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달변의 대통령', 노무현을 말하다

윤창희 2016. 9. 14.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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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이 23일 오후 2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묘역에서 진행된다. 추도식을 앞두고 봉하마을에는 아침 일찍부터 추모객들이 모여들고 있다. 노무현 재단측은 지난 주말과 휴일 3만명 이상이 다녀간데 이어 추도식에 2만명이 넘게 참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도식에 맞춰 '노무현의 필사'로 불리는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의 책을 소개한다. (이 기사는 지난해 9월 14일 KBS 홈페이지에 한 차례 소개된 바 있다.)

"약속보다 시간을 넘겨서 미안합니다. 즐거운 식사 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 제가 이것 하나만 고치면 멋진 대통령이 될 텐데 이게 안돼요. 시간을 늘립니다. 눈물 머금고 이야기 마칩니다" (2006년 초 전국 근로감독관 초청 오찬)

노무현 대통령은 말이 참 많은 대통령이었다. 잘하기도 했다. 그가 하는 말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 무수한 말을 낳았다. 그의 말에 어떤 사람들은 감동 받았고, 어떤 사람들은 비난의 십자포화를 쏘아 댔다. 그는 피하지 않았다. 말로 정치를 했고, 말로 웃고 울었다. 때로는 이기고 때로는 졌지만, 상처도 많았다.

그의 '말'을 많이 들었던 '노무현의 필사' 윤태영씨가 노 전 대통령의 말을 정리해 분석한 책을 펴냈다. 윤씨는 참여정부 시절 대변인, 부속실장, 연설기획비서관을 지내며 노 전 대통령의 말을 정리해왔다.

대통령은 수시로 그를 불러 구술했다고 한다. "그 때 내 생각이 이랬구나 알 수 있도록 기록으로 남겨달라"고 노 전 대통령은 말했다. 윤씨는 그때부터 모든 자리에 배석해 말을 적었다. 처음에는 손으로 쓰다가 손가락 '펜 혹'이 생길 정도가 되자, 노트북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업무 노트 100권, 수첩 500여권, 1400여 개 한글 파일이 쌓였다.

윤 씨가 펴낸 '대통령의 말하기'(위즈덤 하우스)는 명연설가로 꼽히는 정치인 노무현의 말을 정리 분석한 노무현 화술 연구서다. 독특하면서도 감탄을 자아냈던 노무현 달변의 비결은 무엇일까.


책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 공감 사는 비유

노 전 대통령은 논리적인 측면에서의 공감대를 목표로 적절한 비유를 예시하는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시골 출신이 아니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지만, 논리의 전개상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예시가 많았다. 비서가 써주는 딱딱한 문체의 연설문보다 그의 연설은 그래서 더 청중들을 파고 들었다. 2003년 8월 문화관광부 업무보고를 보자.

"해외홍보원, 문화교류과, 무역진흥공사, 한국관광공사 등 각 기관의 해외 홍보업무의 통합에 대한 판단과, 해외에서 유관기관들이 협업 체제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를 문화관광부가 주도권을 갖고 연구하여 관계장관회의에 보고해 달라. 시골에서 돼지가 열두 마리를 낳으면 꼭 한두 마리는 잘 자라지 못한다. 이 돼지들을 새끼가 네 마리 밖에 안되는 어미돼지에게 붙여 놓으면 아주 잘 자란다. 이런 관점에서 말한 것이다. "

해외 홍보기관의 통폐합과 소관 문제에 대해 개선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면서 어린시절 보고 들은 어미돼지와 새끼돼지의 이야기에 빗대 발언 취지의 공감대를 확보하고 있다.

■ 반전의 화법

그의 반전 화법은 말하는 효과를 두 배로 높인다.

퇴임 이후인 2008년 10월 7일 오후 그는 봉하마을 사저 앞에서 방문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가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그런 종류의 일자리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것을 파악해서 보고하는데 우리 정부가 전부 매달렸는지 자기들로서는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이해찬 총리가 성질이 좀 더럽거든요"

갑작스레 '이해찬 총리의 성질'을 얘기하자 일순 긴장의 분위기가 감돈다. 그는 구체적인 이야기로 흐름을 반전시킨다.

"달리 더러운 것이 아니고, 국회의원이라면 국회의원 업무는 딱 떨어지게 하기 때문에 정부가 괴롭습니다. .... 직장으로 말하자면 돌리는 상사거든요. 대통령이 아무리 돌리려고 해도 공무원이 쉽게 돌아가지는 않지요. 그러나 어떻든 이해찬 총리만큼 그렇게 대차고 빡센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빡센 사람이 돌리고 돌려서 그 일자리가 어느 정도 우리 한국 사회에 앞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조사해내는 데 딱 1년이 걸렸습니다."

