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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 "염통에서 나오는 새 소식이 시(詩)다"

권영미 기자 입력 2016. 10. 07. 08:02 수정 2016. 10. 1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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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시집 '초혼' 펴낸 고은 시인
고은 시인이 5일 오후 오산시청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가졌다. © News1

(오산=뉴스1) 권영미 기자 = 가을이 '호명'(呼名)하는 작가가 있다. 가을이 되면 울려퍼지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로 시작하는 노래의 원작시 '가을편지'를 쓴 시인,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노벨문학상 후보로 항상 거명되는 고은 시인(83)이다.

고은 시인은 1958년 등단한 이래 50년 넘게 문단에 산맥처럼 존재했다. 시, 소설, 평론 등의 저서를 150권 이상 세상에 내놓았고, 국내외 문학상을 20개 가까이 수상했으며, 세계 2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서가 출간됐다.

하지만 시인 고은의 젊은날은 절망에 가까웠다. 수차례 자살을 시도하고, 10년간 승려의 삶을 살기도 하며 탐미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시를 썼다. 하지만 문학의 꿈을 지켜온 그는 1970년대 사회와 역사에 눈을 뜨며 약자들의 삶을 기록하고 폭력에 저항하는 시들을 썼다.

더 나아가 '순수'와 '참여'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하는 폭넓고 깊이 있는 시를 쓰는 시인으로 발전하며 마침내 '세계의 시인'이 되었다. 최근 신작시집 '초혼'(창비)을 펴낸 고은 시인을 지난 5일 오후 오산시청에서 만났다. 오산시에서 여는 '독산성문화제' 강연에 앞서 가진 이 인터뷰에서 고은시인은 '시'와 '아름다움', '깨달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고은 시인은 시를 잘 읽지 않는 세태에 대해서는 "시를 읽는 일을 좀 쉬는 시대가 왔을지는 모른다"면서도 "시는 인간 안에 있고 우주 안에 늘 차있는 것이라 다시 시에 '환장'하는 시대가 올 지도 모른다"고 했다. '다작이면서도 높은 성취를 꾸준히 보여주는 비결'을 묻자 시인은 "(창작의 샘이 고갈되는 일 없이) 나는 늘 출렁거리고 파도 치고 그런다"고 답했다.

원시시대 어린아이 화석과 함께 꽃화석도 같이 발견된 것을 예로 들면서 "미(美)란 인간 본성에 내재해있는 것"이며 "현실의 슬픔과 미래의 꿈을 결합시키면서 시가 창작됐다"고도 했다. 또 "선생 없이 스스로 써야 하는 심장에서 나오는 새소식이 바로 '시'"라고 강조했다.

추사 김정희를 인용하면서 "아름다움을 알기 위해서는 불화에 나오는 금강역사의 '금강안'(眼)을 가져야 하며 가혹한 세리(세금징수원)의 손과 안핵사와 같은 교묘함이 있어야 '미'를 맞이할 수 있다"며 미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들려줬다.

다음은 고은 시인과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생동감을 살리기 위해 고은 시인의 발언을 그대로 옮긴다.

◇"지금은 시를 읽는 일을 좀 쉬는 시대일지도 모른다"

요즘 세태는 시를 잘 안읽는다고 하지만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시를 많이 읽어왔으니 지금쯤 시를 읽는 일을 좀 쉬는 시대가 왔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시가 멀리 떨어져나간 거는 아니다. 시는 인간 안에 있고 이 세계의 우주 안에 늘 차있는 것이다. 그것을 시인들이 받아들여 근대 이전엔 소리, 이후엔 글로 표현해왔다. 이런 일(시창작과 감상)은 인간이, 인류가 지구라는 행성 위에 있는 한 끝날 수 없는 본질적인 사건들이다.

시는 모든 생명체, 모든 물질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암흑물질 속 물질들의 파동, 행성들이 태양을 돌면서 낮과 밤이 되는 것, 달이 떠서 초승달이 되었다가 보름달이 되는 모든 것이 움직임과 파장, 율동이다. 우주 속 율동이 곧이곧대로 인간에게 나타난 것이 '흥'이다. 어깨춤을 덩실거리는 리듬, 일상의 걸음걸이, 춤, 이런 게 다 시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에 '독자들이 시집을 서점에서 잘 사지 않는다' 이런 고민은 큰 의미가 없다. 후대에는 시에 '환장'하는 사람이 들끓을 때가 올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시에 대해 걱정하거나 우쭐하는 일은 없다. 시는, 시적인 것들은 인류가 끝날 때까지 아니, 인간보다 더 긴 시간을 감당할지도 모른다고 본다.

