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바지 차림에 영어 이름.. 직원이 회의에 사장 호출

최형석 기자 2016. 8. 2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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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본인가 앞둔 인터넷전문은행의 자유분방한 조직 문화] 회의 탁자는 탁구대 겸용.. 곳곳에 놓인 1인용 쇼파서 휴식 기존 은행들의 딱딱한 위계질서 규범화된 업무 스타일과 정반대 자유로운 소통 막는 건 금물.. 직급 호칭 없애고 결정은 투표로

지난달 초 경기도 성남시 판교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를 찾은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사무실에서 킥보드를 타고 이동하는 직원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킥보드는 이곳에서 재미와 편의성을 고려한 이동 수단이었다. 임 위원장은 "자유로운 조직 문화 속에서 혁신적인 결과가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점에서 열린 인터넷전문은행 태스크포스(TF) 회의에 인터넷전문은행 간부들은 반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나타났다. 보수적인 문화의 한은에서 단연 눈에 띄는 복장이었다. 회의에 참석한 한은 관계자는 "자유분방한 차림새만큼이나 창의적인 생각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인터넷전문은행이란 오프라인 점포 없이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금융 거래를 하는 온라인 은행을 말한다. 은행 창구를 방문하지 않고도 대출, 적금, 신규 상품 등에 가입할 수 있고, 24시간 이용이 가능하다. KT·우리은행 등이 주주로 참여한 'K뱅크'와 카카오·한국투자금융지주·KB국민은행 등이 출자한 '카카오뱅크'가 작년 11월 예비인가를 받고 연말 본인가를 앞두고 있다.

이 인터넷전문은행의 조직 문화가 기성 금융권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오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의 수평적인 조직 문화와 자유로운 업무 스타일은 기존 은행들의 딱딱한 위계질서 및 규범화된 업무 방식과는 정반대다. 이는 수평적인 조직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IT(정보통신기술) 기업 문화가 접목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인터넷전문은행에 근무하는 IT 관련 인력 비중은 40% 안팎으로 시중은행(4%)과 비교했을 때 월등히 높다.

◇사장도 직원이 호출하는 회의 참석해야

K뱅크는 평사원이 온·오프라인 회의를 소집하면 대표를 포함한 임원들도 참석해야 한다. 아이디어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공유하자는 취지에서다. 안효조 K뱅크 대표는 "창의적으로 일하자는 사람들이 모인 조직에서 오랜 학습과 지식만이 정답은 아닐 수 있다"며 "변화가 빠른 조직에선 젊은 직원의 의견이 더 맞을 수 있기 때문에 열린 소통 구조를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카카오뱅크에서 전 직원은 직급이 아닌 영어 이름으로 불린다. 이용우·윤호영 공동대표의 호칭도 각각 얀과 대니얼이다. 직원 호칭에 직급·직책이 더해지면 잠재적으로 위계질서를 떠올리고 자유로운 소통을 막는다는 이유에서다.

인터넷전문은행에선 놀이와 일이 혼합된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본다. 회의 탁자는 탁구대를 겸하고 있고, 사무실 곳곳엔 일인용 간이 소파가 놓여 있어 직원들이 피곤하면 눈을 붙이거나 편하게 일하기도 한다.

무겁지 않은 사내 분위기에서 직원들은 스스럼없이 의견을 개진하고 결정에도 즉각 반영된다. 지난달 중순 K뱅크 전 직원 정례회의에서 한 직원이 "날이 더우니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출근하면 어떨까"하고 건의하자 즉석에서 표결이 진행돼 5분 만에 그렇게 하는 걸로 결정 났다.

현 시중은행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 성과연봉제도 인터넷은행에선 별 무리 없이 정착하는 분위기다. 인터넷은행 관계자는 "대부분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데다 생각도 젊은 만큼 성과연봉제에 대해 별 반감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규모 커질 경우 관료 문화 등장할 수도

시중은행에선 와이셔츠 색깔까지 내규로 제한을 받는다. 이와는 달리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출근할 수 있는 인터넷은행의 직장 문화가 젊은 층으로부터 특히 호응을 얻고 있다. 자율성을 부여받으며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근무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이에 따라 안정적인 직장을 뒤로하고 인터넷은행으로 옮겨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미 지난 3월 KB국민·우리은행에서 인터넷전문은행 이직을 행내 공모한 결과 10대1 안팎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다만 일각에선 인터넷은행도 규모가 커지면 기존 은행들처럼 관료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K뱅크는 현재 90여명인 직원 수를 내년 초 20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인터넷전문은행이 스타트업(start-up) 수준을 벗어나면 위험을 회피하는 성향이 강해지면서 보수적인 문화로 돌아설 우려도 크다"며 "끊임없이 여러 산업과의 이종(異種)교배를 통해 다양한 수익모델·사고방식을 유지하는 혁신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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