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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세월호 아픈 기억 노란 우산에 담아 알리고 싶다"

주영민 기자 입력 2016. 07. 1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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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석 혈혈단신 세월호 전국 순회 추모행사 "우산 90개 처리하려 했다가 3000개 주문받아"

(인천=뉴스1) 주영민 기자 = “세월호 참사 문제는 잊혀지느냐, 기억하느냐 사이의 대결 구도로 프레임이 짜여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제대로 해결한 게 하나도 없는데 억지로 지우려 할 필요가 있을까요. 기억날 때마다 그들을 추모하고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고민하는 것. 이게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세월호 기억 노란우산 프로젝트’(이하 노란우산 프로젝트)를 기획한 서영석씨(46)는 13일 오전 인천시 서구 석남중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세월호 추모 행사를 준비하며 “노란우산 프로젝트를 통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는 사실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서영석 세월호 기억 노란우산 프로젝트 기획자. 2016.7.13 © News1 주영민 기자

◇“세월호 출발·도착지에서 추모행사를 시작하고 싶었다”

노란우산 프로젝트는 전국을 돌며 세월호 관련 플래시몹과 협동화 그리기 등의 문화 활동을 통해 세월호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종의 전국 순회 추모행사로 지난달 18일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섭지코지 해안에서 열린 이후 이날 2회째를 맞았다. 앞으로 광주, 세종, 서울 등 전국 곳곳을 돌며 행사를 할 예정이다.

일부에서 이 행사를 세월호 관련 단체나 지역 시민사회단체 등의 후원을 받고 진행하는 게 아니냐며 의심을 눈초리를 보내고 있지만 놀랍게도 서씨 혼자 이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제주도와 이날 인천 행사는 서씨가 직접 장소를 섭외했고 앞으로 열릴 행사는 해당 지역에서 “우리 지역에서도 행사를 열게 도와 달라”며 먼저 제안이 왔다고 한다. 그가 제주와 인천을 각각 첫 번째와 두 번째 행사 지역으로 선정한 건 두 곳이 각각 세월호의 도착지와 출발지였기 때문이다.

서씨는 “적어도 세월호가 출발하고 가고자 했던 지역에서 추모행사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평범한 사진작가, 세월호 참사에 관심 갖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기 전까지 서씨는 서울에서 아기전문 사진관을 운영하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서씨는 “세월호 참사가 있기 전까지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왜 그렇게 나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이를 대처하는 정부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서씨가 세월호 문제 적극적으로 뛰어들 게 된 건 참사가 발생하고 3주가량 지난 2014년 5월 8일이었다. 그날 집에서 뉴스를 보는 데 한 언론사 관계자가 세월호를 교통사고에 빗대어 발언하는 것을 두고 유가족들이 가슴에 희생된 자녀들의 영정을 가슴에 안고 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 그들 앞에 경찰이 막아서는 모습에 자기도 마음이 너무 아파 그 길로 여의도로 달려갔다. 적어도 자기라도 유가족 옆에 서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유가족들과 함께 새벽을 보내며 노숙까지 했다.

그날 이후 서씨의 삶을 완전히 바뀌었다. 서울에 살던 서씨는 아내와 함께 세월호 활동에 매진했다. 정부의 대처를 규탄하고, 진상규명 서명을 받고, 실종자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오기 바라는 피켓팅을 벌였다. 명절에도 고향이 아닌 광화문을 찾아가 유가족과 함께 지냈다.

인천 석남중학교 학생들이 13일 학교 운동장에서 세월호 기억 노란우산 프로젝트 플래시몹을 하는 모습. 2016.7.13 © News1 주영민 기자

◇세월호 우산 90개 정리하려 했다가 오히려 3000개 주문 받아

지난해 말 세종시로 이사한 서씨 가족은 이제 세종정부청사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노란우산 프로젝트’의 기획도 나왔다.

지난 5월 서씨는 여느 때처럼 세월호 활동가 10여명과 함께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해양수산부 앞에서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비가 내렸고 우산을 꺼냈는데 손잡이가 고장 나서 더 이상 우산을 쓸 수 없는 상황에 닥쳤다. 평소 세월호 그림이 그려진 노란우산을 썼던 그는 똑같은 우산을 구하려 했지만 구할 수 없었다.

이때 그는 함께 하는 사람들과 세월호 기억 우산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해냈고 우산 제작공장에 주문을 의뢰했다. 문제는 공장에서는 100개 단위로만 주문을 받는다는 것. 활동가들은 10여명에 불과한데 100개씩이나 만들어야 할까 고민하던 그는 나머지 90개를 판매하기로 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세월호 기억 우산 공동구매’라는 글을 올렸다.

다음 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SNS상에 들어온 주문량이 무려 1000여개에 이른 것이다. 주문이 계속 늘어 이틀 만에 3000개의 주문이 들어왔다. 주문 내역을 보니 대량구매는 없고 모두 1∼2개씩 구매하고 싶다는 내용들이었다.

우산 90개를 정리하려고 올렸는데 오히려 2900개를 더 주문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그는 ‘그냥 없던 일로 해야 할지 주무내역대로 보내줘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세월호 활동을 하면서 거짓말하는 정부를 비판해왔는데 나마저도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추가 주문을 하기로 했다.

서씨는 “우산을 1∼2개씩 주문한 게 모여 3000개가 된 걸 보면서 ‘이걸 어떻게 보내줘야 하나’하는 걱정보다 아직도 세월호 문제를 기억하고 행동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감동이 더 컸다”며 “어쩌면 노란우산 프로젝트를 하게 된 건 운명이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전국에 퍼져가는 우산들을 보며 그는 이제 그 우산으로 세월호 문화행사를 해보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 제안에 주위 사람들도 무리라며 말렸지만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더구나 첫 행사를 세월호 도착 예정지였던 제주도에서 한다고 하자 더더욱 서씨를 만류했다. 하지만 별다른 홍보없이 치른 첫 행사에서 200명이 모였다. 참가자 대부분도 제주도민이 아닌 전국 각지에서 모였다.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경기 파주에서 제주까지 한 걸음에 달려온 사람들도 있었다. 세월호 유가족들도 서씨를 돕기 위해 직접 제주도를 찾아왔다.

서씨는 "행사를 진행하면서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며 "아무런 대가 없이 묵묵히 행사를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이 그만하라 할 때까지 활동할 것”

서씨는 이 행사를 하면서 가능하면 혼자서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려 한다. 혼자하기에 비용이나 체력, 정보 면 등에서 너무 힘들지만 자칫 다른 단체가 참여하면 행사의 순수한 의도가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서씨는 노란우산 프로젝트를 우선 10월까지 추진한 뒤 잠시 휴식기를 가질 예정이다. 후원금 없이 우산 판매금으로 행사를 진행하다보니 부담도 있고 가족들의 생계도 돌봐야하기 때문이다. 노란우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작업량이 평소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휴식기를 그리 오래 가지지 않을 거라고 서씨는 약속했다.

서씨는 “세월호 참사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견디고 있는 유가족과 이 사건에 점점 무관심해져가는 세상을 향해 아직도 이 아픔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노란 우산에 담아 알리고 싶다”며 “유가족들이 이젠 그만 활동해도 괜찮다는 말을 할 때까지 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ym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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