'성질 더러운 사람'은 결국 '일잘하는 사람'이라는 찬사를 세우기 위한 반전의 주춧돌이었던 것이다.

그의 반전은 현실과는 정반대의 상황을 전제로 깔아 놓는다.

2014년 1월 8일 여성계 신년 인사회에 참석했을 때의 이야기다.

"사실 저는 여성 마술사를 오늘 첨 봤습니다. 여성도 마술하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비교적 깼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제 딸아이가 마술 배운다고 종이, 보자기 갖다 놓고 주물럭거리면 걱정을 많이 했을 것 같은데 오늘 보니까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 가벼운 허풍, 유머

그는 공석에서나 사석에서 유머를 잃지 않았다. 대중적 언어들이 활용된 서민형 유머였다.

"한국 초등학생들은 발맞춰 걷는 훈련을 할 때 서양 음악에는 발을 잘 맞추지 못하지만 사물놀이에는 발을 잘 맞춥니다. 그만큼 익숙합니다. 마치고 나면 한 대목 시범을 보이려고 했는데 (사물놀이 팀이) 가버렸습다. 다행히... 다행히 가버렸습니다.(웃음)"(2005년 5월 주한외교단 리셉션 행사)

반전 화법과 함께 등장하는 가벼운 허풍도 있다. 신임 사무관을 상대로 한 특강이다.

"성공의 비결이 뭐냐" 사즉생(死卽生)입니다. 죽는 길로, 죽는 길로만 갔는데 대통령이 됐어요. 어느덧... 아무 때나 여러분 본 받고 하지 마십시오. 진짜 죽어버리는 수가 있습니다."(웃음)

2007년 6월 충북 방문 때 대통령의 지역 개발 선물을 기대하던 시민들에게 이런 유머로 대답한다.

"부의장께서 선물 많이 주고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래서 오면서 '선물 좀 챙겨봐라'고 (비서진에게 얘기) 했더니 옛날에 택배로 다 보내서 들고 갈 게 없다 그러더라고요. (웃음) 그래도 올라가서 뭐 택배로 보낼 게 있는지 보겠습니다. 저는 점잖은 사람이라 손에 뭐 안 들고 다닙니다. 필요하면 또 택배로 보내겠습니다.(웃음)"

■ 기발하면서 서민적 언어

그는 대화나 연설에서 어린 시절의 경험 혹은 기발한 비유를 통해 웃음이 터지게 하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2006년 5월 정부혁신 토론회다.

"어릴 때 동네 어른들로부터 많은 속담을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 '방귀질 낫자 보리양식 떨어진다'는 속담이 있었습니다. 손에 좀 익어 뭔가 할 성싶으면 끝난다는 뜻입니다. 이제 공무원들과 손발을 맞춰 제대로 해보려고 하니 임기가 다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속담을 소개하는 것은 나의 심정이 그렇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짤막한 문구나 속담, 비유를 넣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기발한 재주가 그에게는 있었다. 재밌었던 그의 비유를 예시해 보면 이렇다.

"날아가는 고니 잡고 흥정한다" (연목구어 혹은 우물에서 숭늉찾기와 같은 의미)

"절구통에 새알까기"(누워서 떡먹기)

"소금이 시어질까? 바닷물이 넘칠까? 해삼이 나무에 올라갈까?"(절대로 실현될 수 없는 상황을 빗대는 표현)

"게가 구멍이 크면 죽는다"(외국 순방시 엄청나게 큰 호텔을 보며)

"안방이 단결하면 머슴이 괴롭다"(제천 지역혁신토론회 환담)

"젖만 짜도 될 텐데, 소를 잡자는 것이다." (오찬, 단기투자자본규제 문제에 대해)

"쇠를 잘 치는 사람이 장구도 잘 친다." (정문수 신임 경제보좌관 조찬)

"엉뚱한 길목에서 토끼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닌가"(정문수 신임 경제보좌관 조찬)

"제 어머니는 모과 세 덩어리를 헤아리지 못해도 가장은 가장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 이제 노무현은 대통령입니다."(전국 세무서장 초청 특강 연설)

"혼삿말하면 장삿말 하고, 장삿말 하는데 혼삿말 한다"(원내대표 만찬)

"형님 떡도 싸고 맛있어야 사먹는다."(캄보디아 정상상회담)

"좋은 말도 해야 하고, 나쁜 말도 해야 한다. 목욕도 안 하고 장가가는가?"(한일관계에 대해 언급하며,KTX오찬)

