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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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정수현 기자 입력 2016. 07. 15. 13:32 수정 2016. 07. 1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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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그날(X), 생리(O)해요", 생리에 대한 인식 개선 시급, 여성 스스로도 자신감을 갖고 생리현상을 밝혀야

편의점에 들러 생리대를 구매한다. 조심스레 검정 봉투에 담기는 생리대. 검은 봉투를 몰래 가방에 쑤셔 넣고 행여 누가 볼까 조바심을 치며 화장실로 달려간다. 하지만 곧이어 머릿속을 파고드는 질문 “나는 왜 나의 생리 현상에 떳떳하지 못할까?”

최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는 생리에 대한 낮은 인식 개선을 촉구하는 ‘생리대 퍼포먼스’가 열렸다. 캠페인에 참여한 사람들은 붉은색으로 칠한 생리대를 벽에 붙이고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붉은 물감으로 적었다. 이 퍼포먼스는 강렬한 붉은색과 함께 생리대 언급을 금기시하는 대한민국 사회에 적잖은 충격을 줬다. 여성들에게는 일상적인 경험이지만 그동안 입 밖으로 쉽게 꺼내지 못했던 말 ‘생리’. 생리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를, 세대별 여성들의 입을 빌어 들어봤다.

◇[2030세대의 외침] 생리 휴가는 여성들의 당당한 ‘권리’입니다

지난 2014년 입사해 올해로 3년차 직장인이 된 손지은(31)씨. 최근 그녀는 생리통 때문에 생리 휴가를 쓰려 했지만, 직장 상사가 “휴가를 쓰려면 양심껏 좀 사용하라”고 질책하는 통에 사용하지 못했다. 손씨는 “생리 휴가는 당연한 여성 직장인의 권리로 알고 있는데 그것을 갖고 ‘양심’ 운운하는 상사를 보고 정이 뚝 떨어졌다”면서 “남자들이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간다고 할 때는 당연시되지만 여성들이 ‘생리 휴가’를 쓰겠다고 하면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직장에서 맘 놓고 생리 휴가를 쓰지 못하게 되니 여성 직장인들 스스로도 휴가 사용에 대해 머뭇거리며 ‘자기 검열’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근로기준법 제73조는 “사용자는 여성 근로자가 청구하는 경우에는 월 1일의 생리휴가를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근로시간·직종·개근 여부와 상관없이 임시직 근로자나 시간제 근로자를 포함한 모든 여성 근로자에게 주어지는 휴가다. 노사간 단체 협약에 따라 유급 또는 무급으로 주어진다.

하지만 지난 6월 한 제약회사가 2030 직장 여성 5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 중 85%가 생리 휴가 사용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 중 41.7%는 “회사에서 생리휴가를 사용하는 사람이 없거나 적다”는 이유로, 32.3%는 “주변에서 생리 휴가를 탐탁하지 않게 여기는 시선이 싫어서”라고 응답했다. 앞서 유한킴벌리가 직장 여성 1,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생리 휴가를 알고 있다는 응답자가 92%에 달했지만 76%의 응답자는 “생리휴가를 사용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홍콩의 한 한국 컨설팅 회사의 가이드 북에는 이런 글이 쓰여있다. “생리통을 이유로 휴가를 받으려면 질병으로 간주 받아 출근을 안 하는 방도는 있다···고의적, 습관적으로 한 달에 하루씩 논다는 증거가 있기 전에는 해고할 수 없지만 정 의심이 나면 사설탐정이나 직원을 보내 조사하는 방법도 있다.”

이 글은 생리를 이유로 휴가를 사용했을 경우 의심스러운 증거를 잡으면 해고할 수 있다는, 산업 현장의 각박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녹아 있다.

직장 생활 5년 차인 배은주(30)씨는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생리통으로 고통받는 여자들이 참 많다. 직원의 절반이 여성인 지금 같은 시대에 약을 먹고 참아야 하는 문화는 이제 사라져야 할 것 같다”며 “동료가 생리 휴가를 잘 쓰도록, 그리고 남성들의 예비군 훈련처럼 유급 휴가가 보편화 되도록 권리를 보살펴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40대의 걱정] “생리대 성분 공개는 내 자녀의 몸을 지키는 것”

