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메갈리아 1년] <1> "나는 왜 메갈리안이 됐나"

김서영 기자 입력 2016.07.12. 18:34 수정 2016.07.13.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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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메갈리아를 ‘녹색의 땅’이라 부르며 모여



‘메갈리안’ 자처 여성들 “위로 받아” 고백



분화된 커뮤니티들 온·오프라인서 움직임



페미니즘 말하고 표현하는 방식 자리 잡아

지난해 여름 ‘메르스갤러리’와 ‘메갈리아’가 탄생한 이래, 온라인 공간엔 큰 변화가 일었다. 예전까진 날씨를 전하는 포털 기사에 뜬금없게도 ‘김치녀’ 타령을 하는 댓글들이 붙었다면, 이젠 ‘한남충’을 언급하는 댓글이 붙곤 한다. “김치녀 패기 좋은 날씨다”에서 “한남충 패기 좋은 날씨다”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얼핏 보기엔 ‘증오’와 ‘적대’의 언어가 증가한 것처럼 느껴진다. ‘한남충’ ‘씹치남’ 등 단순히 특정 단어의 언급 빈도를 취합한 혐오 발언의 총량으로 따지자면 이는 분명 사실이다. 이를 근거로 현재 한국이 ‘혐오 사회’임을 지적하는 기사도 무수히 나왔다.

문제는 이같은 ‘혐오는 나쁘다’ 혹은 ‘여혐(여성혐오) 대 남혐(남성 혐오)’ 구도가 메갈리아의 등장 배경, 즉 그동안 지속돼온 한국 사회의 여성 혐오를 가렸다는 점이다. ‘모든 혐오는 나쁜 것’이란 인식은 한국 사회가 메갈리안의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를 막았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왜 메갈리아를 ‘녹색의 땅’이라 부르며 그곳에 모였을까.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떤 감정을 공유했을까. 앞서 지면 관계상 다 싣지 못했던 ‘메갈리안’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내가 예민했던 게 아니구나”

“메갈리아에서는 사람들이 익명의 힘을 빌어 성폭력, 가정 내 성폭력 경험을 쏟아놨다. ‘사촌 오빠한테 당했다’ ‘아빠한테 성폭행 당했다’ 같은 글이 올라오면, 다같이 댓글로 욕하고 위로해줬다. 그 과정이 치유의 과정처럼 느껴졌다.”

국지혜씨(37)는 “경험담이 서로 폭발하면서 고통을 공유하게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거친 언어와 미러링에 익숙하지 않던 소위 ‘코르셋’이란 여성들도 빨리 메갈리아에 적응했다. 이미 경험했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문제를 설명해줄 단어를 만나면서, 듣는 순간 그 의미를 확 깨닫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수원씨(가명·22)는 “10대 시절부터 느끼던 불편함들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격앙된 목소리로 토론하는 걸 처음 봤다”고 떠올렸다. 윤씨는 “그전까지는 ‘넌 애가 왜 그렇게 예민하냐’ ‘왜 그렇게 불만이 많냐’란 말을 들었다면, 메갈리아에서는 나와 똑같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걸 보고 감동받았다. 동지애를 느꼈다”고 말했다.

‘메갈리안’임을 자처하는 여성들은 메갈리아에서 “위로를 받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길서연씨(가명·23)는 “메갈리아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은 ‘피해자’ 정체성이었다”고 말했다. 길씨는 “메갈리아의 ‘미러링’이 힘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여성혐오가) 삶의 문제로 진정성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만약 이전에 한국 남성들이 여성혐오를 성찰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였다면 메갈리아는 그다지 돋보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우리씨(가명·23)는 “주변 여성들이 왜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여성혐오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그는 “20대 초반의 여성 지인들이 되게 고민을 한다. ‘남자 친구랑 자고 나서 연락이 잘 안오는데 어떡하지’ 같은. 만약에 이 세상이 성평등한 사회였다면 이런 고민을 할까. ‘아 이게 우리가 행복해질 수 없는 원인이구나’ 깨달았다”고 말했다.

