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페미니즘 없이 저출산 해결 없다

박은하 기자 입력 2016.09.10.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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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 직장여성이 서울 정동의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있다. / 정지윤기자

프라이팬을 뜨겁게 달궈 조청을 녹였다. 다섯 가지 곡물로 만든 시리얼을 조청에 버무린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냈다. 바삭바삭하다가 입에서 사르르 녹을 것 같은 강정이 접시에 소복하게 쌓였다. 서울 중랑구에 있는 초록상상 사무실에서 열린 ‘첨가물 없는 건강한 간식 만들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주부 10여명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강정이 식기를 기다렸다. “이 강정 누구 주고 싶으세요?” 단연 아들딸들의 이름이 제일 먼저 나왔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일부러 다른 얼굴을 떠올려보기로 했다. 여성환경연대의 지역사무소 초록상상 활동가 김민지씨(37)는 “기본적으로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어 보는 프로그램이지만, 평소 잊기 쉬운 소중한 인간관계를 다시 떠올려보자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이날 강좌는 아름다운 재단의 ‘변화의 시나리오’ 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었다. 엄마로 잘 사는 것, 엄마에 갇히지 않는 것. 역시나 9살, 8살 두 아들의 ‘엄마’이자 ‘페미니스트’인 김씨의 가장 큰 고민이다.

김씨의 대학시절 이름은 김이민지였다. 직장 두 군데를 거쳐 여성주의(페미니즘)와 생태주의를 표방하는 시민단체에서 3년이나 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잊어버리고 살았다고 했다. 최근 온라인에서 페미니즘 이슈가 부각됨에 따라 이 네 글자를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엄마로서의 경험 때문에 ‘페미니즘’을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1999년 서울대 동물자원학과에 입학했다. 과 동기 42명 중 여성은 8명. 선배들은 ‘역대 최다 여학우 입학’이라며 환호했다. ‘역대 최다’는 시작일 뿐이었다. 2000년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65%였다. 남학생보다 5%포인트가 낮았지만 계속 간격은 좁혀졌다. 여성의 수가 적은 이공계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새로 대학에 대거 진입한 여학생들은 기존의 관행에 불편함 또는 분노를 느끼기 시작했다. “새내기배움터에서 어떤 과가 부르던 노래 중에 ‘정력가’라는 게 있었어요. ‘저 새가 왜 떨어지는지 알아? 내 정력 때문이야’ 뭐 이런 가사예요. 아유,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워요. 새터에서 이 노래 부르지 말자고 했죠.” 한 번은 돌아가면서 외치는 술자리 구호 중에 누군가 ‘전 외상의 백지화’를 외치자 또 다른 누군가가 ‘전 여성의 작부화’로 화답했다. 김씨는 술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여학생끼리 과내 여성주의 학회를 만들었다. “어떻게 학회를 만들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분위기였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최근의 대학가 단톡방 성희롱 사건의 적나라한 표현을 접하면 참으로 씁쓸하다.

서울 중랑구 면목동 초록상상에서 강정을 만들며 이야기를 나누는 주민들. / 초록상상 제공

페미니스트의 직장인·엄마되기

김씨는 대학원에 진학해 미생물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2007년 식품회사에 취직했다. 김씨는 대학시절까지는 스스로를 여성이라는 이유로 약자라고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약자가 되는 경험은 학부 과정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찾아왔다. “대학원에 들어가면서 김민지로 돌아왔어요. 자기소개를 하면 만나는 사람마다 ‘왜 엄마아빠 성을 다 쓰는 거야?’, ‘나중에 아이 낳으면 성을 뭐라고 할 거야?’라고 묻는데 지치기도 하고, 학생들끼리 하는 여성학 세미나가 수준이 높아지지 않고 거기서 거기인지라 어느 순간 벽에 막혔다고 생각했는데, 보수적인 집단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분위기를 맞춘 면도 있구요.”