고등학교 1학년 딸을 둔 학부모 김민재(45)씨. 어릴 때부터 천 생리대를 사용해 온 그녀는 최근 자녀가 겪고 있는 생리통의 원인이 일회용 생리대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김씨는 “어릴 때부터 천 생리대를 사용한 나는 그 흔한 생리통도 없고 생리혈도 좋았는데 요즘 아이들은 학교에서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고 있다”며 “집에 오면 다시 천으로 바꿔서 사용하도록 하지만 시중에 유통되는 생리대에 어떤 성분이 들어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안소영 여성환경연대 국장은 “일회용 생리대는 폴리에틸렌 등 비닐류로 구성돼 있다”며 “생리대 안에 든 솜도 화학물질인 흡수 겔인데 이 중 다수가 독성 물질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과거 방영됐던 SBS ‘환경 호르몬의 습격’ 다큐멘터리에서 생리대의 문제점을 보도했던 고혜미 PD는 생리대의 성분에 따라 생리통의 강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다큐는 서울과 경기도 중고등학교 학생 1,4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벌였는데 전체의 35%가 생리통을 진정시키기 위해 진통제를 먹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진통제를 먹을 만큼의 생리통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고 PD는 “엄마의 몸에 있는 유해물질이 자녀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엄마의 몸 성분이 좋지 않으면 자녀의 면역력에 영향을 미치고, 생리통을 유발하는 자궁내막증도 걸릴 가능성이 높다”며 “생리통은 일종의 병이다. 생리통을 유발하는 환경호르몬을 집중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환경호르몬을 엄마 세대에서 미리 차단하려는 노력은 성장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이슈”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당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제작팀이 중앙대병원 산부인과 이상훈 교수팀과 공동으로 표본 조사를 한 결과, 여학생들의 30%가 자궁내막증에 걸린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진통제를 사용하는 여학생과 자궁내막증에 걸린 여학생의 대다수가 겹친다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자궁내막증은 생리통을 유발하는 원인 중 하나로, 생리 시작 직전에 수반되는 골반통을 일컫는다. 사춘기에 시작된 자궁내막증은 초경부터 통증을 유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더 심각한 것은 자궁내막증이 있는 여성의 경우 임신 성공율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 편의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생리대 주요 성분 내역. 세제, 샴푸 등 전 성분 표시제를 적용하고 있는 상품과 달리 자세한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수현기자

암 등을 유발하는 환경호르몬의 원인으로 생리통의 일부 성분이 지적되고 있지만, 현재 생리대 성분은 영업 기밀이란 이유로 기업들이 세부 성분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내에선 안전성 검증 차원에서 세제·샴푸·화장품에 전체 성분 표시제(제품의 원료 성분을 기재하는 것)를 적용하고 있지만 생리대는 아직 공론화되지 않고 있는 것.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이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생리대의 성분을 직접 분석한 결과, 유한킴벌리 화이트에는 ‘폴레이틸렌필름(표지용)’, ‘부직포’ 등 두 가지 성분만 표기돼 있으며, 같은 회사 브랜드 ‘좋은 느낌’은 ‘부직포’, ‘면상펄프’, ‘흡수지’만 쓰여있다. 반면 세제와 샴푸 등 뒷면엔 제조 성분이 상세하게 표기돼 있다.

이와 관련, 유한킴벌리 홍보팀 관계자는 “식약처에서 사전 점검을 받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만 말했다. 하지만 지난 2014년 미국 여성환경건강단체가 P&G 생리대 4개 성분을 분석한 결과, 스틸렌과 염화메틸·염화에틸·클로로포름·아세톤·에틸벤젠·톨루엔·자일렌 등이 생리대에서 검출됐다. 이 중 스틸렌과 염화에틸, 클로로포름은 발암성 화학물질이고, 염화메틸은 임신과 출산에 영향을 끼치는 독성물질이다.

이안 국장은 “생리대가 유해하다고 할 순 없지만 무해하다는 (업체들의) 주장도 입증되진 않았기 때문에 일회용 생리대에도 ‘전 성분 표시제’를 적용해야 한다”며 “어떤 생리대를 선택할 것인지는 여성들의 고유한 권리로, 업체들은 생리대의 세부 성분을 공개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지훈 대구 보건대 보건전문교수는 “폴리에틸렌은 석유화학 물질로 구성돼 있는데 소량일 경우엔 인체에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장기간 몸에 밀착해 있을 땐 그 결과를 알 수 없다”며 “생리대에 솜 형태로 있는 흡수 겔은 흡수할 땐 문제가 되지 않지만 만일 그 알갱이가 터질 경우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 교수는 “한국 특유의 보수적인 문화가 만들어낸 일종의 억압적 사회 현상이다. 다른 성에 대해 폭 넓게 인식하는 문화가 갖춰져 있으면 상대쪽이 약자 의식을 갖거나 최근 강남역 같은 극단적 사회 현상이 발생할 일도 적다”며 “상호 젠더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문제점이 있다면 당당하게 밝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수현기자 valu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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