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 급발진 사고 은폐했던 도요타, 벌금 1조3000억원 '철퇴'

손현성 입력 2016. 7. 18. 20:15 수정 2016. 7. 1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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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적 손배제로 '제2 옥시' 막아라 <1>고액 배상으로 제재효과를

한국서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

인과관계 인정 94명 불구

과징금 5100만원이 전부

1971년 美 포드 폭발 위험 방치

경차 판매 강행 500여명 사망

희생자에 1300억원 손배 판결

“돈벌이 눈먼 기업, 생명 무시 땐

폐업 위기 감수할 정도 제재를”

옥시레킷벤키저는 2000년 10월 독성 화학물질(PHMG)이 든 가습기 살균제를 출시했다. 대표와 연구원들은 ‘흡입독성실험은 해야 되는데’라고 생각만 했다가 접었다. 그래 놓고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써서 안심할 수 있다’는 광고문구는 넣었다. 이후 목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등 민원 글이 잇따랐지만 계속 제품을 팔았다. 오히려 2004년 ‘99.9% 살균-아이에게도 안심’ 문구를 추가해 엄마들의 구매 심리를 파고들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재판을 맡고 있는 검사는 지난 4일 법정에서 사망자 대부분이 영유아와 임산부였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에게도 안심’ 등 문구만 제대로 고쳤어도 사망자의 약 95%는 살릴 수 있었다.”

진행 중인 재판의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망자는 94명. 업무상 과실치사와 표시광고법 위반으로 업체의 책임자들이 받을 처벌은 징역 7년 6개월이 심판의 최대치다. 검찰은 최근 이들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를 더했다. 기만광고를 한 잘못으로 옥시에 내려진 행정처분은 과징금 5,100만원이 전부다.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나와도 벌금 1억5,000만원만 내면 된다. 가습기 살균제 시장 1위였던 옥시는 11년간 50억원대 매출을 올렸다. 세월호 못지 않은 참사에 대해 누구에게 얼마만큼 대가를 치르게 해야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을지 우리 사회는 묻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 도입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안전은 기업에 이익을 주지 않는다?”

포드사 엔지니어 루 투벤은 1971년 경차 핀토의 연료탱크 결함으로 추돌 사고시 폭발 위험이 크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회사 관계자들에게 이를 설명하려 했지만 발표 당일 아무도 참석하지 않고 안전사고에 대한 위험이 무시됐다. 당시 포드 최고경영자 아이아코카는 이런 말을 즐겨 했다고 한다. “안전은 이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포드는 운전자 목숨을 비용으로 셈했다. ‘연료탱크 수리비로 대당 11달러가 들고, 핀토가 1,250만대니 총 1억3,750만달러의 수리비가 든다. 사람 1명이 죽으면 20만달러, 화상이면 6만7,000달러를 보상해야 한다. 180명이 죽고 180명이 화상을 입을 수 있으므로 사고 예상 비용은 총 4,950만달러가 든다.’ 이런 계산으로 포드는 폭발 위험을 방치한 채 판매 강행을 택했다. 핀토 판매는 8년간 이어졌고, 사망자가 500명이 넘었다. 이윤을 따지는 기업으로선 매우 ‘합리적인’ 결정이었던 셈이다.

미국 법원은 핀토 폭발 사고로 숨진 릴리 그레이 가족의 소송에서 1억2,500만달러(1,300억원 상당)의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2심에선 350만 달러로 감액되기는 했지만 1심 당시 법정에 선 한 포드 엔지니어는 “설계를 수정했다면 사망자 95%를 살릴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유사 소송이 50여건 이어졌다.

이점인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옥시가 (45년 전) 포드와 크게 다를 게 있느냐”며 “유독성 검사를 안 했다는 건 ‘고의’가 내재돼 있었거나 ‘의도적인 위험 무시’라 볼 수 있다. 법의 사각지대를 배회하는 자본의 탐욕을 저지하려면 손배액 한도를 훨씬 높여야 실효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면 고액 배상 책임을 물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열차 무임승차도 법으로 요금의 30배를 징수하는데 사회적 책임 없이 생명과 신체를 경시하는 기업에는 엄중한 경고를 못하는 현실이다.

232억 벌고 과징금 4억… 남는 ‘불법장사’

악덕 기업에 과징금을 물리거나 임원 몇몇을 형사처벌하는 것으로는 기업의 불법행위를 막는 데에 한계가 있다. 홈플러스가 2011~2014년 고객 신상정보 2,400만여건을 보험사에 팔아넘긴 일은 그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홈플러스는 개인정보 수집ㆍ판매 사업팀을 꾸려 실적을 매주 평가했다. 경품행사를 열어 개인정보를 수집한 뒤 보험사에 건당 1,980원에 넘겼다. 이렇게 약 232억원을 벌었다. 하지만 과징금은 4억3,500만원에 그쳤다. 형사사건에선 응모권에 1㎜ 글씨로 ‘마케팅용 정보 제공’이라고 고지했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이 났다. 유죄였어도 법인의 책임은 벌금 1,500만원이 고작이다. 손해배상 소송을 낸 1,000여명이 이겨도 법원의 개인정보 유출 위자료 기준은 겨우 10만원으로 총 1억원에 불과해 홈플러스는 불법 수익으로 약 227억원을 버는 셈이다. 박지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소비자정의센터 간사는 “보험사의 입맛에 맞게 먼저 ‘원하는 고객정보를 주겠다’고까지 한 홈플러스의 불법행위를 멈출 유인이 없는 셈”이라며 “기업의 과잉 부당이득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2013년 고객 정보 1억여건 유출사고를 낸 카드사 3곳은 15일 벌금 1,000만~1,500만원(2회 유출로 가중)을 선고 받았다. 법인의 ‘관리 소홀’책임에 법정 최고형이 벌금 1,000만원밖에 되지 않았다. 정부가 부과하는 과징금, 벌금, 법원의 위자료 산정 등이 모두 소비자 안전과 비교해서는 너무 소액이라 기업의 불법행위를 저지하는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징벌적 손배제는 확실한 제재 효과를 낳는다. 도요타는 2013년 10월 미 오클라호마주에서 캠리차 급발진 사고 손해배상 소송에서 배심원단이 300만달러 배상 평결을 내리고 징벌적 손배를 산정하려 하자 당일 피해자들과 338건의 소송 합의를 봤다. 이듬해 미 법무부는 급발진 은폐를 문제 삼아 벌금 12억달러(1조3,000억원)를 부과했다. 도요타는 1,200만대 리콜 비용까지 40억달러(4조7,000억원)를 넘게 쓴 것으로 추산됐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기업이 소비자의 생명과 안전을 경시했다간 폐업 위기를 감수해야 한다는 점을 실감할 정도가 돼야 소비자 보호의 실효성이 있다”고 말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mailto: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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