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니 비로소 행복했다"..우리는 '미니멀리스트'

양은하 기자 입력 2016. 8. 6.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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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있는 황윤정씨의 거실.(황윤정씨 제공).© News1

(서울=뉴스1) 양은하 기자 = 손가락만 까딱하면 하루 만에 물건이 집 앞에 도착하는 데도 실시간으로 택배 위치를 확인한다. 새 제품을 사면 개봉하는 동영상(언박싱)을 찍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리고 남이 올린 언박싱 동영상을 즐겨본다. 필요한 물건이 없어도 있을지 모른다며 쇼핑에 나선다.

물건에 인생을 저당 잡힌 듯 끊임없이 물건 구매에 열을 올리는 사회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최소한만 소유하며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미니멀리스트'(minimalist)로 불리는 이들은 필요 없는 것은 버리고 남아 있는 것에 집중하는 삶을 지향한다. "적게 소유했더니 더 풍요로웠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말이다.

◇'냉파·미니멀리즘 게임·노쇼핑프로젝트'를 아시나요

황윤정씨(47·여)는 2년전 도서관에서 우연히 읽게 된 '심플하게 산다'(저자 도미니크 로로)는 책에 반해 미니멀리즘을 시작했다. 자녀 셋까지 다섯 식구인 그는 "퇴근하고 오면 쌓여 있는 집안일 때문에 제2의 직장에 가는 느낌"이라며 "심플하게 살면 일이 줄어든대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일단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 미니멀리스트들 사이에서 유명한 '미니멀리즘 게임'에 들어갔다. 이 게임은 물건 개수를 날짜에 맞춰 버리는 것인데 매달 1일에는 물건 1개, 10일에는 10개를 버리는 식이다. 버리는 데도 규칙은 있다. '대체할 물건이 있는가', '이 물건이 내 인생에 가치를 주는가', '이 물건이 없다면 다시 살 것인가'를 스스로 물어보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황씨는 평소 잘 사용하지 않던 식탁, 거실장, 서랍장, 선반, 어항, 화분, 크기별로 있던 냄비, 여러 개인 칼, 주걱 등 각종 주방 도구들, 입지 않는 옷들을 중고로 팔거나 기부했다. 이렇게 3개월 동안 총 1500여개 물건을 버렸다.

5년차 직장인인 배모씨(32·여)는 황씨에 비하면 초보 미니멀리스트다. 배씨는 "예전에는 프라이팬 하나로 다 했던 요리를 지금은 계란 후라이용, 생선 굽는 용, 고기 굽는 용, 샌드위치 만드는 프라이팬까지 있다"며 "더 전문적인 요리를 할 수 있다는 말에 홀려 물건이 물건 사이를 계속 비집고 들어오는 걸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눈물을 머금고" 주방용품들을 정리했다.

물건을 버리면서 이들에게 생긴 변화는 여유가 생겼다고 점이다. 황씨는 "물건이 없으니 청소도 수월해지고 저녁 준비 시간도 줄어 여유가 생겼다"며 "남는 시간에 글을 쓰면서 이번에 책도 내게 됐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밥하고 청소만 했다면 평생 몰랐을 재미와 기회"라며 웃었다. 황씨는 네이버 카페 '미니멀 라이프' 운영자로 회원만 2만7000명이 넘는다.

일정 기간 식재료를 따로 사지 않고 냉장고 안에 묵혀둔 재료로만 요리해서 모두 처리하는 '냉장고 파먹기'(냉파)까지 마친 황씨는 요즘 '노쇼핑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식재료와 생필품 등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구입하지 않는 게 목표다. 황씨는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환경이나 동물복지로 관심이 넓어지고 있다"며 "이렇게까지 될 줄은 나도 몰랐다"고 말했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사사키 후미오씨 원룸(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캡처).© News1

◇"사회·환경 고려한 반성없이는 '미니멀라이프'도 과시문화"

미국과 일본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미니멀리즘'(minimalism)은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에서 열풍이라 할 만큼 유행이다. 관련 서적들이 줄지어 출간되고 연예인 등 유명인이 자신을 '미니멀리스트'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계속되는 경제 침체로 만들어진 생활방식이라고 분석한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는 "과거에는 규모의 소비로 차별화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아니다"며 "최소의 소비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으로 텅 빈, 미학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적 요인 외에도 문화적 가치 변화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짚었다. 그는 "과거 미국과 유럽처럼 대량 소비와 지나친 소비주의에 대한 비판 의식이 생기면서 이에 대한 반성으로 미니멀리즘 같은 대안적인 생활방식에 관심이 생긴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환경 운동, 대안학교, 귀농, 공유경제, 공동 양육, 셰어하우스, 협동조합 등 사회 일각에서 작지만 변화가 생기고 있고, 미니멀리즘도 이같은 흐름의 하나라는 것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미니멀리즘이 또 하나의 과시 문화에서 그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우리 사회는 여전히 소비주의 문화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경제적 동기에서 그친다면 이같은 흐름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며 "깊이가 생기고 운동이 확산되려면 사회나 환경 전체를 바라보는 의식이 함께 커져야 한다"고 말했다.

letit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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