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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숨이 안 쉬어져, 도와줘"..가습기 살균제에 두 번 죽을 뻔한 동현이

안종주 환경보건시민센터 운영위원(<빼앗긴 숨> 저자) 입력 2016. 09. 03. 18:20 수정 2016. 09. 0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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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06년 가습기 살균제로 폐가 망가진 동현이(당시 2살)가 기흉 수술을 받기 전 콧줄을 끼고 입원해 있는 사진(위 왼쪽)과 수술을 받은 후 숨쉬기 편해져 웃고 있는 사진(위 오른쪽). 위 오른쪽→왼쪽 사진은 의 표지와 가습기 피해를 상징하는 걸개그림으로 쓰였다. /박기용 제공(위) 지난 8월 31일 가습기살균제 참사 발생 5주년을 맞아 서울시민청에서 열린 피해자추모 퍼포먼스에 참가한 박기용(노란조끼) 씨가 아들 동현이 모습이 담긴 대형걸개그림 위에 앉아 피해자 추모를 하고 있다.(아래) /안종주 제공

그날 서울에는 여름의 마지막을 재촉하는 비가 제법 왔다. 바람도 거세게 불었다. 광화문 네거리 세월호 농성장 천막도 비바람에 펄럭였다. 이날은 대한민국 최악의 환경 참사로 자리매김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만 5년 되는 8월 31일이었다. 오후 1시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 환경보건시민센터 주최로 열리는 <빼앗긴 숨> 책 출판 기념과 참사 5주년을 기리는 촛불퍼포먼스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박기용씨(45)는 가습기 살균제로 하마터면 두 아이를 잃었을 뻔한, 그래도 운이 좋은 아버지였다. 지금은 어느덧 초등학교 6학년이 된 동현이가 두 살 때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박씨 부부는 국내 굴지의 한 반도체 회사에서 함께 일했다. 2004년 첫 아이를 얻었다. 아들이었다. 맞벌이 부부여서 동현이는 장모님이 주로 키웠다. 갓난아이가 있던 여느 집처럼 가습기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당시 가장 인기가 있던 옥시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사다주었다. 자그마한 플라스틱 용기 밑부분을 누르면 가습기 살균액이 위쪽 뚜껑 부분으로 10㎖만큼만 올라가 이를 가습기 물통에 붓는 방식의 독특한 가습기 살균제 제품이었다. 그가 옥시 제품을 썼다는 것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병원에 조금만 늦었어도 생명 잃을 뻔 2006년 봄부터 아이가 잦은 기침을 하고 제대로 먹지 못했다. 마침내 호흡곤란까지 왔다. 부천에 있는 순천향대학병원에 갔다. 병원 의료진은 치료가 힘들다는 청천벽력의 이야기를 했다. 잠시 정신줄을 놓은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아이를 살려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회사 사장님의 도움으로 서울아산병원으로 아이를 데려갔다. 소아청소년과 홍수종 교수를 만났다. 아이의 혈관은 좁아질 대로 좁아져 있어 주사를 놓기 위해 혈관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아이는 그때마다 고통에 몸부림쳤다. 스테로이드 치료도 받았다. 그와 동현이는 정말 운이 좋았다. 일주일이나 열흘만 늦게 왔어도 그는 비극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아들을 살려내지 못한 못난 아빠를 자책하며 방황하고 있었을 것이다. 동현이의 폐는 이미 기흉이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기흉이란 폐에 구멍이 생겨 공기가 새고 이로 인해 늑막강 내에 공기가 차는 것을 말한다. 흉강 안으로 공기가 유입만 되고 배출이 안 될 경우 양쪽 폐와 심장 사이의 공간과 심장이 한쪽으로 쏠려서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심각한 증상이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어 퀭한 눈동자로 아버지를 바라보던 아이의 눈이 수술 후 맑디맑은 눈으로 다시 돌아왔다. 박씨는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의료진에게 영원히 고마움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지금 동현이는 보통아이와 별반 다르지 않게 학교를 잘 다니고 있다. 물론 다른 아이들처럼 마음껏 뜀박질을 하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아이는 운 좋게 생명을 건졌지만 원인은 홍수종 교수도 알아내지 못했다. 2006년 매스컴 등에서 앞다퉈 새집증후군 문제를 다루었다. 그는 최근 리모델링을 한 아파트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까지 했다.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홍 교수도 환경요인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극적으로 살아난 동현이가 문제없이 계속 부모 곁에서 함께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어 박씨 부부는 아이 하나만을 키우기로 한 애초 계획과 달리 아이를 하나 더 갖기로 했다. 그리고 2007년 3월 어여쁜 딸 다현이가 태어났다.

가습기 살균제가 세균뿐만 아니라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살인제라는 사실을 아직 세상이 몰랐기 때문에 다현이를 가진 아내는 임신 말기인 2006년 말부터 또다시 가습기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다현이는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폐렴 증상이 왔다. 아내는 임신 중 살균제에 이미 노출됐다. 동현이와 함께 지냈던 장모도 노출됐다.