직장에서 대졸 여사원은 김씨가 최초였다. 사장은 “다른 여직원들과 잘 지내라”고 당부했다. 고졸 출신인 다른 여직원 선배들은 업무 외 커피 심부름과 잔 설거지까지 하고 있었다. 커피 심부름을 거부하면 ‘대졸여성’의 특권을 누리는 것 같았고, 함께하면 ‘여성’으로서 부당한 압박에 굴복하는 것 같았다. 우선은 여성으로서 함께 잘 지내는 것을 택했다. 자연스럽게 김씨의 책상에 빈 커피 잔을 올려놓는 동료들이 늘어났다. 입사 1년도 안 돼 사내커플로 결혼하고 첫 아이를 출산했다. 연년생으로 둘째를 낳았다. “출산휴가 90일 만에 아이를 어린이집으로 보내고 복귀했습니다. 육아휴직은 엄두를 못 냈어요. 다른 여사원분들은 모두 미혼이고, 제 선배가 없어 엄두를 못 냈어요. 게다가 1년 만에 아이를 낳아 부담됐어요. 가뜩이나 임신 이후부터 각종 업무에서 배제됐거든요.” 0세 이하 아이를 돌봐주겠다는 어린이집이 없어 수십 군데에 전화해야 했다. 어린이집 원장으로부터 “갓 태어난 아기는 엄마가 키워야지 남에게 맡길 생각을 하면 어떡하느냐”는 훈계도 들었다. 영아를 맡아주는 보기 드문 어린이집에서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당시만 해도 만 5세 미만에게는 어린이집 지원금이 지급되지 않았다. 두 아들의 어린이집 비용으로 월 100만원이 들었다. 어린이집 비용을 궁금해하던 회사 팀장이 되물었다. “아, 1년에?” 사회는 그만큼 육아에 대해 무지했다. 그렇게 애를 썼지만 회사에서 한직으로 밀려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같은 과이자 사내커플인 남편의 커리어에는 변함이 없었다.