"물 젖은 솜이불에 칼질하는 격이다. 아무런 대책이 없다"(문정인 위원장, 이종석 차장 등 외교안보 관련 오찬)

"나무에 앉은 새 욕심내다가 친구 놓치지 마라."(NSC 보고)

"전어는 명지 녹산에 가야 한다. 가을 전어 서리에 깨소금이 한 바가지다."(문성근, 명계남, 이창동 등과 북한산 등산 후 오찬)

"송판에 화살 꽂히는 듯한 감동이 없다."(준비된 광복절 연설문에 대해)

■ 솔직함, 고사 대신 내가 살아온 얘기로 풀어내기

2002년 대통령선거 때 '귀족후보'로 공격받던 이회창 후보가 '옥탑방'의 뜻을 모른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민주당 선거 캠프는 좋은 공격 소재로 판단했다. 그런데 막상 노무현 후보는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나도 옥탑방을 모른다"고 솔직히 대답해 버렸다.

이런 노 후보의 솔직함은 사람들에게 더 빨리 다가가는 무기가 됐다.

그는 진솔하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면서 연설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연설에 대한 호응도가 높았다. 2005년 7월 해병대 신병교육단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도 막내로 태어나서 가난했지만 부모님 사랑도 독차지했고, 형님들 사랑도 독차지했기 때문에 남한테 싫은 소리를 들어본 일이 없고 너무 고달프고 힘든 일은 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그냥 울면 형님이 스케이트 만들어주고, 형님이 팽이 만들면 빼앗으면 되고 새총 만들어 놓으면 무조건 압수하면 되었습니다. 그렇게 내 마음대로 자랐는데 군대 가보니까 그게 아니더군요. 훈련소 딱 들어가니까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아마 그래서 군대 생활 했던 것을 오래 오래 기억하면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용기를 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완벽 말하기=논리+감성

"이런 아내를 버려야겠습니까"

2002년 4월 초,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국민경선을 치르던 노무현 후보가 한마디를 던졌다. 한나라당과 언론에서 제기한, 고인이 된 장인의 좌익 전력 시비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발언이었다.

"음모론과 색깔론, 근거 없는 모략, 이제 중단해 주십시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합작해서 입을 맞춰 헐뜯는 것 방어하기도 힘이 듭니다. 제 장인은 좌익활동 하다 돌아가셨습니다. 해방되는 해 실명해서 앞을 못 봐 무슨 일을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지만 결혼 한 참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그 사실 알고도 결혼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 잘 키우고 잘 살고 있습니다. 뭐가 잘못됐다는 겁니까. 이런 아내를 버려야겠습니까? 그러면 대통령 자격 생깁니까? 이 자리에서 여러분이 심판해 주십시오. 여러분이 자격 없다고 하신다면 대통령 후보 그만두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라고 하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훗날까지 회자됐던 이때의 연설로 그는 승기를 굳혔고, 정치권은 '노풍'의 회오리에 휩싸였다. '노풍연가'라는 표현이 인터넷을 달굴 정도로 빅히트를 쳤던 그의 명어록 중 하나다.

문맥을 분석해 보면 그의 연설은 논리적 호소다. "그런 사실을 알고 결혼했고, 그래서 아이들 잘 키우고 있는데 무엇이 문제이냐" 는 지극히 논리적인 반문이다. 그런데 당시 노 후보의 한마디를 접한 사람들 대부분은 이 대목을 감성코드로 받아들였다.

정책이나 노선과 관련한 이슈 파이팅이 아니라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그는 대화할 때 논리적 구성을 우선시했지만, 그가 대통령이 되기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던 계기를 보면 고비마다 감성 코드가 자리잡고 있다.

2000년 총선 낙선후 소회인 "농부가 어찌 밭을 탓하겠습니까" 그 한마디가 준 감동은 '노사모'를 탄생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이런 감성적 표현의 강점은 대화 내용을 더욱 풍부해지게 하면서도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재미가 있다.

"민생이라는 말은 저에게 송곳입니다. 지난 4년동안 저의 가슴을 아프게 찌르고 있습니다."(2007년 1월 신년 연설)

공식 석상에서보다 사적인 대화나 인터뷰에서 그는 감성적인 언어를 많이 썼다. 특히 2003년 3월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의결한 전후에 남긴 감성적 표현에서는 그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정말, 무슨 운명이 이렇게 험하죠? 몇 걸음 가다가는 엎어지고... 또 일어서서 몇 걸음 가는가 싶으면 다시 엎어지고...