박씨는 가장 심각한 증상을 겪었던 동현이를 2차 정부 조사, 즉 환경부 조사 때인 2014년 피해신고해 2015년 1단계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다현이는 3차 신청 때 피해신고를 했으나 지난 8월 3단계 판정을 받았다. 폐활량이 정상 어린이보다 약간 떨어지는 것 외에는 뚜렷한 피해 증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아내와 장모는 3차 피해신고를 하고 현재 판정 대기 중이다.

박씨는 동현이가 죽음의 고비를 넘긴 것을 계기로 대한민국 최고 대우의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2008년부터 렌터카 영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아이가 정상적인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열정을 쏟아부었다. 아이를 데리고 자연휴양림을 종종 찾아가기도 하고 바다에서 나오는 음이온이 좋다고 주변에서 이야기해 부지런히 바다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폐에 좋은 음식이 어떤 것인지 인터넷을 뒤져 정보를 찾아낸 뒤 음식을 해주거나 사주었다.

아이 건강 회복 위해 직장까지 포기 이제 웬만한 일은 알게 된 나이의 동현이가 얼마 전 텔레비전을 보다가 “아빠! 아빠, 텔레비전에 나왔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시위에 왜 아빠가 간 거야?”라고 물어왔다. 순간 당황했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좋은(?) 거짓말을 했다. “응. 아빠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위해 자원봉사를 하고 있어.” 그리 멀지 않은 날에 아들은 자신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는 자신이 당시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은 이유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아들 앞에서 당당하고 싶었다. 결코 비겁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8월 31일 퍼포먼스에 참여해 추모묵념을 하면서 또 한 번 다짐했다. “억울하게 숨진 분과 자식들을 가슴에 묻은 분들도 많은데, 이를 더욱 널리 알리고 한과 분노를 푸는 데 힘을 보태리라.”

아들이 피해자임을 안 뒤부터 그는 달라졌다. 피해자 찾기와 진상 알리기, 피해 배상 요구시위에 뛰어들기로 마음먹었다. 아내는 처음에는 반대했다. 그 고통스런 과거를 더는 떠올리기 싫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고 생각한 아내는 “나는 못하지만 그럼 자기는 싸워”라고 말했다. 피해자모임 카페에 가입하고 자비를 들여 경인고속도로 체증구간에 ‘가해기업 살인죄 처벌하라’는 현수막을 내거는 등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가습기 살균제로 아내와 태아를 잃은 안성우씨가 피해자 찾기 부산~서울 자전거 캠페인을 벌인 뒤 2015년 12월 곧바로 여의도 옥시본사 앞에서 차가운 길거리에 텐트를 치고 노숙투쟁을 벌이는 것을 보고 “나는 지금껏 무얼 했느냐”고 자신을 질책했다. 그는 그 뒤 피해자 모임에서 온갖 궂은일을 맡아 해오고 있다. 시위나 집회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다. 8월 중순 가습기 살균제 사건 국정조사의 일환으로 여야 의원들이 영국 방문을 추진했을 때 함께 가 원정시위를 벌일 작정이었다. 그 일이 영국 레킷벤키저의 무성의로 무산되고 9월 중순 재추진된다고 한다. 그때 자비를 들여서라도 참여할 계획이다. 박씨는 내가 8월 말에 펴낸 최초의 가습기 살균제 책 <빼앗긴 숨>의 표지 모델로 동현이 얼굴을 사용토록 허락해주기도 했다. 동현이는 이제 세상에 가장 널리 알려진 가습기 피해자의 상징 얼굴이 될 것이다. 8월 28일 5주기 추모대회와 31일 추모 퍼포먼스 등에 가로세로 4×6m 크기의 동현이 얼굴이 담긴 대형걸개가 등장했다. 가습기 살균제를 들이마신 뒤 고통을 겪던 동현이가 부조리한 세상을 응시하는 듯한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아프게 만든다.

“부도덕한 기업, 물질만능의 세상이 만들어낸 비극을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이라면 모든 것을 다할 것입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해코지를 하는 내용이 담긴 프로그램이나 아이들에게 몹쓸 짓을 한 어른들의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면 감정조절이 잘 안 된다고 한다. 그럴 때면 “저놈 죽여야 돼”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고 한다. 가습기 살균제에 자식을 잃었거나 잃을 뻔했던 모든 부모들의 심정이 그와 같으리라.