지난달 12일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이 한국공항공사 퇴직자 출신 용역회사 간부들의 성추행과 인권침해를 폭로하는 삭발식을 진행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직장을 옮겼다. 약학연구소의 과제연구원으로 일했다. 서울 중랑구 친정집과 같은 아파트 단지로 이사해 아이는 친정엄마에게 맡겼다. 김씨는 이 시기를 인생에서 제일 불행한 시기로 기억한다. 출근은 8시까지. 통근시간은 1시간30분. 새벽 6시면 일어나 잠이 채 깨지도 않은 두 아들을 이불에 말아서 유모차에 뉘여 친정에 맡겨놓고 부리나케 직장으로 향했다. “아이를 배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행동은 예측불허라 엄마의 출근시간에 항상 맞춰주지 않았다. “늦어서 죄송합니다”로 시작하는 직장에서의 하루는 “죄송하지만 먼저 가보겠습니다”로 끝났다. 오후 5시30분쯤 회사를 나와 친정에 도착하면 김씨의 엄마가 피곤에 가득찬 얼굴로 옷이 한가득 든 빨래바구니를 내밀었다. 흘리고, 쏟고, 땀에 젖은 두 아들의 옷가지들을 보며 엄마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50대의 엄마 역시 한창 친구를 만나고 자신만을 위한 활동을 하고 싶을 나이였다. 친정은 아파트 바로 옆동이었다. 빨래바구니를 안고 두 아들의 손을 잡고 돌아오는 길이 너무도 불행했다. 이 무렵 남편과의 싸움도 잦아졌고, 두 아들도 엄마에게 애착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어서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이모들이 안타까워했다. “언니가 좀 참지. 석사까지 가르쳐놓고. 아깝게 그게 뭐야.” 이모들은 오히려 김씨가 직장을 그만둔 것이 엄마의 탓인 양 나무랐다.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 육아는 엄마들 간의 죄책감으로 돌고 돌았다. 그럼에도 엄마라는 굴레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혐오와 저출산 한국의 저출산 현상은 30년도 더 됐다. 1980년대 1.5명으로 떨어져 1990년대까지 유지하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급격하게 급락했다. 2005년 1.08명까지 떨어지고 나서야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을 마련했다. 출산정책 비용은 152조원이 들었다. 어린이집 비용 지원정책부터 마련됐다. 하지만 지원금을 노린 어린이집이 우후죽순 생겨날 뿐, 괜찮다고 평가받는 어린이집에 보내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양산된 어린이집에서는 보육교사가 스트레스 받는 일도 잦았고, 아동학대 사건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지난해 아들을 유치원에 보낸 주부 서모씨(32)는 “대학입학은 기준이라도 있지, 그저 온 가족이 달려들어 신청을 해놓고 하나라도 추첨을 기다리는 유치원은 기준도 없고, 훨씬 더 어려운 것 같다”고 토로했다. 직장문화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야근의 죄책감은 고스란히 엄마에게 돌아왔고, 아이 핑계 대는 여직원에 대한 시선은 따가웠다. 아이가 행여나 성적이 부진하거나 발달이 늦을라치면 역시 죄책감은 엄마의 몫이었다. 2015년 합계출산율은 1.24명이었다. 김씨는 “12월에 아이를 낳는 맞벌이 부부 친구가 있는데, 9월인 현재까지 어떻게 키울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엄마로서의 좋은 삶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전업주부로 돌아가도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 아이를 위해 좋은 음식을 먹이고, 좋은 옷을 입히고, 좋은 학원을 보내며 백화점 세일을 노려 요령 있게 쇼핑을 해내야만 ‘훌륭한 엄마’로 평가받는 듯했다. 무언가 아니다 싶어 지역 시민단체에서 다시 사회활동을 시작했지만 ‘엄마’라는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환경운동을 해도 내 아이의 아토피를 치료하기 위해서였고, 내 아이에게 건강한 음식을 먹이기 위한 활동이었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을 계기로 탈핵 이슈에 대한 관심이 커졌어요. ‘우리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킵시다’라는 구호가 성공을 거두고 주목을 끌었지만, 여성이 하는 사회활동은 늘 자신의 가족을 돌보고 지키는 행동의 연장선상으로만 평가받고, 또 그것이 아름다운 것처럼 여겨집니다.” 사회는 여성에게 가족 안에 머무르는 엄마로서의 삶 외의 다른 역할을 주지 않는 듯했다. 대학시절 꿈과는 너무도 동떨어졌다. 그러나 김씨는 곧 사회가 엄마로서의 삶조차 존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지난해 등장한 ‘맘충’이라는 단어에서다.

지난달 24일 각계 여성단체 회원들이 한국공항공사에 김포공항 청소노동자 인권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맘충이란 표현은…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대학시절 ‘정력가’나 불편한 술자리 경험, 워킹맘으로서 힘들었던 기억도 웃으면서 말했던 김씨의 입술이 ‘맘충’이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처음으로 떨렸다. ‘맘충’이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 김씨의 첫 반응은 “어떻게 엄마를 벌레라 할 수가 있어”가 아니었다. “맘충이 돼선 안 된다에 가까웠죠. 내 주변에는 ‘그런 개념 없는 여성은 없겠지’라고 생각했어요.” 친구와 카페에 갔다가 생각이 달라졌다. 아이가 급하게 울어젖히면서 친구는 그 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기저귀를 갈았고, 허둥지둥 자리를 떴다. 친구가 못 챙긴 기저귀를 김씨가 챙겨서 나왔다. “누구나 맘충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맘충이란 말은 40대, 50대 자녀 키우기에 익숙한 여성을 겨냥하지 않아요. 초보엄마들이 타깃이에요. 육아를 처음 해보는 엄마들은 아이를 잘 달래는 법을 모르니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계속 울죠. 아이가 어질러놓은 것을 치우는 속도가 빠르지 않으니 ‘민폐’가 돼요. 엄마도 경험을 쌓아야 육아에 능숙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요. 그저 민폐를 준다고 비난하고 결국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거죠. 집안에 갇혀 있는 엄마는 우울할 수밖에 없구요. 가족의 성공이나 물질적인 보상에 집착하도록 만들고, 또 그것이 개념없다고 말하는 거예요.” 어느 정도 베테랑 엄마가 된 김씨에게 육아의 모든 책임을 떠안았던 경험이 밀려 들어왔다. ‘맘충’이라는 단어에는 사회가 육아 책임을 여성 한 사람에게 떠넘기는 것을 정당화하는 사고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 이런 것이 여성혐오구나.’ 페미니즘 네 글자는 그때 떠올랐다. 정부의 저출산 대책에서도 근본적으로 빠져 있는 부분이었다.

