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누가 경찰을 '시민과의 전쟁'에 몰아넣는가

2016. 10. 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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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농민 백남기씨가 끝내 숨졌다. 우리는 지금 시민을 적대시하는 경찰국가에 살고 있다. 경찰국가의 야만성을 이대로 그냥 둘 것인가?

지난해 11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317일 동안 의식불명 상태에 있던 백남기씨(70)가 사망한 9월 25일 경찰청은 전국 17개 지방경찰청에 문서를 발송했다. 전국 주요 공공장소에 분향소가 설치될 것이 예상되니 장소를 선점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해 분향소 설치를 막아내라는 내용이었다. 경찰청은 “시민에게 불편을 초래하지 않는 분향소 설치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는다”면서도 “관공서 등의 출입구나 주변 인도에 분향소를 설치해 시민에게 불편을 줄 경우, 법에 따라 취하는 불가피한 조치”라고 해명했다.

같은 날 서울 종로경찰서는 백씨의 시신 부검을 위한 영장을 청구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이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실에 제출한 서면질의서에서 “통상의 변사사건 처리절차와 같이 검찰의 지휘를 받아 부검을 위한 압수수색 검증 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경찰청은 앞서 고인의 부검 실시와 관련해 “사고 당시 시위상황과 고인의 사망 사이 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 등을 규명하기 위해 부검을 통한 법의학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두 답변을 종합하면 백씨의 사망에 경찰 인과관계의 책임을 명확히 하기 위한 부검이라면서 ‘검찰의 지휘’를 받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 9월 2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입구에서 경찰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대치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검찰의 지휘’를 강조하는 경찰

경찰이 퇴로 없는 전쟁을 1년째 벌이고 있다. 장례식장 안에서는 시신의 부검을 두고 고인의 가족과 대립하며, 전국 각지에서는 분향소 설치를 두고 시민들과 ‘공간 선점 경쟁’을 벌여야 한다. 경찰은 두 사안에서 ‘시민의 불편’과 ‘검찰의 지휘’를 내세웠다. 시민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강한 경찰력’과 ‘약한 경찰’의 모습이 교차한다.

경찰 내부에서는 위기감도 감돈다. 지방경찰청장을 역임한 한 전임 경찰관은 “경찰은 지난해 11월 정당한 공권력을 행사했다. 청와대로 시위대가 몰려가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농민의 사망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부검 등 정확한 근거 없이 경찰의 책임으로 지목되면 앞으로 제대로 된 공권력 집행은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 생각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더민주의 표창원 의원은 “경찰조직에서는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면서 “초반에 경찰이 빨리 사과하면서 수습했어야 할 일이 경찰 지휘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더 해결하기 어려운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을 시민과의 전쟁으로 몰아넣고 있는 존재는 누구인가. 죽음도 막지 못한 전쟁에 출로가 있을까.

경찰의 전쟁에는 조직 내부적으로 작동하는 사명감과 조직논리가 일차적으로 작동한다. 경찰은 지난해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250개 경찰부대, 경찰력 2만2000여명, 경찰버스 700여대와 차벽트럭 20대, 살수차 등을 동원했다. 한 전직 지방청장은 “보통 과장급이 300~500명을 현장에서 지휘하는데 정신이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돌발상황이 일어날 경우 통제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시위대와의 대치과정에서 증오감이 발생하는 상황도 무시할 수 없다.