■메갈리안에게 ‘미러링’이란

메갈리아는 등장부터 ‘미러링’을 표방했다. 미러링은 어떤 차별적·혐오적 표현에서 성별을 바꿔끼워, 원래의 표현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인식에 기반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예컨대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를 미러링하면 ‘수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가 된다. ‘남자 기 살려주는 조신한 개념녀’는 ‘여자 기 살려주는 조신한 개념남’이 된다. 모든 미러링엔 원본이 있다.

정우리씨는 미러링을 처음 접했을 때 “‘아 내가 왜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돌려주지 못했지’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메갈리아 이전까지는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해야 한다는 강박이 엄청나게 컸던 페미니스트였다. 정씨는 “도덕적 올바름의 기준으로 따지자면 미러링은 사실 전혀 올바르지 않다. 누구도 그런 폭력 방식이 옳다고는 하지 않을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효과가 있다는 데에 동의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치남’ ‘한남충’에서 시작해 ‘창남’ ‘애비충’ 등으로 번져간 미러링 용어는 쉼없이 생겨났다. 곧바로 “모든 남성을 싸잡아 일반화하지 마라”는 남성들의 반발이 일어났다.

페이스북 페이지 ‘바람계곡의 페미니즘’ 운영자 ㄱ씨는 “여성들이 미러링을 하도록 만든 건 남성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가부장제라는 온실 속에서 남성이라는 금수저를 물고 성장한 남성들은 미러링이 아니고서는 여성의 현실을 조금도 되짚어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ㄱ씨는 “미러링의 형식으로 표현된 콘텐츠는 남성들을 굉장히 불편하게 만들지만 여성들이 살면서 견뎌야 하는 불편함은 그것보다 훨씬 더 다채롭고 거대하다는 사실을 남성들은 알아야 한다”고도 밝혔다. “한두 번 좋게 말해서 남성들이 알아들었다면 여성들이 굳이 미러링이라는 번거로운 방식을 택할 리가 없었을 것”이란 뜻이다.

최지윤씨(가명·24)는 “남성들이 미러링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 실제로 어렵다기보다는 본능적으로 밀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그는 “본인들은 인지하지 못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남성들에게 ‘너 그거 특권이야’라고 하니 불편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남성들은 특권을 되게 거창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사실 본인조차 인지하지 못해야 진정한 특권”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어떤 발화에서 성별만 갈아끼워 완성된 미러링 표현은 현실에서도 정확히 대칭적인 의미를 가질까.

미러링을 통해 뒤집어진 ‘겉보기 혐오’ 발언이라도, 여성혐오와 ‘남성 혐오’는 다르다. ‘맘충’을 미러링한 ‘애비충’이 그 예다. 국지혜씨는 “남성들이 ‘맘충’을 언급할 때는 ‘우리 엄마는 빼고’가 전제돼 있는 반면 여성들의 ‘애비충’은 실제로 자신의 아빠를 지칭한다”고 지적했다. “여성들은 실제로 크고 작은 폭력을 행사하거나 집안일에 무관심한 아버지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란 뜻이다. 윤수원씨는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남성들의 생활에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제로 폭력으로까지 이어지는 여성혐오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등장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러링에 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효과가 있느냐’부터 시작해, ‘혐오에 혐오로 대응해서 되겠느냐’까지 다양하다. “논란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로 성공적”이라는 메갈리안의 자체 평가도 있다.

최지윤씨는 “미러링은 (변화의)시작을 알리는 것이었을 뿐, 유일한 수단도 최종 수단도 아니다”라고 견해를 밝혔다. 길서연씨는 “지향으로서는 아닐지라도 현실적 전략으로서는 훌륭했다”고 평가했다.

■“미러링을 하는 것이 고통스럽다”

과거 메갈리아에는 “미러링을 하는 것이 힘들다”는 한탄이 종종 올라왔다. 여성혐오성 표현에서 느꼈던 충격을 떠올리는 어려움과 더불어 실제 현실 속 여성혐오는 여전히 단단하다는 좌절 때문이다. 미러링의 ‘원본’이 될만한 콘텐츠를 쉽게 떠올리거나 찾아낼 수 있어서 힘들었다는 의견도 있다.