페미니즘이 익명 공간에서 치솟는 이유 저출산이 인구절벽을 낳고 지역사회의 붕괴와 국가경쟁력의 위기로 이어진다면, 해법은 뻔했다. ‘일본 창성회의’의 좌장이자 일본의 총무상을 지낸 마스다 히로야는 <지방소멸>에서 저출산으로 인해 일본 전체 지자체의 절반인 896곳이 소멸할 것이며, 도쿄 등 수도권도 유지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자리와 생할기반이 사라진 지방의 젊은이들이 더 많이 도쿄로 몰려들면서 대도시의 생활환경 역시 나빠지며, 일자리도 육아를 도와줄 친척도 없는 대도시에서 젊은이들은 또다시 출산을 기피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마스다 히로야는 일본의 명운은 결국 ‘가임기 여성들의 선택’에 달렸다며 장시간 근무 등 직장문화를 바꾸고 2030대 여성들의 출산·육아를 지원할 것을 주문한다.

문제는 다시 혐오로 돌아간다. 김씨는 마을 지역활동가로서 ‘혐오’ 이슈는 중요하지만 잘 설득하기 어려운 분야라고 설명했다. “혐오라는 것은 가장 광범위한데, 가장 인정되지 않는 부분이라고 할까요.” 일상에서 만나는 주민들의 반응은 온라인에서와 다르다. 마을에서 만나는 많은 여성들이 “아직도 여성차별이 있어?”라고 말한다. “나는 아들과 딸을 똑같이 키우지 차별하지 않아요”라고 한다. 온라인에서 이슈가 되는 몰래카메라나 성관계 동영상을 찍어 퍼뜨리는 범죄에 대해서는 경악하지만, 질이 나쁜 사람에게 걸린 불운한 소수 여성들의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문제를 공론화하기는 어렵고 대안을 나누기도 어렵다. 반면 안전이나 폭력에 대해서는 대부분 쉽게 공감했다. 이 대목에 희망을 건다. 문득 그리워졌다. ‘나랑 대학시절 같은 고민을 하던 30대 여성들은 뭐하고 있을까.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만나고 싶다.’

페미니즘 열기의 도화선이 된 SNS는 이 지점에서 장기를 발휘한다. 대학에서 페미니즘을 접하지 못했던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일상에서 차별이나 혐오를 겪고 분노하던 여성들이 트위터에서 페미니즘 서적, 상대방의 주장을 논파하는 간명한 논리 등을 발빠르게 배워서 써먹는다. 손희정 연세대 젠더연구소 연구원은 “트위터의 특징은 사적인 일을 익명 안에서 말할 수 있다는 점”이라면서 “개인적 경험이 여러 삶의 경험임을 알게 되면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게 되며, 해결을 논의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정아씨(29·가명)는 “평소 남자친구의 폭력적 언행, 유사성관계 요구 등에 대해 불만을 느껴왔는데, 영화 <매드맥스>를 보면서 내 안의 무언가가 폭발했다. 영화 감상 소감을 SNS에서 말하는 과정에서 저항하고 싸워야 할 문제임을 인식하고 헤어질 수 있었다”며 “그치지 않고 트위터에서 그룹을 만들어 여성혐오나 폭력에 관한 게시물들을 공유하고 해선 안될 일들에 대해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트위터는 여성혐오라는 개념을 성공적으로 널리 알렸지만 ‘일방적 폭로’와 ‘조리돌림’의 문제도 지적된다. 트위터는 특히 저명인사의 성폭력 사실을 고발하는 장으로도 널리 쓰이고 있는데, 이 또한 인권문제와 사실관계에 관한 논란이 뒤따른다. 논쟁이 세 대결로 진행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팽팽(활동명·30)은 “온라인에서는 이슈가 뜨거운 반면에 현실 공간에서는 영향력을 잘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한다. 온라인에서 ‘좋아요’를 받으려 하는 활동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을 만나고 일상적 공간에서 알리는 작업들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다”고 말했다. 문제는 왜 유독 ‘익명성’ 안의 공간에서 이슈가 폭발하느냐이다.

