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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미의 엄마도 처음이야] <17> '차 안에 소중한 내 새끼 있다' 갈등 조장하는 스티커 문화

engine 입력 2016. 07. 30. 14:31 수정 2016. 07. 30.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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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스티커에 대해 육아일기에 꼭 썼으면 좋겠어.”

남편은 지난 4월부터 시작한 이 연재에 ‘아기가 타고 있어요’의 문제점을 꼭 좀 언급하라며 채근했다. 운전할 때마다 너무 거슬린다는 것이었다. “그게 왜? 남들이 자기 자동차에 붙인 건데 뭐가 문제야?” 의아할 따름이었다.

“‘차 안에 소중한 내 새끼 있다’, ‘미래의 판검사가 타고 있다’ 같은 말은 그 자체로 거슬리는데 그런 차일수록 난폭하게 운전하는 걸 많이 봤다.”

자동차 스티커에 대한 남편의 감정은 혐오에 가까웠다. “남의 배려를 요구하면 자신도 그만큼 최선을 다해야지, 자기는 깜박이도 안 넣고 끼어들면서 남에게만 양보하라는 건 너∼무 이기적인 거 아냐?”

‘웃기다’ vs ‘짜증난다’ 상반된 반응을 일으키며 논란이 된 차량 스티커들.
듣고 보니 그럴 듯 싶었다. 내게는 차량 스티커가 아기의 탄생을 기념하는 장식물로만 보였다. 이를 차주의 메시지로 여긴 남편에게 ‘소중한 내 새끼를 위해 안전운전 해달라’는 사람의 난폭 운전은 이기심의 전형으로 보였던 것이다.

출산 후 내게도 그런 스티커를 붙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아이 물건이 하나둘 집안에 쌓이고 아기 사진이 늘어날 때의 흐뭇함을 또 다른 공간에서 느끼고 싶었다.

“절대 안 돼. 내가 타는 차에는 절대로 안 돼.”

신랑의 강경한 반응에 제대로 말도 못 꺼냈고, 펄쩍 뛰는 배우자를 보며 차량 스티커 문화에도 관심이 생겼다.

장식물 기능 외에 차량 스티커의 쓰임새는 무엇일까.

남편의 말처럼 주행 중 다른 차량의 배려를 요구하는 기능과, 큰 사고가 났을 때 아기가 타고 있으니 차량 안을 꼼꼼히 살펴달라는 기능이 있었다. 아기를 먼저 구해 돌봐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 현재 관행으로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대부분의 차량이 뒷유리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큰 사고 때 유리가 깨지면 스티커도 조각조각 허공으로 사라지게 된다. 차량 앞 보닛이나 뒷범퍼에 부착해야 기능을 살릴 수 있다.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네티즌들은 캐나다 혹은 미국에서 차량이 반파되는 사고가 났는데 구석에 미끄러져 눈에 띄지 않았던 아기가 폐차장에서 죽은 채 발견된 사건 이후 스티커 부착 문화가 생겼다고 했다. 반면 지난해 방영된 KBS ‘위기탈출 넘버원’에서는 “미국의 한 유아용품 회사에서 마케팅 차원에서 만들어 대히트를 한 아이디어 상품”이라고 했다.

‘아기가 타고 있어요(Baby on board)’ 차량 스티커는 1984년 유아용품 회사 ‘세이프티 퍼스트(Safety 1st)’의 창립자 마이클 러너가 고안해 히트한 상품으로 이후 전 세계에 퍼졌다. 게티이미지 제공
나는 ‘외신 찾기’에 나섰다. 무엇이 사실일까. 위키피디아와 영국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아기가 타고 있어요’(Baby on board) 등 아기 스티커는 1984년 유아용품 회사 ‘세이프티 퍼스트(Safety 1st)’의 창립자 마이클 러너가 고안해 히트한 상품이었다. 2000년 캐나다 어린이용품사인 도렐 인더스트리(Dorel Industries)가 세이프티 퍼스트를 인수하면서 “캐나다에서∼ 미국에서∼ 사고난 이후”라며 사고 장소에 대한 설이 분분해졌다. 어쨌든 실제 사고가 아닌 마케팅 차원에서 시작된 유행이 맞았다.

자동차 안전에 관심이 생기면서 “스티커 따위보다 카시트 장착에 더 신경써야 한다”고 했던 남편의 비판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스티커를 붙이지 않아도 차량 안에 카시트가 있으면 아기의 탑승 여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스티커는 사고 당시 아기를 전혀 보호해주지 않지만 카시트는 생명과 직결된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아이가 카시트에 탔을 경우 머리에 중상을 입을 가능성은 5%, 그러지 않은 경우는 98%로 어마어마한 차이가 났다.

하지만 국내 카시트 장착률은 너무나 저조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따르면 회원국의 카시트 사용률은 독일 96%, 영국 95%, 스웨덴 95%, 프랑스 91%, 미국 74% 등으로 한국은 30%에 불과했다. 영유아, 아동의 70%가 무방비한 상태로 차량에 타는 것이다. 2006년 개정된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만 6세 미만 어린이는 무조건 카시트에 탑승해야 하고 이를 어기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단속이 이뤄지지 않으니 무용지물이다.

‘몇십만원에 이르는 카시트 비용이 부담스러운 가정은 어쩌냐’고 따져물을 수 있다. 이 경우를 대비해 현재 교통안전공단에서는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카시트 무상보급 사업을 하고 있다.

안전을 목적으로 한 차량 스티커는 뒷범퍼나 앞 보닛에 붙여야 유리가 파손되는 사고 때도 눈에 띌 수 있다.
스티커의 의미를 살리려면 이걸 ‘모범 운전수의 배지’로 여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가 타고 있을 때나 아닐 때나 말이다. 특히 ‘내 새끼 다치면 알지? 건들면 개’, ‘당황하면 후진해요’, ‘뭘 봐?’ 등 일부에게 웃음을, 다른 이들에게 불쾌감을 유발하는 스티커를 붙였다면 더욱 안전에 신경써야 한다. 이런 스티커를 내보이며 난폭 운전하는 사람으로 인해 배려 문화는 난망해진다. 스티커 부착보다 더 신경써야 하는 건 당연히 카시트 장착이다.

안전에 도움되는 진짜 조치보다 멋부리기에 치중하고, 나의 조심보다 남의 조심을 요구하는 이기적 행태로 국내의 차량 스티커 문화는 배려보다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이래도 차에 스티커 붙일래?” 남편의 물음에 나의 대답은 “아니”가 됐다. 나는 집-회사를 오가는 길을 벗어나면 엄청나게 헤맨다. 베테랑 운전자가 되었을 때 주장해보리라, 다짐했다.

국제부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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