한 경찰 출신 변호사는 “계획적으로 쇠파이프 등이 동원된 불법·폭력집회를 경험하면서 시위대에 적대감을 키운다. 비상근무로 장시간 근무가 누적된 상황에서 분노를 어딘가로 쏟아내기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 출신인 표 의원도 집회·시위 대치과정에서의 경찰관 개개인이 흥분이나 증오로 이성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1990년에 경기 화성경찰서 기동대 대장으로 있을 때다. 시위대가 던진 돌에 맞아 코뼈가 부려져 입원했다. 병문안 온 직원에게 ‘소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대장이 부상당하자 복수에 찬 일부 대원들이 그날 밤, 한신대 습격을 계획한다는 말도 있더라’고 전해 듣고 화들짝 놀라 말리러 간 적이 있다. 시위대 개개인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지휘부는 그래선 안 된다.” 표 의원은 “물리력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폭력이 쉽게 통제범위를 벗어나고 경찰 개개인이 시민을 적으로 보며 증오감을 갖는 것은 해외 사례에서도 보이는 문제이며, 경찰학의 오랜 과제”라며 “이 문제를 푸는 단초는 경찰 지휘부가 이런 충동을 극복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사회적 시선”이라고 말했다.

집회·시위에 발동한 ‘갑호비상령’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경찰은 다른 기관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임제(행정관청이 단독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제도)로 돌아가는 곳”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전국 경찰관의 수는 11만3077명. 11여만명의 인력이 경찰청장 1인 휘하에 피라미드 식으로 편제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도록 규정돼 있다. 한국은 경찰조직을 각 지방단위로 분권화시키는 자치경찰제가 아니라 국가경찰제를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급 간 위계질서도 강력하다. 장신중 경찰인권센터장(전 강릉경찰서장)은 퇴임 후인 지난해 1월 출간한 <경찰의 민낯>에서 경찰 내부의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경찰청에는 간부용 식당과 목욕탕과 숙직실이 따로 있다. 계급은 인격이나 지식의 정도가 아니라 조직 내에서 개인에게 부여한 임무와 역할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계급적 질서가 신분적 질서로 비뚤어져 있다. 하급자에 대한 비하와 모욕이 언어폭력의 수준을 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장 센터장은 책에서 “계급이 깡패가 되면 모든 경찰의 관심사는 계급이라는 개인적 분야에 머문다. 직무수행과 관련한 모든 것이 국민이 아닌 인사권자의 뜻을 살펴 정해진다. 인사권자의 뜻이 공익에 반하는 경우 경찰관의 뜻도 공익에 반하게 된다”고 서술했다. 첨탑형 구조와 강력한 신분질서는 상급자가 하급자를 포괄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정권에 있어서도 경찰은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2005년 부산에서 APEC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까지 반세계화 운동가들이 시위에 합세했다. 어청수 당시 부산지방경찰청장은 컨테이터로 차벽을 쌓아 시위대를 원천차단하는 ‘신기술’을 선보여 회의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어 청장은 파죽지세로 승진해 2008년에는 경찰청장까지 역임했다. 이명박 정부는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원들의 77일 정리해고 반대 파업을 경찰특공대를 도입해 종결시켰다. 범죄수사 등 기본적 치안뿐 아니라 ‘구조조정’ 등 이슈에서 정권은 경찰의 ‘무력’을 동원해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강신명 전 청장 시기 경찰행정의 특징은 경찰의 정책적 개입이 치안과 집회·시위 관리 분야를 넘어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 점이다. 지난해 6월 5일 강 전 청장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대응에 대한 경찰의 역할을 강조했다. 청와대가 메르스 대응 실패로 곤욕을 치르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감염병 문제에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결국 강 청장이 할 수 있는 말도 보건당국이나 경찰의 격리조치에 불응할 경우 시민들에게 강제력을 적극 행사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은 지난해 7월 개정된 감염예방법 개정안에 반영됐다. 경찰이 감염병 환자 격리조치에 동원될 법적 근거를 만든 것이다.

