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떡' 아빠 육아휴직..이직·교육 등 편법 활용도 기승

김기덕 2016. 8. 28.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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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육아휴직자 늘었지만 100명 중 7명만이 남성 근로자중소기업 대체인력 없고, 승진 등 불이익 우려로 사용 어려워이직·휴가 대체로 사용해 제도 취지 무색 "법적으로 보장해야"

[이데일리 김기덕 이지현 기자] 경기도 성남에 있는 석유화학제품 공급업체 과장인 A씨(남·38)는 지난달 육아휴직을 냈다. 남직원 중 처음으로 육아휴직을 쓰는 A씨를 바라보는 회사내 시선은 곱지 않았다. A씨 상사는 “빈 자리를 누군가 채울 수 있다는 각오를 하고 가라”고 윽박질렀다.

A씨도 어차피 육아휴직기간 동안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할 생각이어서 개의치 않았다. A씨는 시험에 합격하면 바로 직장에 사표를 낼 생각이다.

정부가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지원금 상향조정을 골자로 한 남성 육아휴직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그러나 남성 육아휴직에 부정적인 기업문화가 해소되지 않는 한 늘어난 지원금 또한 그림의 떡이라는 게 직장인들의 공통된 불만이다. 기업문화 개선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빠의 달’ 제도는 정부가 남성의 육아휴직 활성화를 위해 지난 2014년 11월 도입했다. 맞벌이 부부가 동일 자녀에 대해 차례로 육아휴직을 사용할 경우 두번째 휴직자에게 3개월간 육아 휴직급여를 최대 월 150만원을 지급한다. 내년 7월부터는 둘째 자녀에 한해 ‘아빠의 달’ 육아휴직 급여 상한액이 월 200만원으로 오른다.

특히 남성 육아휴직은 공공기관이나 공무원 비중이 절대 다수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종사자들을 위한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일부 남성 근로자들이 이직을 준비하는데 있어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 제도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남성 육아휴직 100명 중 7명

올 상반기 국내 남성 육아휴직자는 3353명이다. 정부는 지난해 보다 남성 휴직자가 50% 늘어나자 ‘이제는 아빠 육아휴직이 대세가 됐다’고 선전하고 있다. 전체 육아휴직자(4만 5217명) 중 7.4% 다. 전체 육아휴직자 100명 중 93명은 여성이라는 얘기다.

지난해 기준 남성 육아 휴직자는 모두 4872명으로 전체 육아 휴직자(8만 7339명)의 5.6%다. 해마다 남성 육아 휴직자는 △2011년 1402명(2.4%) △2012년 1790명(2.8%) △2013년 2293명(3.3%) △2014년 3421명(4.5%) 등 그 비중이 늘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독일(32%), 노르웨이(21%) 등 선진국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맞벌이 부부인 김현준(가명·37)씨는 “내년부터 아빠 육아휴직자에게 돈을 50만원 더 준다고 해도 아내가 버는 돈으로 집세에 육아비용을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면서, “대기업에서는 대체인력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중소기업에서는 육아휴직을 쓰면 다른 사람에게 업무가 그대로 전가돼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고 푸념했다.

공기업에 다니는 윤재명(가명·36)씨는 “육아휴직을 쓰는 직장 동료들은 자신의 커리어보다 가족, 자식과의 삶을 택한 것으로 평가돼 실제 승진 등 인사고과에 마이너스로 작용한다”며 “아빠 육아휴직에 대한 부정적인 직장 내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50만원을 더 준다고 해서 갑자기 휴직자가 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육아휴직=부정수급’ 제도 악용

현행 남녀고용평등법상 회사가 정당한 사유없이 육아휴직을 거부할 때는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 등 소규뮤 사업장에서는 대체인력의 부재, 회사의 부당 처우 등을 이유로 근로자가 휴직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문에 남성 휴가 휴직 역시 대부분 공공기관에 종사하는 근로자나 대기업 등에 국한돼 있다.

고용노동부 여성고용정책과 관계자는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을 구분해 육아휴직자를 따로 집계하지는 않아 공공기관의 정확한 남성 휴직자 비중은 알 수 없다”며 “다만 공공기관은 정부 산하 기관이고 규모가 큰 사업장이 많다보니 중소기업 보다는 남성휴직 참여률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일부 남성 근로자들은 직장 이직이나 공부 등 개인적인 목적으로 육아휴직을 내는 사례도 늘고 있다. 육아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부정수급이다.

3개월 전 육아휴직을 낸 김기명(가명·39)씨는 “장모님이 아이를 맡아주신다고 해서 육아휴직계를 내고 현재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육아휴직기간 동안 일부 급여도 들어오고 나중에 퇴직금을 받을 생각을 하면 (휴직을 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양미선 육아정책연구소 박사는 “남성 육아휴직 급여가 늘었다지만 아직까지 민간기업에서 승진 등 각종 불이익이 크기 때문에 최근 이직 준비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스웨덴 , 덴마크 등 북유럽국가와 같이 남성 육아휴직을 권고 차원이 아닌 법적으로 강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내년 7월부터 둘째 자녀에 한해 ‘아빠의 달’ 휴직급여 상한액을 현행 월 15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올려주기로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중소기업 등 민간기업에서 직장 내 불이익 등을 이유로 실제 휴직에 나서는 근로자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사진=연합뉴스)

김기덕 (kidu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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