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아이들 꿈에 직업이 빠져도 좋다

2016. 8. 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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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얼마 전 상담을 받던 중학교 2학년 아이에게 꿈을 물었다. 아이는 꿈이 없다고 했다. 기록을 보니,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이의 꿈은 과학자였다. “너 어릴 때는 꿈이 과학자였잖아. 왜 꿈이 없어졌어?”라고 했더니, 아이는 “저, 공부 못해요. 성적이 너무 나빠요”라고 대답했다. 많은 아이가 이렇다.

다수의 아이가 꿈 때문에 무기력하다. 나는 이런 아이들에게 “꿈은 직업이 아니다”라고 조언한다. 꿈을 직업으로 여기면 너무 일찍 한계에 부딪힌다. 아이들이 꿈이라고 말하는 소위 좋은 직업은 대부분 공부를 아주 잘해야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직업은 아이는 너무 하고 싶지만, 부모가 “너 그거 해서는 제대로 먹고살지도 못해”라고 겁을 준다. 얼마 전 한 설문조사에서 요즘 아이들의 장래희망으로 떠오르는 직업 하나가 건물 임대업자라는 말을 들었다. 건물 임대업자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무궁무진한 꿈을 꿀 수 있는 나이에, 아이들이 너무나 경제적으로 안정된 것만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직업은 꿈이 아니다. 아이에게 ‘꿈 혹은 장래희망’을 물으면서 ‘직업’을 답하라고 해서는 안 된다. 지금 미래의 직업을 결정하라는 것은 꿈을 꾸지 말라는 소리나 다름이 없다. 게다가 아이가 자라서 본격적으로 일하게 될 20년 후에는 지금의 직업도 절반은 더 사라질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직업을 꿈으로 갖게 하지 말았으면 한다. 아이의 꿈이 궁금하다면, 아이들조차 이미 꿈을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으므로, “네가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할 것 같으니?” 내지는 “네가 어떤 일을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으니?”라고 물어줬으면 좋겠다.

나는 꿈이 없다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사람이 꼭 뭔가 대단한 인물이 돼야 하는 것은 아니야. 누구나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이 될 필요는 없어. 그들은 5000년에 한두 명 나올까 말까 한 사람이야. 꿈이라는 것은 내가 보람 있고, 가치 있다고 느끼는 일, 그 일이 속한 영역 정도까지만 생각해 두면 되는 거야. 특정 직업을 정해야 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자신이 잘하고 재미있어 하는 일을 찾아보게 한다. 잘하는 것, 재미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아이도 있다. 이때는 사소한 것부터 생각해 보게 한다. 인사를 잘하는 것, 친구와 잘 노는 것, 만화책을 읽는 것도 다 잘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없다. 스스로 잘한다고 느끼지 못하거나 주위에서 발견을 못 하는 것뿐이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을 재미있어 하는 아이에게는 ‘끌어주고 지도하는 영역’이 맞을 수 있다. 그 안에 존재할 수 있는 직업은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블록을 조립해서 완성한 후 굉장히 뿌듯해하는 아이에게는 ‘무언가를 혼자 차곡차곡 완성하는 영역’이 적당할 수 있다. 아이가 자신에게 맞는 꿈을 잘 찾아가도록 돕기 위해서는 부모 또한 어릴 때부터 아이의 특징을 잘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들도 매일매일이 힘들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것도, 놀고 싶어도 참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밀린 숙제를 하는 것도, 친구 사이에서 살아남는 것도, 끊임없이 잔소리를 듣는 것도 무척 힘들다. 이 힘듦을 잘 버티기 위해서는 꿈이 있어야 한다. 꿈은 인생의 나침반과 등대다.

아이가 꿈을 찾는 것을 도울 때는 반드시 과녁의 정중앙에 자신을 두게 해야 한다. ‘나는 어떤 장단점이 있는가’ ‘어떤 일을 할 때 비교적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가’ ‘어떤 일은 유독 좀 싫고 힘들어하는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꿈을 찾는 과정은 나를 파악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에 대한 이해가 끝났다면 이타적인 것을 좀 고려해야 한다. 나와 친한 사람, 가까운 사람에게는 내가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내가 속한 이웃 내지는 사회, 국가,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본다. 꿈에는 이타적인 면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강해진다. 나 혼자 잘 먹고 잘살자는 것만으로는 꿈을 이뤄가는 어려운 과정을 견뎌내기가 어렵다. 기여란 엄청난 것이 아니다. 음식점을 하면서 좋은 식재료를 써서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는 것도 기여다.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아이는 세상을 원대하게 바라보며 자기 자신을 발달시켜 나가게 된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꿈이란 것은 늘 우회의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부모들도 지금의 삶이 100% 만족스럽진 않아도 유사한 일을 하면서 보람과 행복을 느끼고 살고 있지 않은가? 꿈은 인생에서 그런 것이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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