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경향신문] 북한이 5차 핵실험으로 핵무기를 완성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북한의 핵 위협이 종전과 비교할 수 없이 높아진 만큼 비상한 대책이 필요하다. 한·미의 대북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오늘 긴급 회담을 갖기로 한 것은 시의적절한 대응이다. 북핵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초당적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위기 극복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건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지난 9일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처음 언급하면서 여러 가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박 대통령은 해외에서 귀국하자마자 안보상황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국내 불순세력이나 사회불안 조성자들에 대한 철저한 감시 등 국민들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또 “끊임없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반대와 같이 대안 없는 정치공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도 했다. 군사정권 때나 들을 수 있는 말에 많은 시민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을 것이다.
이승만 정권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남한 내 좌파활동 인사를 감시하고 처형한 바 있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 체제를 선포하면서 유신 체제 비판을 사회불안 조성행위로 간주하고 시민을 함부로 감시하고 처벌했다. 사드 배치 반대 의견을 적대시하는 것은 물론 정권을 비판하는 시민을 감시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언동은 이런 어두운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박 대통령이 검찰과 국가정보원을 동원해 또 종북놀이를 하며 내부 분열을 조장, 정치적 이익을 보려는 의도가 아니길 바란다. 만에 하나 그렇게 한다면 그건 민주주의 기초를 위협하는 반헌법적 조치로서 시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은 늘 안보나 민생에 대해서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며 야당의 초당적 협조를 요구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야당을 분열세력이라고 비판하며 초당적 협력을 흔들었다. 대통령 자신은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밤잠 못 이루며 노력하는 존재로 내세우면서 야당은 정략적으로 판단하는, 순수하지 못한 세력으로 규정하고, 무조건 자신의 말을 따르라는 식이었다. 이 때문에 결국 초당 협력은 빈말일 뿐 이번 사태를 야당과 비판세력의 위세를 꺾는 계기로 삼으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박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 대해 “정신상태가 통제불능”이라고 한 것도 부적절했다. 전 세계가 한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자제력을 잃은 듯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대처해야 할 중요한 순간에 감정에 사로잡혀 격한 언사를 쏟아내면 도리어 시민을 불안하게 할 뿐이다. 새누리당도 비현실적인 핵무장론, 미국의 전술핵 배치론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냉철한 대응으로 위기를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
내부 위기를 조장해 정치적 이득을 보려고 한다면 그 숨겨진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는 시민은 없다. 야당의 초당적 협력은 대통령의 초당적 자세에서 나온다. 박 대통령은 오늘 야당 대표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열린 마음으로 야당의 제안을 진지하게 경청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초당적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박 대통령이 문제 발언을 취소하고 바로잡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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