경찰의 본질은 무력이다. 경찰이 정권의 시책을 위해 활약할수록 시민의 일상은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제약당한다. 경찰이 시민들이 분향소를 차리지 못하게 공간을 미리 선점하도록 업무명령을 내리는 등의 발상은 이런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

정작 법질서는 후퇴하고 있다. 경찰 출신인 국민의당 권은희 의원은 “민중총궐기 대회 때 경찰 공권력 사용의 특징을 보면 집회·시위의 해산과 집회·시위에 참여하는 참가자 개개인에 대한 대응이 구분돼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 의원은 “집회·시위는 무력충돌이 벌어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고, 참여하는 개개인들은 위법행위가 있을 경우 수사권을 사용해야 하는데, 현재는 집회·시위 현장에서 수사권을 발동한다. 시위대를 해산할 때에도 장비의 사용 등은 ‘집회 그 자체의 해산’을 목표로만 하도록 엄격하게 규정돼야 하는데도 경찰 내부규정부터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고 말했다.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경찰의 대응이 “적법했다”는 지침에 대한 반박이다.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월 29일 공개한 광주 11호 살수차 CCTV 영상. 백남기 농민이 물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이 담겼다. / 박남춘 의원실 제공

경찰 조직의 속성을 이용하는 정권

경찰 기강이 흔들릴 정도의 유착도 발생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아들이 의경으로 근무할 때 보직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달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지수대)는 한 언론사 기자의 부탁을 받고 우 수석과 관련된 차량 4대의 차적을 조회해준 혐의(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로 강남경찰서 교통과 소속 김모 경위와 조회를 부탁한 기자를 불구속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민주 표창원 의원은 “경찰과 시민이 자꾸 맞부딪치는 일이 발생하는데 국가·사회의 갈등관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집회·시위도 보면 지난 민중총궐기 대회만 하더라도 노동·청년·농민·세월호 이슈 등 다양한 불만이 쏟아져나오는 것이고, 이 중 일부가 폭력적으로 표출되는 경우도 있는 것인데, 정부는 이들 당사자와의 대화를 포기하고 경찰로 넘겨버린다. 정치권이 경찰을 이슈의 쓰레기통으로 사용하고 있다.”

장 센터장은 경찰 내부의 표현의 자유와 유연한 조직문화 도입을 강조했다. 정부가 경찰조직을 활용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있었지만 참여정부 시기는 비교적 일선 경찰 개개인의 분위기가 자유로웠다. 경찰의 자생적 사이트인 ‘폴네티앙’을 중심으로 경찰 처우개선, 수사권 개혁 등의 이슈가 제기됐으며, 경찰청장의 방침을 일선 경찰이 직접 비판하기도 했다. 2003년 경찰청이 여경을 시위대 앞에 전진 배치하고 이를 ‘평화시위를 지키는 립스틱 라인’으로 홍보하자 이동환 당시 경감은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자 자격으로 “기만적 집회·시위 대응이자 여경에 대한 성희롱”이라고 비판했다. 2004년에는 순직 동료경찰 추모와 경찰 처우개선을 위한 일선 경찰의 촛불집회 움직임이 언론에 보도돼 청와대와 경찰청에 충격을 줬다. 이 같은 자유로운 분위기는 간부급에만 해당된다는 반론도 있었으나 정부 정책이나 조직 방침에 어떠한 이견도 나오지 않는 오늘날과 대조적이다.

시민과 적대하는 경찰은 경찰조직 그 자체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권 의원은 “경찰조직의 숙원 중 하나는 수사권 독립이다. 여론조사를 보면 검찰의 비대한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70%를 넘지만, 경찰이 독립적 수사권을 갖고 검찰을 견제해야 한다는 데 찬성하는 의견은 50%도 넘지 않는다”며 “경찰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 결과”라고 말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자치경찰제 등의 제도개혁은 입법부를 통해 할 수 있다”며 “여소야대인 현 정국에서 생각해볼 사안”이라고 말했다. 표 의원은 “정부와 경찰권력 사이에 완충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시민사회로 구성된 경찰위원회, 노동조합의 전 단계인 경찰직무협의회 등을 둬서 정부가 경찰과 지나치게 밀착하는 것을 중재하고 완충할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지금의 경찰조직이 위기라는 문제의식이 높다. <주간경향>은 농민 백남기씨 사망과 경찰의 공권력 집행과 관련해 현 진단과 입장을 새누리당 측에도 문의했으나 "당내 사정상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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