페이스북 ‘메르스갤러리 저장소3’ 운영자 김모씨는 “미러링은 내가 들었던 말을 주어만 바꾸어 돌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당한 경험을 떠올려야 한다. 마냥 즐거울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치녀는 삼일에 한번 때려야 한다(삼일한)”를 “한남충은 숨쉴 때마다 패야 한다(숨쉴한)”로 바꾸기 위해선 먼저 ‘삼일한’을 들었던 당시의 충격을 되살려야 한다는 뜻이다. 김씨는 “익명이 보장되는 인터넷 공간을 벗어나면 위협을 당할까 두려워 현실에서 마주하는 여성혐오에 대한 반격이 힘들다는 점도 씁쓸했다”고 말했다.

한편 미러링을 통해 남성들이 그동안 여성들을 바라봐오던 ‘혐오의 시선’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는 경험담도 있다.

김재윤씨(24·가명)는 “처음에 미러링을 볼 때는 ‘재미있다’ ‘웃기다’하는 느낌이었는데, 점점 나 자신이 남성을 대상화하는 게 느껴졌다”고 떠올렸다. 김씨는 그때 ‘사람 취급’이 아닌 ‘남자 취급’이 무엇인지 와닿았다고 했다. ‘아 그동안 남자들이 여자들을 이렇게 봐왔구나’ 싶었다는 뜻이다. 김씨는 “‘나를 여태까지 이런 식으로 봐왔기 때문에 그렇게 막 대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재밌는 일이더라구요.” 길서연씨는 “메갈리아에서 혐오의 감정이 뭔지 비로소 깨달았다”며 이렇게 전했다. 길씨는 “혐오는 놀이의 감정이더라. 남성들이 장난, 놀이 삼아 여성혐오를 하는 이유를 알게됐다”고 말했다.

윤수원씨 역시 “미러링 표현을 보고 처음에는 울분을 토하다가 점차 즐거워하게 됐다”며 “남자들은 그동안 여성혐오를 하면서 이렇게 재밌었구나 깨닫고 흠칫 놀랐다”고 말했다.

■“우리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달라”

박수희씨(26·가명)는 메갈리아를 ‘메르스가 낳은 최고의 결과물’이라 평했다. 그는 “예전에는 대학에서 여성학 수업을 듣고 ‘나는 바뀌었다’고 말하는 여성들이 있었다면,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코르셋을 벗겠다’고 말하는 여성들이 생겨났다”며 “한국 사회는 유지·존속을 위해서라도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고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길은정씨는 “메갈리아는 여성혐오와 가부장제에 대한 사회적 반응”이라며 “메갈리아의 거친 언어만을 트집잡는 것은 아파서 욕하는 사람에게 ‘아무리 아파도 욕이 뭐냐’고 하는 것과 같다. 일단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부터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메갈리아, 그리고 메갈리아에서 분화된 커뮤니티들은 온·오프라인에서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여성의 외침에 귀기울여 달라”고 주장한다.

온라인상에선 메갈리안을 ‘메퇘지(메갈리안+멧돼지)’ ‘메오후(메갈리안+파오후)’라고 비하하는 표현이 일찌감치 생겨났다. 현재 이는 ‘메갈리안’ 그 자체를 지칭하는 표현으로도 쓰이지만 페미니스트 혹은 뭔가 문제제기를 하는 여성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사용된다.

이제 ‘메갈리아’는 없다. 메갈리아가 여러 커뮤니티로 분화하기 전을 기억하는 ‘메갈리안’과 ‘메퇘지’ 소리를 듣는 여성들만이 남았다. 정우리씨는 “메갈리아에 있다 보면, 우리가 뭔가 하나의 공통된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메갈리아는 몇명이 여론조작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수많은 여성들로 구성돼 있고 실제로 굉장히 파급력이 있다”고 말했다.

최지윤씨는 “메갈리아는 여성 인권의 신장을 지향했고, 미러링 같은 좁은 수단으로 묶이기에는 그 목표가 굉장히 광활했다. ‘메갈리안’이라는 정체성 역시 너무나도 다양하지만, ‘페미니즘’이라는 큰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메르스갤러리 저장소3’ 운영자 김모씨는 “누군가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면 여성혐오자로부터 메갈리안 취급을 받는다. 메갈리안이 이제는 페미니즘을 말하고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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