김민지씨가 여성으로서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낀 곳은 일터였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석사학위까지 취득한 김씨도 한국 직장문화를 버텨낼 수 없었다. 지난 6월 28일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16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여성 임금노동자는 올해 3월 기준 842만3000명인데, 이 가운데 40.3%가 비정규직이고, 여성 비정규직 중 시간제 노동자는 47.7%이다. 시간제 노동자 등 비정규직은 임금문제로만 차별받는 것이 아니다.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지난달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삭발 및 파업을 단행했다. 한국공항공사 퇴직자 출신 용역 간부들은 청소노동자들을 노래방에 데려가 강제로 주무르고 키스하는 등 끊임없이 성추행을 벌였다는 폭로도 나왔다. 비난여론이 빗발쳤지만 한국공항공사는 외주회사의 일이라며 책임에 선을 그었다. 노동조합은 명예훼손으로 고발됐다. 김영미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외주화가 여성노동의 질을 현저하게 떨어뜨렸음을 지적했다. 신자유주의적 개혁으로 외주회사, 파견회사 등 주변부 노동시장의 규모가 커졌다. 주변부 노동시장의 특징은 인사관리나 업무평가 등을 규제하는 시스템이 없다. 평가자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되기 쉽다.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이나 태도 등이 개입될 가능성이 커진다.

손 연구원은 “지난해 헬조선(지옥 같은 한국)이라는 말이 유행한 것과 페미니즘이 이슈가 된 것이 겹치는 현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선’이란 표현은 한국은 계급사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페미니즘 목소리는 근본적으로 살기 어렵다고 나오는 것인데, 이 살기 어려움은 가부장제와 여성노동이 겹치는 부분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노동현장에서의 억압은 극도로 심해 문제를 제기할 수도 없다. 김자연 성우가 공개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냈다가 넥슨의 게임에서 삭제되는 등 바로 일터에서 보복당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페미니즘 이슈는 상대적으로 여성에게 자유로운 공간으로 몰린다는 이유다. 바꿔 말하면 페미니즘적 접근의 확대는 가부장주의나 국가주의 등 기존 논리가 지배하던 질서를 바꾼다는 의미기도 하다.

페미니즘은 국가의 미래와 밀접한 사안이 됐다. 저출산 담론이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한다거나 여성에게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강요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방소멸>의 저자 마스다 히로야 역시 일본이 사회를 유지하려면 최소 1.8명의 희망출산율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강요와 억압 등의 문화 자체가 출산율을 떨어뜨리고 지역을 떠나게 하는 이유다. 그러나 저출산 현상은 페미니즘이 제기하는 혐오, 성차별 등의 이슈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여성의 삶을 억압하는 사회는 최소한의 유지도 이뤄내기 어렵다는 의미의 빨간 신호등이기도 하다. 손 연구원은 “‘메갈리아 이후?의 페미니즘은 다양하게 분화하고 있다”며 궁극적으로 현장과 결합된 움직임으로 확산돼야 한다고 밝혔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