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행 불가능한 바지선에 세월호 수색 맡긴 해경

입력 2016. 9. 13.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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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언딘 특혜 의혹’ 수사기록 단독 입수… “‘리베로호’ 기다린 건 살인 행위 가까워”

9월1일 세월호 3차 청문회가 열린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 인근에서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서 있다. 밝혀야 할 진실의 조각은 더 많지만 정부의 방해로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9월30일 강제 해산될 위기에 놓였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세월호 참사 초기 수중 수색 지원을 위해 동원된 바지선 언딘 ‘리베로호’는 운행이 불가능한 배였다. 하지만 해양경찰청은 이 배를 고집했다. 다른 바지선들도 있었지만 대기만 하다 돌아가야 했다. ‘왜 언딘의 바지선만 구조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나?’ 세월호 참사에 던져진 또 하나의 질문이다.

<한겨레21>은 이 의문을 풀어갈 ‘언딘 특혜 의혹’ 수사기록 1만1천여 쪽을 단독 입수했다. 아직 공개된 적 없는 기록이다. <한겨레21>은 이 기록을 바탕으로 연속보도를 이어간다. 세월호는 끝나지 않았다.

해경은 왜 리베로호를 고집했나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52분. 세월호 참사 신고가 최초로 이뤄진 시각이다. 이 순간부터 세상은 분과 초 단위로 움직였다. 1분 1초가 흘러가는 것이 아까운 시간이 이어졌다. 세월호가 완전히 전복한 것은 참사 당일 오전 10시17분. 그때부터 가장 중요한 것은 수중 수색이었다. 수중 수색을 위해서는 바지선이 필수적이다. 수색에 나서는 잠수사들의 거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현장에 수중 수색을 원활하게 지원할 수 있는 1천t급 이상의 바지선이 투입된 것은 참사 일주일 만인 4월23일 오전 6시다. 구난업체 언딘의 ‘리베로호’, 이 배의 투입이 늦어진 이유가 있다. 아직 배가 건조되지 않았던 것이다.

세월호 참사 다음날인 2014년 4월17일, 경남 고성의 천해지 조선소에서는 리베로호 진수식이 열렸다. 진수식은 배를 물 위에 띄우는 행사다. 하지만 배는 물 위에 띄운다고 건조가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다. 운행이 가능해야 했다. 진수식 당시 이 배는 운행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같은 사실은 리베로호 건조를 담당했던 A씨의 검찰 진술에서 잘 드러난다.

검찰   (리베로호를 사고 현장에 투입해야 한다는) 위 말을 듣고 어떠했나요?

A   한마디로 황당했습니다. 이제 처음 바다에 띄운 배이고 앞으로 거쳐야 할 과정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말을 하는가 싶어서 ○○○에게 “이놈들이 미쳤나, 이제 배를 물에 띄웠는데 가져간다고 하네”라고 욕을 했습니다. 기술자의 입장에서 이제 진수한 배를 가져간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5일 만에 18% 공정 진행

진수식 당시 리베로호의 공정률은 75%였다. 윈치 장치, 발전기, 수평수 펌프 가동 작업 등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윈치 장치는 닻을 내리고 감는 장치다. 바지선을 고정하기 위해 필수적인 장비였다. 윈치 장치 가동을 포함해 바지선 안에서 전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발전기도 필요하다. 수평수 펌프는 바지선을 바다에 떠 있을 수 있도록 수평수를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결국 이같은 공정이 마무리되지 않은 진수식 당시의 리베로호는 바지선의 역할을 못하는 배였다는 의미다.

그래도 출항을 강행해야 했다. 진수식부터 리베로호가 출항한 4월21일까지 닷새간 철야 작업이 이뤄졌다. 그래도 배는 완성되지 못했다. 출항 당시 공정률은 93% 수준이었다.

검찰   출항을 할 때 공정이 93% 선이었다고 진술했는데 그렇다면 5일 만에 공정의 18%를 진행한 것인가요?

A   예, 그렇습니다.

검찰   무리해서 급하게 공사를 진행한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가요?

A   예, 맞습니다.

분초가 시급한 상황에서 항해가 불가능한 배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데에만 5일이 걸린 셈이다. 결국 탈이 났다. 리베로호가 사고 해역으로 가던 중 발전기가 멈춘 것이다.

언딘 관계자는 4월22일 0시30분께 다급하게 리베로호의 건조를 담당했던 A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리를 부탁한 것이다. 이에 A씨는 “지금 너무 늦었다. 내일 일찍 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배를 출항하는 것을 청와대까지 보고를 했는데 지금 배 잘못돼서 출항 못한다고 보고를 해야 돼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A씨는 낚싯배를 얻어타고 경남 마산 근처에 정박한 리베로호에 올라탔다. 발전기가 과부하된 것이 문제였다. A씨가 승선해 문제를 해결한 뒤에야 리베로호는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애초 언딘이 해경에 보고한 리베로호의 도착 예정 시각은 4월22일 오후 8시였다. 하지만 발전기 문제로 이 계획은 어그러졌다.