■ 껄끄러운 이야기는 최대한 논리적으로

자리에 따라서는 조금은 껄끄러운 이야기를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논리적으로 충분히 공감할 만한 사례를 들어 주장을 펴나간다. 2007년 1월말 지역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 간담회다.

"언론은요. 운동장에 내려오면 안 됩니다. 선수가 아니잖아요? 해설이나 심판을 하고 있으면서... 요새 일부 언론들 보면 운동장에 내려와 가지고 자기가 막 공을 차고 그래요. 차는 건 그래도 그것까지만 해도 뭐한데, 반칙까지 해요. '왜 국민들이 헷갈리게 그런 제목을 뽑는가? 이것입니다. '장기집권전략', 그거 여당으로 따지면 말이 되는 것 같지만 그 용어는 역사적인 용어입니다. 그건 독재자가 장기집권하려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여당이 또 여당이 되는 것을 장기 집권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 무렵 그가 연임제 개헌안을 제기하자 일부 언론에서 '장기 집권전략'이라고 제목을 뽑은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해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문제를 지적하는 장면이다.

■ 오해와 논란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지만, 그의 말은 수많은 구설과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초선의원이던 1988년 13대 국회 당시 그는 청문회 스타가 된 후에 전국 곳곳의 노동조합에 강연을 다녔다. 그러던 중 그해 12월 현대중공업에서 한 강연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나는 대한민국 어디에서 출마해도 당선된다."
"나 같은 사람 20명만 있으면 국회도 흔들 수 있다"
"근로자 한 사람이 감옥에 가면 석방해 달라고 항의를 하고 관철이 안 되면 몽땅 감옥에 갈 각오를 하고 투쟁해야 한다"

이 발언들은 구호와 박수, 환호가 어우러진 현장에서 나온 것이다. 현장 분위기를 감안할 때 이해가 되는 발언이었지만, 어쨋든 이 발언들은 앞뒤가 잘려 활자화되면서 그는 일순간에 '오만한 국회의원'이 되고 말았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대통령 재임 중 그가 수차례에 걸쳐 시도한 대화체의 대중 연설은 좌중을 쥐락펴락했다고 할 만큼 재미가 있었다. 누구도 그의 발언이 시비의 대상이 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신문을 보면 달랐다. 큼지막한 활자로 뽑혀 나온 대통령의 발언들은 분명 사고였다. 대통령 스스로도 이런 고충을 토로하곤 했다.

"제 딴에는 잘하느라 하고... 그런데 저녁에 TV만 보면 기가 죽는다. (웃음) 그 다음 아침에 신문을 보면 기죽는 수준이 아니라 눈 앞이 캄캄하다.(웃음, 박수)"

왜 이런 일이 되풀이 됐을까. 그의 발언을 맥락으로 이해하지 않고 부분만을 확대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 가면 그는 일종의 '신기'가 발동하는 사람이었다. 분위기가 좋으면 과장법과 반어법도 동원하고 과도한 제스처도 활용했다. 그것은 일부 언론이 보기에 대통령이 넘어서는 안 될 금기의 영역이었다.

■ '원고없는' 말하기를 실천하라

많은 명연설이 탄생했지만, 노 전 대통령의 대화체는 역효과나 부작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큰 흐름보다는 한 두가지 표현이 문제로 부각되면서 부정적인 기사가 잇따랐다. 그래도 그는 대화체 연설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 전 대통령은 중요한 행사에서의 연설이 쉽게 잊혀졌다. 낭독형의 한계 때문이다. 행사의 중요성, 준비에 투입된 공력을 감안할 때 각광받지 못한 사례들이 많다. 2002년 4월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 2003년 2월 대통령 취임사, 재임 중 다섯 차례 있었던 광복절 연설 모두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대통령 답지 않다'는 공격을 받았던 그의 대화체 연설이 지금은 명연설로 꼽히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을 보면서 내린 결론은 이렇다. 설득력을 높이고 싶다면 준비된 원고를 낭독하기 보다는 대화체 연설을 선택해야 한다. 말하기 실력은 역시 대화체 연설에서 판가름 난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원고를 준비해두면 더욱 좋을 것이다. 준비 과정에서 대화체로 이야기할 내용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될 수도 있다. 말하기 실력을 키우고 싶다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지런히 대화체 연설을 시도해야 한다.

작은 모임, 송년 행사, 가족잔치 등 인사말을 할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욕심내지 말고 짧게 세 가지 포인트만 압축적으로 이야기해보자. 머릿속으로 숙지해두어도 좋고, 메모로 키워드를 정리해 두어도 좋다. 물론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중요한 자리라면 미리 원고를 준비하여 자연스럽게 읽으면 좋을 것이다.

윤창희기자 (thepla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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