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잎김치의 눈물

군위/권광순 기자 입력 2016. 7. 13. 03:06 수정 2016. 7. 1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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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0대 군위 시골 할머니들이 만든 제품 간장·조청 원산지 표시 잘못해 범법자 신세

"고향집 할머니들이 하던 대로 정성을 다한 것뿐인데…."

경북 군위읍 산성면 화본리에 있는 군위 콩잎김치 영농조합의 윤팔선(58) 대표는 요즘 마음이 무겁다. 농산물 원산지 표기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범법자'가 됐기 때문이다.

이 마을 부녀회는 지난 2010년 8월 콩잎에 양념을 하고 숙성시켜 만드는 전통 밑반찬인 '콩잎 김치'를 상품화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경북도와 군위군이 사업비 80%에 해당하는 보조금 2억2000여만원을 지원했다. 윤씨는 60~70대 할머니 6명과 함께 영농조합을 만들고 공장을 차렸다. 2011년 1월 초 콩잎 김치를 팔기 시작하자 의외로 인기를 끌어 월 7000만원까지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대량생산을 하는 다른 회사 제품에 밀리기 시작하더니 올 들어선 월 매출이 300만~400만원으로 떨어졌다. 현재 판로는 인터넷 쇼핑몰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조합은 지난 4월 중순엔 원산지 표기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콩잎 김치를 담그면서 국내 유명 업체가 만든 간장과 조청을 넣고 포장재에 '국내산 간장·국내산 엿'이라고 적은 것이 문제였다. 윤씨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었으니 당연히 국산인 줄 알았다. 내가 너무 무식했다"고 말했다. 실제 간장 제품 포장재엔 '인도산 대두·미국산 밀', 조청 제품엔 '수입산 쌀 100%'라고 표기되어 있다. 국립농산물품질검사원 의성·군위 출장소 관계자는 "원산지 표기법에 어두운 콩잎김치 조합의 사정은 딱하지만 고발이 들어온 것이라 단속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원산지 표기를 잘못하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 등을 신고해 포상금을 타내는 이른바 '식(食)파라치(연예인 등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파파라치와 음식의 합성어)'에게 영농조합이 걸려든 것으로 보인다는 얘기였다.

조합대표인 윤씨는 지난 5월 말 법원으로부터 벌금 700만원을 내라는 약식명령서를 받자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지난달 말 1차 공판에 이어 선고 공판은 14일 열린다. 윤씨는 "국내 유명 회사 제품을 쓰지 말고 그냥 시장에서 싼 간장, 조청을 사다 썼더라면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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