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 거짓말의 배후, 청와대였나

입력 2016. 7. 1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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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 비판 자제’ 압박한 이정현-김시곤 통화 직후 123정 구조 활동 홍보 인터뷰와 거짓 기자회견 기획한 해경 지휘부

해경 경비정 123정 정장 김경일(왼쪽 상단)은 2014년 4월28일 세월호 침몰 당시 퇴선 방송을 했다는 거짓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당일, 해경 지휘부는 김경일에게 기자들의 질문이 담긴 A4용지(오른쪽 상단)를 건넸다. 김경일은 거짓으로 꾸민 퇴선 방송 내용을 자필(왼쪽 하단)로 적어놓았다. 두 메모는 검찰이 임의 제출받은 김경일 휴대전화에서 나왔다. 기자회견 일주일 전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현 새누리당 의원·오른쪽 하단)은 김시곤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해경 비판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검찰 수사자료, 한겨레 강창광 기자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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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경찰 경비정) 123정의 허위 기자회견을 통한 여론 조작의 배후는 누구인가. 배후의 ‘윗선’은 또 다른 ‘윗선’으로 올라가는 길목이다. 세월호 특조위(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세월호 관련 수사재판 기록을 추적·분석한 책 <세월호, 그날의 기록>(진실의힘 펴냄)은 ‘해경의 거짓말’을 조목조목 밝히며 이렇게 지적했다. 최근 배후의 ‘윗선’이 베일을 벗었다.

2014년 4월21일과 30일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현 새누리당 의원)이 김시곤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해경 비판을 자제해달라”고 압박한 정황이 담긴 녹음파일과 녹취록이 공개됐다. 해경의 배후 세력은 다름 아닌 청와대였음을 강력히 시사하는 증거다. 이번에 공개된 녹취록을 보면, 사고 초기 청와대는 해경과 정부를 한 몸으로 인식하며 적극 옹호했다.

2014년 4월21일 KBS는 사고 직후 30분간 세월호와 교신한 진도해상교통관제시스템(VTS·해경 소속)이 승객 탈출을 지시하지 않았다며 ‘소극 대응’이라고 보도했다. 이 의원은 이날 김시곤 당시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강하게 항의했다.

“온 나라가 어려운데 이 시점에 해경하고 정부를 두들겨 패야지 맞냐?” “멀리서 목소리만 듣고 하고 있는 사람들(해경)이 이 사람들한테 뛰어내리고 소리 안 해 이 사고가 일어난 거냐? 지금 해경이 잘못한 것처럼 (방송 보도를) 내고 있잖아.” “지금 해경이 저렇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중략) 방송이 지금 해경을 밟아놓으면 어떻게 하냐.”

“본청이 왜 이제 와서 인터뷰를 지시하는지”

그날 이후 해경 지휘부는 해경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거짓 기자회견’을 기획했다. 이틀 뒤인 4월23일 해경 본청 대변인실은 123정 이형래에게 전화를 걸어 “위에서 시켜서 하는 게 아닌 것” 같은 인터뷰를 하라고 지시했다. 123정은 세월호가 침몰할 때 현장에 도착한 유일한 해경 경비정이고, 이형래는 당시 구명뗏목을 터뜨리려고 세월호에 올랐던 해경이다.

검사  본청 대변인실에서 진술인에게 인터뷰를 하라고 지시한 이유가 무엇인가.

이형래  2014년 4월23일 당시는 해경이 구조 작업을 잘하지 못해 세월호 승객들이 죽게 되었다며 국민과 여론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어서, 내가 구명벌(구명뗏목)을 터뜨린 것으로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지시한 것이었다.

(2014년 8월3일 검찰 이형래 2회 진술조서)

본청 대변인실은 “진도파출소에 들렀다가 우연히 기자를 만나서 하게 된 것처럼 (인터뷰를) 하라”고 했다. 이형래는 지시받은 대로 사고 당일 구조 작업 때 입은 기동복을 챙겨 입고 본청이 마련해준 함정을 타고 진도로 나왔다. 대변인실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방송국) 여기자랑 진도파출소에서 만나실 거예요. 진도파출소 직원들도 잘 모르도록 자연스럽게 진행하셔요. 이 경사가 구조 현장 언급시 긴박했던 순간을 잘 말씀해주세요.” 방송국 여기자와 인터뷰를 끝내고 나오자 다른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다음날인 4월24일, 해경 지휘부는 123정 정장 김경일과 대원들에게 거짓 기자회견을 지시했다. 해경청장 김석균은 2015년 12월 세월호 특별위 제1차 청문회에서 “우리가 했던 (구조 활동) 내용을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내가) 기자회견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검사 언론 인터뷰를 하게 된 경위는.

박성삼(123정 대원)   정장(김경일)이 4월24~25일 저녁 무렵 정장실에서 조타실로 올라와서 저에게 ‘위에서 인터뷰하라고 한다’라는 말을 하면서 싫은 표정을 짓고 ‘나는 말주변도 없는데 걱정이다’라는 취지로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검사 진술인은 어떻게 했나.

박성삼  나는 ‘본청이 왜 이제 와서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인터뷰를 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스럽게 이야기했고, 정장도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다.