최상환 당시 해경 차장은 김윤상 언딘 대표에게 4월22일 오전 9시24분 문자를 보낸다. “바지 도착 시간, 설치 예정 시간 알려주셔요. 급함” 김 대표는 최 차장에게 “(23일) 새벽 2시경 도착해서 내일 오전 중에 세팅 완료 예정입니다”라고 답변한다. 최 차장은 다시 “큰일 났네, 1시간이라도 당길 수 없습니까?”라고 되묻는다. 리베로호에만 목매고 있는 모습이다.

현장 가다 발전기 멈춘 리베로호

세월호 참사 현장에 투입된 바지선 언딘 ‘리베로호’가 2014년 4월29일 구조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당시 동원 가능한 대형 바지선이 리베로호뿐이었다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대안이 있었다. 리베로호가 발전기 문제로 경남 마산 인근에 발이 묶여 있을 때 사고 해역에는 현대보령호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리베로호가 도착한 시간보다 30시간 먼저 현장에 와 있었던 것이다.

보령호(2202t)는 리베로호(1176t)보다 2배 가까이 컸다. 그만큼 많은 잠수사들이 쉴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빠른 물살에 안정적으로 버티는 ‘고정력’도 더 좋았다. 보령호의 앵커(닻) 무게는 총 ‘34t’으로 리베로호(총 20t)보다 무거웠다. 하지만 해경이 사고 현장 투입 명령을 내리지 않아 보령호는 대기만 하다가 돌아갔다.

당시 언론은 해경이 보령호를 돌려보낸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해경과 언딘의 유착 의혹을 수사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아졌다. 그러자 해경은 리베로호의 제원 부풀리기에 나섰다. 해경은 세월호 참사 부실 대응 논란이 커지자 내부적으로 ‘초동조치 및 수색구조 쟁점’이라는 대외비 문건을 만들었다. 이 문서를 압수한 검찰은 “수사기관에서 해경들(의) 진술은 초동조치 및 수색구조 쟁점과 그 기조가 일치한다. 해경 차원에서 수사에 대비해 자료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 문서는 계속 업데이트됐다. 2014년 6월 작성된 ‘초동조치 및 수색구조 쟁점II’에는 리베로호를 “잠수(감압)챔버, 공기압축기, 표면잠수공급기 등 안정적 수중 작업을 지원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전문 잠수 전용 바지”라며 “70명 수용 가능”하다고 적었다. 아울러 해경은 이 문서에 “현대보령호는 거주 공간이 50명으로 민관군 합동 구조팀이 신속한 수중 수색을 위해 상주할 수 있는 공간 부족”이라고 적었다.

즉, 수용 인원 70명의 리베로호가 수용 인원 50명의 보령호보다 더 많은 사람을 실을 수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 리베로호의 ‘수용’ 인원은 30명이었다. 수용 인원을 조작한 셈이다. 또 잠수(감압)챔버, 공기압축기, 표면잠수공급기 등은 모두 이동식이다. 어떤 바지선이라도 실을 수 있는 장비다. 이 장비를 보유했다고 리베로호가 ‘국내 유일의 전문 잠수 전용 바지’가 되는 것이 아니다. 보령호의 선사 관계자인 B씨 역시 검찰에서 이같은 취지로 진술했다.

리베로호 제원 부풀린 해경

검찰   감압챔버는 임차하여 바지선에 부착할 수 있다는 것인가요?

B   네, 감압챔버는 필요에 따라 임차할 수 있는 장비인데, 우리 회사의 경우는 잠수업체에 용역을 의뢰할 때 보통 이 장비도 잠수사들과 함께 의뢰하고 있습니다. 이번 세월호 사고 현장에는 해경이나 해군이 당연히 감압챔버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이 장비를 임차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A씨 역시 검찰에서 비슷한 진술을 했다.

검찰   출항을 하기 전에 언딘에서 구난장비를 선적했고, 구난장비를 선적하기 전까지는 리베로호는 평범한 바지선이었지 잠수 전용 바지선으로 보기는 힘들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A   언딘에서 구난장비(잠수장비)를 싣기 전까지는 일반 바지선입니다. 30명의 인원이 생활할 수 있는 다목적 바지선인데 언딘에서 잠수장비를 실음으로써 잠수 전용 바지선이 된 것입니다.

리베로호만을 기다렸던 해경의 선택이 얼마나 큰 문제였는지는 이 배를 직접 건조한 A씨의 검찰 진술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리베로호가 다른 바지선에 비해 우수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 때문에 시간을 다투는 구조 현장에서 리베로호만을 기다린 것은 정말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살인 행위에 가깝습니다”라고 말했다.

선박 전문가가 ‘살인 행위’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비판했던 리베로호의 무리한 투입은 도대체 왜 이뤄진 것일까. 제1130호에서 이 물음에 답해줄 사실을 계속 보도하겠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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