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신분제, 오만한 욕망

송현숙 정책사회부장 2016. 7. 10. 21:2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귀를 의심했다.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분이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위에 있는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게 해주면 되는 거다.”

계급도, 계층도 아닌 신분제 사회? 지난 7일 저녁 교육부 고위 간부의 입에서 느닷없이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조선 500년의 신분제 체제가 사라진 후 교과서에서만 배웠던 낡은 단어를 일상 속에서, 그것도 우리 사회의 미래와 연관지어 다시 듣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정부는 좋은 정책을 펴고, 언론은 이를 잘 전달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자며 화기애애했던 자리. 일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신분과 계급의 가장 큰 차이라면 계급은 노력으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세습이 원칙인 신분은 뛰어넘을 수 없다는 점이다. 양극화가 심화되며 최근 우리 사회에선 계급 고착화와 격차 확대 문제에 대한 울분과 논의가 분출하고 있다. 대표적인 흙수저, 금수저론의 핵심은 부모의 부와 권력이 자녀에게 상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금수저와 흙수저, 흙수저 안에서도 또다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층층이 계층구조를 이루며 갈등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해 전국 각 지역 19~69세 7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노력으로 사회경제적 지위 상승 가능성이 없다”고 답한 비율이 45.3%로 전년의 43.8%보다 1.5%포인트 상승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줄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사회를 우려하며 계층 간의 격차를 줄이고 계층이동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계층도 아닌 신분제를 공고화하자는 주장은 어떻게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이날 저녁 더욱 큰 충격이었던 것은 이런 말이 너무도 당당하게 오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석에서의 발언이지만 기사화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것은 정작 발언 자체보다 발언 이후의 상황이었다.

기사가 부를 파장을 알기에 여러 차례 해명 기회를 줬다. 발언을 철회할 충분한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반역사적이고 위헌적인 발언을 하고서도 개인 생각이라는 것만 강조할 뿐, 실언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녹음기를 켠 이후엔 이를 의식해서인지 발언 수위만 훨씬 낮췄을 뿐이다. 정말 우리 사회는 이미 ‘신분제 사회’가 돼 있고, 그래서 이런 대화가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귀가 후 충격으로 잠을 못 이루고 있는 사이, 세종시로 돌아가는 교육부 공무원들이 보내온 문자메시지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반가웠고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술은 입에도 대지 않고, 저녁시간 내내 한번도 자리를 뜨지 않았던 후배 기자는 너무 충격적인 내용에 모든 발언과 참석자들의 표정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했다.

당사자는 억울할지 모르겠지만 국민들을 위해 무엇이 바람직한지를 생각하면 크게 논의가 필요한 사안도 아니었다. 발언을 보도하기로 결정하는 데 편집국 차원의 망설임은 없었다.

교육부는 보도의 파장이 심상치 않자 지난 9일 해당 간부를 대기발령하고, 취중 실언이었다는 취지로 사과했다. 그러나 문제는 개인의 일탈 이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차라리 이 간부는 속마음을 그대로 털어놨다는 점에서 순진했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속에선 신분제 고착화를 고대하면서 말로만 격차 타파를 외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들이 시행하는 정책들이 얼마나 진정성이 있을 것이며, 결국은 얼마나 정반대 방향의 효과를 낳을 것인지….

고교 다양화라는 명목으로 추진된 고교 서열화, 현대판 음서제로 불리는 로스쿨 파동,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를 더욱 확대할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대학구조개혁, 국회 보좌관 친·인척 채용 특혜 등은 따지고 보면 ‘신분제 부활’을 꿈꾸는, 스스로 귀족층이라 생각하는 상위 1%의 은밀한 욕망이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오랫동안 계층이동의 주된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이 점에서 국민들은 어떤 분야보다도 교육만큼은 작은 차별, 불공평에 민감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교육부는 과연 불평등 완화와 격차 해소를 위해 무엇을 해왔는지 돌아봐야 한다. 이번 사태로 시민들의 분노를 목도했다면, 교육정책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함을 인정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아무리 화려한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신분제 사회는 결국 99%가 1%를 위해 복무하는 사회다. 우리 사회에서 신분제는 공고히 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다. 아무리 1%가 99%의 먹을거리를 마련해주더라도 그렇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을 지면에서까지 되새겨야 하는 상황이 참담하다.

<송현숙 정책사회부장>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