박영철씨(44)도 아들을 잃을 뻔했던 기용씨처럼 사랑스런 일란성 쌍둥이 자매 나원·다원이를 한꺼번에 잃을 뻔했다. 큰아이 나원이는 겨우 목숨을 구한 뒤 지금도 심각한 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유치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하고 집에서만 지낸다. 유치원을 2년째 다니는 동생 다원이를 늘 부러워한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깊이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이들 쌍둥이 자매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들은 그동안 피해자가 없었다고 알려진 CMIT/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메틸이소티아졸리논) 살균제 성분으로 치명적 손상을 입었다. 그동안 무해하다고 발뺌하던 제조업체 SK케미칼과 판매업체 애경이 더는 모르쇠로 일관하지 못하도록 만든 상징적 피해자였다. 현재 이 성분이 들어 있는 가습기 살균제 제품만을 사용하다 숨졌거나 심각한 피해를 입은 사람은 모두 5명이다. 피해자 모임과 환경시민단체는 나원·다원이 사례를 들먹이며 피해 배상과 SK케미칼, 애경, 이마트 등에 대한 검찰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아직까지 검찰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지난달 나원·다원이 쌍둥이 자매가 앙증맞은 모습으로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 목구멍에 구멍을 뚫은 나원이를 알아볼 수 있다./박영철 제공

유치원 가지도 못하고 집에서만 지내 8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틀째 청문회에는 박영철씨가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비행기로 부산과 서울을 오갔다. 박씨는 청문회 내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부산에서 국회방송으로 이를 지켜보던 나원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청문회가 열리면 진상규명과 피해배상 방안의 윤곽이 잡힐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청문회가 진행될수록 실망에 실망을 거듭했다. 기해기업들의 뻔뻔함과 무성의에 청문회 질의 도중 고함을 질러볼까도 생각했다. 그는 나원이가 병원에서 수술 받은 직후 모습이 담긴 사진을 준비해 가져갔다. 청문회장에서 SK케미칼 김철 대표와 애경 대표 눈앞에 이 사진을 들이대고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우리 딸 어떻게 할 건데”라고 외치고 싶었다. 청문회를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고 저녁 때 비행기로 부산으로 내려갔다.

2011년 10월 태어난 나원·다원이가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것은 그해 12월이었다. 연년생 언니에 이어 쌍둥이가 태어나자 한꺼번에 아이 셋을 키우기 힘든 엄마는 친정집으로 갔다. 친정어머니와 언니가 있기 때문에 그런대로 수월하게 갓난아이들을 돌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나원이 이모에게는 자신이 나중에 쓰려고 2011년 2월 사둔 애경 가습기메이트 제품이 두 통 있었다. 나원이 엄마는 거실에서 지냈고, 이모는 나원이와 함께 지냈다. 방에 가습기 살균제를 넣은 가습기를 겨울 동안 틀었다. 이모와 나원이 엄마는 2011년 8월 말과 11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됐지만 이를 알지 못했다. 올해 4월 이후처럼 대대적인 보도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2011년 9월부터 정부가 텔레비전 등을 통해 전 국민에게 대대적인 홍보와 계몽교육을 했더라면 이들의 피해를 막을 수도 있었다.

다원이는 생후 6개월 만인 2012년 4월에 기흉 증상이 나타났다. 나원이는 돌이 되면서 폐가 딱딱하게 굳는 폐섬유화가 생겼다. 나원이는 양산부산대병원에 입원했다. 중환자실에서 45일간 죽음과 싸웠다. 간호진의 부주의로 10여분간 숨을 쉬지 못하는 심장 정지까지 발생했다. 극적으로 나원이는 생명이 되살아났다. 박·김씨 부부는 왜 이런 끔찍한 일이 자신들에게 생겼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던 중 아이들을 치료했던 부산대병원 손승국 교수가 아무래도 가습기 살균제가 관련성이 있는 것 같다며 살균제를 사용했는지를 물어왔다. 그 덕분에 1차 신청이 끝난 직후 피해신고를 했다. 나원이는 2015년 4월 2차 판정에서 1단계 판정을 받았다. 다원이도 1단계 판정을 받았다. 다원이는 그 후로 1년 내내 천식과 비염을 달고 산다. 나원이에게 견주면 그나마 다행이다. 나원이는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어 오랫동안 목에 꽂았던 호흡튜브를 지난 5월 서울대병원에서 제거하고 구멍을 연골뼈로 되메우는 수술을 받았다. 부모는 나원이가 평생 장해를 안고 살아갈까봐 지금도 걱정이다.

동현이나 나원이처럼 피해 판정에서 정부의 피해구제 대상이 되고 가해기업한테서 피해배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1단계 판정을 받은 피해자는 소수에 그치고 있다. 지금까지 1·2·3차(3차는 일부만 판정) 피해 판정에서 신고자 695명 가운데 24.6%인 171명만 가습기 살균제와 폐손상 간 인과관계가 가장 높은 1단계, 즉 ‘거의 확실’로 인정됐다. 그나마 이들은 피해배상을 받거나 받을 길이 활짝 열려 있어 다행이다. 3단계와 4단계는 이들과는 다른 또 다른 아픔을 가지고 있다.

<안종주 환경보건시민센터 운영위원(<빼앗긴 숨>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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