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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미의 엄마도 처음이야] <16> "방학이다. 미치겠다" 워킹맘의 절규

engine 입력 2016. 07. 23. 16:04 수정 2016. 07. 23.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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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방학이다. 미치겠다.”

연애의 설렘 같았던 방학이 거무튀튀한 단어로 바뀐 건 엄마가 되면서부터였다. 가족 중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못한 채 ‘독립군 육아’를 하는 워킹맘에게 아이의 방학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서러움과 죄책감이 폭발하는 시기다.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 대신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있지만 주변에는 어린이집과 베이비시터를 연계한 아슬아슬한 육아를 하는 엄마들이 많다. 어린이집이 쉬거나 아이의 퇴원을 담당한 베이비시터에게 갑자기 일이 생기면 엄마는 꼼짝없이 휴가를 내야 한다. 촘촘하게 엮어놓은 육아의 고리 중 하나가 무너질까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아이가 낯을 가리는데 어쩌죠. 어린이집 방학 때 누구한데 맡겨야 할지 난감하네요.” “애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방학에 당직 근무를 하지 않고 통째로 쉰다네요.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처지인데 미치겠어요.”

여름방학을 앞둔 아이들이 직접 그린 생활계획표를 들고 있다. 학원 ‘뺑뺑이’를 돌리거나 아이를 집에 혼자 둬야 하는 부모에게 방학은 근심·걱정의 나날이 아닐 수 없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주변 엄마들의 성토에 함께 한숨이 나왔다. 우리 애도 몇 년 뒤에는 할머니 품을 떠나 어린이집에 적응을 해야 한다. 어른의 보살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의 아이들이 여러 사람을 전전해야 하다니. 마음이 아린다.

초등학교 입학으로 상황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진정으로 무시무시한 방학은 초등학교의 방학이 아닐까 싶다. 아이가 어릴수록 부모가 전전긍긍하며 어찌하든 방편을 마련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는 조금 자랐다는 이유로 집에 혼자 있는 아이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돌봄교실이나 방과 후 수업이 있긴 해도 학기 때보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은 짧은 편이다. 단기 방학에는 이마저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곳이 많다.

가스·전기 사용에 서투른 아이들의 ‘나홀로 집에’는 화재를 부르는 위험천만한 상황일 수 있다. 게티이미지 제공
2010년 경남 마산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불이 나 6살 쌍둥이 형제가 사망했다. 홀로 두 아이를 키웠던 엄마는 학령기 이전의 어린 아이들을 두고 근처 식당에서 일을 하다가 참극을 맞았다. 지난해에는 평택에서 9살 남자아이가 혼자 집에 있다가 화재로 숨을 거뒀다. 가스, 전기 사용에 서투른 어린이들의 독거는 사망으로 연결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정서적으로도 아이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겨울, 집에 혼자 있어야 했다. 부모님은 집 근처에 있던 사진관을 서울 도봉구 방학동으로 이전했다. 나는 외동딸이었다. (동생은 중학교 3학년 때 태어났다.) 친정 엄마는 아침마다 어두운 표정으로 현관을 나섰다. “밥 꼭 챙겨먹어” 당부도 잊지 않았다. 미안함과 걱정이 뒤범벅된 마음이었으리라. 엄마에게 나의 겨울 방학은 끔찍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초등 5학년 때 나는 ‘인생의 친구’를 만났다. 이제는 23년지기 친구인 B는 우리 집에 매일 놀러왔다. B를 만나기 전까지 내게 친구란 함께 놀 수 있는 대상에 불과했다. 매년 친한 친구가 바뀌었고 전학 등으로 헤어질 때도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방학 때 집에 홀로 있는 대신 사회복지시설에 나오게 된 아이들이 책을 보거나 TV 앞에 모여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B는 12살임에도 요리를 할 줄 알았고 노래를 잘 불렀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며 함께 따라불렀다. 눈이 올 때면 동네를 깡총깡총 뛰어다녔다. B는 내가 처음으로 연대 의식을 느낀 친구였다. 혼자 있었던 나와, 그만한 사정이 있던 B는 서로의 결핍을 감싸주고 있었다. 이후 진학하는 학교가 달라져도, 사는 곳이 멀어져도 소식을 주고 받았다. B 덕분에 ‘나홀로’ 겨울은 내게 보물단지 같은 추억으로 남았다.

그러나 이건 순전히 운이었다. B가 없었다면 그 해 겨울방학은 어땠을까. 집안의 온갖 불을 다 켜놓고 무서워하며 이제나저제나 엄마의 퇴근을 기다리거나, 부모님의 작은 사진관에서 의자에 앉아 면벽수행을 했을 것이다. 또한 우정이 아닌 외로움, 불안함, 무료함, 삶의 냉혹함이 내면에 일찌감치 비집고 들어왔을 것이다. 혼자 있는 아이에게는 어딘가 결핍이 생기기 쉽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 6∼12세 아동 중 11%가 부모의 맞벌이 때문에 일주일에 10시간 이상 혼자 지낸다. 방학을 학력 증진의 기회로 삼는 고소득층과 그렇지 못한 저소득층의 격차가 쌓이면 초등 5학년 무렵부터 두 집단의 학력이 3년 정도 벌어진다는 통계도 있다. NYT는 “신나는 방학, 학교 밖으로 나가 더 큰 배움을 실천하는 방학은 점점 더 한정된 계층에만 허용된 값비싼 소비재가 됐다”며 “일하는 학부모를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는 사회와 정부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굳이 미국의 사례를 언급한 건 국내에서 이 같은 통계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태 파악은 해법 마련의 첫 걸음인데 혼자 지내는 아이들에 대한 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아동 방임에 대한 두 나라의 문제 의식에서 비롯된 상황이었다. 2014년 미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9살 아이를 공원에 혼자 두고 일하러 간 엄마가 아동학대 혐의로 체포됐다. 우리나라였다면 아이의 부모를 찾아주는 것으로 마무리됐을 것이다.

어린이집 방학 때마다 미치겠다는 엄마들, 미래의 내 모습이 될 그런 엄마들이 마음 편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올까. 사회의 도움이 있긴 해도 관리 감독이 허술하거나 특정 단체의 선의에 기대는 등 주먹구구식인 경우가 많다. 어린이집의 당직 근무와 초등학교의 돌봄 교실 운영만 해도 정부 지침을 따르지 않는 곳이 여전히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이제는 아이들의 방학이 무섭다.

국제부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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