(2014년 8월4일 검찰 박성삼 8회 진술조서)

해경지휘부가 기획·연출한 거짓 기자회견

기자회견은 4월28일에 진행됐다. 해경 지휘부는 이날 123정 정장 김경일을 ‘특별 교육’했다. 오전 8~9시 목포해양경찰서장 김문홍은 김경일과 6차례 걸쳐 22분여 동안 통화했다. 김경일은 검찰 조사에서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데 인터뷰 잘하라고 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

이날 오후 2~3시, 123정이 전남 진도 팽목항에 도착하자 서해해양경찰청 홍보계장 등 3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123정에 승선해 정장 김경일에게 ‘4/28 인터뷰 내용’이라는 A4용지를 건넸다(사진 참조). 기자회견 예상 질문과 답변이었다. 김경일이 더듬더듬 읽어 내려갔다. “본정은 9시경 상황실의 구두 지시에 의거해 출동….” 홍보계장이 “정장님, 긴장하지 마시고 이 부분은 이야기하듯이 편하게 하십시오”라고 코치했다.

김경일과 대원들은 오후 4시, 망치와 손도끼를 들고 기자회견에 나섰다. 김경일은 “(123정의 대공마이크로) 9시30~35분 사이 수차례 (퇴선) 방송했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동영상에는 퇴선 방송이 나오지 않는다고 기자들이 지적하자 부정장 김종인이 ‘재연’까지 했다. 마이크를 잡고 123정 조타실에서 “바다로 뛰어내리세요! 승객 뛰어내리세요!”라고 소리쳤다는 것이었다. 모두 거짓말이었다.

123정은 사고 현장에서 방송 장비로 승객들의 퇴선을 유도해야 했지만 퇴선 방송을 하지 않았다. 만약 퇴선 방송을 했다면, 세월호 출입문 근처에 있던 승객이 그 방송을 듣고 빠져나가면서 다른 승객들도 뒤따를 상황이었다. 그러나 세월호 승객 303명은 해경이 선내로 진입할 것으로 기대해 대기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해경 지휘부는 이날 거짓 기자회견을 철저히 통제·관리했다. 김경일의 답변이 길어지자 누군가 소리쳤다. “야, 정장이 헛소리할지 모르니까 얼른 가서 데리고 와.” 서해청 홍보계장이 기자회견 현장으로 달려가 “123정이 근무를 하다가 왔기 때문에 다시 출동해야 한다. 양해해달라”고 말하고는 김경일과 대원들을 데리고 123정으로 돌아왔다.

검사 방송 인터뷰는 본청이나 서해청의 지시를 받아 그들의 관리하에 이뤄진 것으로 보이는데.

박성삼  당연히 그렇다. 123정이 해경 조직의 대표로 언론 인터뷰를 한 것인데 본청의 개입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4년 8월4일 검찰 박성삼 8회 진술조서)

청와대를 위해 국민을 속이다

언론은 기자회견 직후 “사고 현장에 도착한 123정이 ‘바다에 뛰어내리라’고 퇴선 방송을 했지만 상공에 떠 있던 구조 헬기의 소음이 심해 승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해경이 여론 전환에 성공한 셈이다.

해경의 거짓말은 같은 해 7월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까지 계속됐다. 해경청장 김석균은 국회에서 “(123정이) 세월호에 접근하면서 뛰어내리라, 퇴선하라는 방송을 수차례 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런데 그 당시에 헬기 소리라든지 이런 것 때문에 전달이 안 됐다”고 진술했다.

해경이 국민과 국회를 속인 사례는 또 있다. 해경은 “세월호를 첫 수중 수색한 시각은 4월16일 오전 11시24분”이라고 발표했지만, 이는 거짓이었다. 그 시각 목포해경 122구조대는 사고 현장에 도착하지도 않았다.

122구조대는 차량, 민간어선, 경비정을 갈아타며 사고 현장으로 향한 탓에 오후 1시에야 첫 수중 수색이 가능했다. 세월호가 완전히 뒤집혀져 뱃머리만 남긴 채 물속으로 가라앉은 지 2시간30분 만이었다. 그러나 해경 지휘부는 청와대에 첫 수중 수색을 11시24분이라고 보고했다는 이유로, 4월28일 ‘오후 1시’ 기록을 수정하도록 지시했다. 세월호 침몰 뒤 구조 방식을 신속하게 전환하지 못한 잘못을 은폐한 셈이다.

세월호가 침몰할 당시에도 해경은 청와대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청와대는 해경 본청에 3분 간격으로 전화해 구조를 지원하는 상선의 톤수가 얼마인지, 사고 현장과 구조된 사람을 옮기는 섬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시시콜콜 묻고 또 물었다.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또 “현장을 확실히 봐야 정확한 (대통령) 보고를 할 수 있다”며 끊임없이 사고 현장 영상을 요구했다. 청와대의 요구는 해경의 지휘 계통을 타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123정까지 어김없이 전해졌고, 결국 123정이 “구조 활동에 전념하기 어렵게 했다”. 침몰하는 여객선에서 승객을 구해야 할 123정 대원들은 사진을 찍고 사람 수를 세느라 바빴다. 현장 구조 세력이 제대로 구조 활동을 하는지 지휘·감독해야 할 해경 지휘부도 덩달아 청와대 보고에 더 신경을 썼다.

구조 방해하고, 부실 구조 두둔한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5월19일 대국민 담화에서 해경 해체를 선언했다. 박 대통령은 “사고 직후 (해경이) 즉각적으로 적극적인 인명 구조 활동을 펼쳤다면 희생을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해체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해경의 인명 구조 활동을 방해하고 늦장·부실 대응을 옹호했던 세력은 정작 청와대였음을 방증하는 흔적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불행히도 그 진상을 파헤쳐야 할 세월호 특조위는 7월1일부터 예산이 끊겨 손발이 묶인 상태다. 진실은 서서히 침몰하고 있다.

정은주 <한겨레>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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