과 멋진 용모가 할리우드의 에이전트 눈에 띄어 렉스 바커 후임으로 타잔이 돼 모두 6편에 출연했다. 그전까지 타잔이 거의 어린이용이었다면 스콧의 타잔은 좀더 거칠고 냉혹한 성인용 타잔이라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59년작 ‘타잔 최고의 모험(Tarzan’s Greatest Adventure)’에 007로 뜨기 이전 젊은 시절의 숀 코너리가 악당으로 출연했다는 사실. 스콧은 타잔영화에서 떠난 후 유럽으로 가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한 액션활극, 이른바 ‘검과 샌들’ 영화에서 맹활약했다.

11대는 데니 밀러다. 대학농구선수 출신으로 타잔영화 중에서도 아주 싸구려로 만들어진 영화 한편에 출연하고 사라졌다. 최초의 ‘금발 타잔’이라는 것 말고는 얘기할 게 없다. 그 다음 12대는 조크 마호니다. 특이하게도 고든 스콧의 영화 ‘위대한 타잔 (Tarzan the Magnificent, 1960)’에서 악당으로 나왔으나 스콧의 실질적 후임으로 주인공이 됐다. 앞서 그는 와이즈뮬러 이후 타잔역을 놓고 오디션을 치러 렉스 바커에게 패했으나 권토중래했다. 첫 타잔역을 맡았을 때 44살이었던 그는 두 번째 타잔영화를 찍다 건강이 급속히 나빠지는 바람에 그것으로 타잔 경력이 끝났다.

13대는 프로 미식축구 선수 출신의 마이크 헨리다. 1960년대에 3편의 영화에서 타잔으로 나온 그는 007붐이 일었던 60년대답게 타잔을 ‘정글판 007’로 만들었다는 평을 받았다. 14대는 론 일라이로 그는 원래 TV용 타잔이다. 그가 타잔으로 출연한 TV 시리즈는 1966년부터 2년 동안 모두 57회가 방영됐다. 그 중 상하로 나뉘어진 2부작 에피소드 4편이 다듬어져 극장용 영화로 개봉됐다.

그 다음은 마일스 오키프다. 대학에서 정치학과 심리학을 전공하고 교도소에서 카운슬러 일을 하던 그는 80년대 초 최고의 섹스심볼로 군림하던 보 데렉의 남편 존 데렉 감독에게 발탁돼 제인역을 맡은 보 데렉의 상대역으로 15대 타잔이 됐다. 영화는 형편없었지만 그의 체격은 보 데렉이 “내 생애 처음 보는 것”이라고 찬탄할 만큼 멋졌다.

16대는 크리스토퍼 램버트다. 원래 뉴욕 출신이지만 스위스와 프랑스에서 자라면서 프랑스어로 말하는 프랑스 배우가 됐다(프랑스식 이름: 크리스토프 랑베르). 그가 출연한 ‘그레이스토크, 타잔의 전설(Greystoke: the Legend of Tarzan, Lord of the Apes, 1984, 휴 허드슨 감독)’은 버로스의 원작에 가장 충실한 타잔영화로 지적된다. 비평가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았지만 많은 돈을 들인 것치고 흥행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대중의 기호에는 맞지 않았다는 얘기. 이 때문에 대형 영화사들이 그 후로 블록버스터 타잔영화에 섣불리 달려들지 못하고, 타잔은 TV 시리즈나 애니메이션 정도로 명맥을 이어왔다.

17대는 론 일라이와 마찬가지로 TV에서 타잔역을 맡은 조 라라다. 89년에 단발성 TV영화 한 편, 96년에 시리즈물에 나와 22편의 에피소드에 출연했다. 18대 역시 TV용 울프 라센이다. 그가 출연한 타잔 시리즈는 91년부터 94년까지 모두 75회 방영됐다.

그 다음은 다시 극장용으로 돌아가 폴 버호벤의 SF ‘스타쉽 트루퍼스(1997)’에서 조니 리코역을 맡아 유명해진 캐스퍼 반 디엔이 19대 타잔을 맡았다. 반 디엔은 괜찮은 배우라는 평을 들었으나 그가 나온 타잔 영화는 쫄딱 망했다. 이에 따라 20대는 호주 출신으로 캘빈 클라인의 모델이었던 트래비스 핌멜에게 넘어갔다. 워너 브러더스가 제작한 TV용 타잔 시리즈의 주연을 맡았으나 8회만 방영되고 끝났다.

그리고 마침내 21대 타잔이 알렉산더 스카스고드다. 스웨덴의 유명 배우 스텔란 스카스고드의 아들인 그는 39세로 타잔역을 하기엔 나이가 좀 든 감이 있지만 스칸디나비아인답게 원래부터 장신의 멋진 몸매에 더해 타잔 역할을 맡기 위해 4개월간 피나는 노력을 한 끝에 6팩이 아닌 무려 8팩의 복근을 만들었다고. 이 최신판 타잔을 놓고 스카스고드 외에 신세대 액션스타 톰 하디와 새 슈퍼맨 헨리 캐빌이 물망에 올랐으나 결국 데이빗 예이츠 감독에 의해 스카스고드로 낙점됐다. 그런데 스카스고드가 타잔역을 수락한 이유는 아버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였다고. 즉 아버지 스텔란은 타잔의 열렬한 팬으로 알렉산더 역시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조니 와이즈뮬러가 주연한 타잔영화를 비디오로 지겹게 보고 자랐는데 아들이 타잔이 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할까 생각하고 타잔역을 맡았다는 것. 그러나 그는 와이즈뮬러와 경쟁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면서 와이즈뮬러의 영화는 아무래도 70년전 것이니까 내 영화는 그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것이 되지 않겠느냐고 와이즈뮬러와의 비교에 미리 방어선을 치기도.

엘모 링컨의 최초 타잔영화가 나온 지 근 1백년. 오래 된 타잔영화의 오래된 팬으로서 앞으로도 타잔영화가 꾸준히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김상온 (프리랜서 영화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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