◇"밤동안 충만했던 것을 아침에 받아적는다"

"늘 시상이 머릿속에, 몸 속에 가득차 있어 아침에 받아적듯이 시를 쓴다"고 일전에 한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는데 그럴 때도 있고 오늘처럼 강연이 있는 때는 아무것도 안나온다. 대체로 아침이 참 많은 것이 나오는 것은 맞다. 밤에 자면서 (시가) 쌓인다. 나는 자는데 뇌와 심장은 깨어서 받아들이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그것을 열어준다. 가령 이런 일과는 딱 맞아떨어지는 얘기는 아니지만 석가모니도 새벽별을 보고 지혜를 터득했다 한다. 새벽이나 아침은 밤동안 담긴 것들이 정화되어 순수한 형태로 나타나는 시간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동안 쌓인 시상들을 "좀 있다 적어야지"했다가 금세 사라지고 해서 없어진 것도 많다. 대체로 아침에 적어놓은 것이 기본이 되어 시를 쓰지만 밤에 (시가) 나오기도 한다. 시는 언제 올지 모른다. 시는 나와 상관없이 자기가 정해지는 시간에 나에게 온다. (재능이 말라버릴 것 같은 위기를 느낀적 없냐고 묻자)나는 늘 출렁거리고 파도치고 그런다.

◇"미지(未知)가 살아갈 힘을 준다"

나는 깨달음을 싫어한다. 나는 어리석은 것을 좋아한다. 시도 알고 쓰지 않는다. 모르고 쓴다. 삶도 모르고 산다. 죽음도 모른다. 그래도 죽을 것 아닌가. 그러니 아는 것, 깨달은 것과 모르는 것이 아무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숭산스님이라고 내 옛날 친구가 있다. 산에서 동고동락한 이인데 임종 무렵에 그의 '테제'(증명해야 할 명제)랄까 '화두'랄까가 뭐냐면 '오직 모를 뿐'이었다. 재밌잖아. 깨닫고 환하게 알고 그런 것처럼 어리석은 게 없다고 본다. 모르는 평야와 광야, 저 대기 속 성층권, 우주 암흑물질 등 전혀 내가 접촉할 수 없는 미지가 앞에 막 있어야 내가 살아가는 힘이 생긴다. 그걸 다 깨달으면 뭐가 재밌어, 이사람아.

(미지가 주는 두려움이 없냐고 묻자) 미지는 나에게 용기를 준다. 예컨대 내가 죽는다면 우리 아내가 슬퍼할 거, 내 딸이 아빠가 있을 때와 다른, 없을 때의 고독을 느낄 거 그런 게 안타깝지만 나 자신만 보자면 나는 두렵지 않다. (독재정권과 싸울 때도 두렵지 않았나 묻자) 그때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런데 술을 먹으면 만용이 생겨 술로 이겼다.(웃음)

◇"미(美)란 인간본성에 내재, 시는 염통에서 나오는 새 소식"

중동 지역에서 6만 년 전의 화석이 나온 적이 있었다. 조사를 해 보니 어린아이 유골이었다. 그런데 그 유골 이마 옆에 히아신스 꽃이 놓여 있었다. 6만 년 전의 인류는 거의 동물 비슷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런데 자식이 죽었을 때 그 옆에 히아신스 꽃 하나를 꺾어 놓아두고는 슬퍼하면서 '지금보다 더 좋은 데로 가라'고 염원한 것이다. 이것 자체가 시다. 미란 여유가 있어서 추구하는 게 아니다. 인간 본성에 내재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의 슬픔과 미래의 꿈을 결합한 것이 시다.

미에 다가가는 방법은 영화를 보고 명작이라며 감탄하고 집에 돌아오고 이런 게 아니다. 이런 거는 미와 그냥 '스치는' 것이다. 미를 획득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자신의 뇌와 심장, 오장육부로 들어오고 자신의 존재 자체가 미가 되는 것이어야 한다. 추사 김정희는 서화 감상에 "'금강안'(金剛眼)과 '혹리수'(酷吏手)”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절에 가면 불상 뒤에 그려진 탱화 속 금강역사 같은 무서운 눈과, 혹독한 세리(稅吏)의 손끝 같은 치밀함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금강역사는 코끼리 60만 마리의 힘을 가진 신이다. 그러니 그의 눈의 힘이 얼마나 세겠나. 무에서 유를 긁어내고, 가슴에서 심장을 도려내고 가져가는 세리는 얼마나 가혹한가. 그런 게 아니면 아름다움을 잡을 수 없다. 또한 미에 다가가기 위해선 조선시대 민란을 무마하고 진정시키기 위해 파견된 '안핵사'같아야 한다. 때리고 괴롭히는 게 아니라 살살 달래면서 원하는 것을 얻는 거다. 나도 때리는 이에게는 굴복하지 않고 '선생님 존경합니다' 이러는 이에게는 마음이 약해졌다.(웃음) 금강역사의 눈과 세리의 손, 그리고 안핵사의 태도가 있어야 미를 맞이할 수 있다.

나는 후배시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없다. 그들이 스스로 써야 한다. 내 얘기를 듣고 그대로 하는 바보가 없기 바란다. 시인에게 고민도 나누고 시도 같이 품평할 친구는 있을 수 있어도 교사는 없다. '시에 스승이 있다'는 말처럼 시를 모독하는 말이 없다고 본다. 자신의 심장이 시의 교사다. 시는 심장의 뉴스다. 염통서 나오는 새 소식이 시다.

고은 시인이 5일 오후 오산시청 대강당에서 열린 '독산성문화제'에서 '시와 더불어, 삶과 더불어'라는 제목으로 강연하고 있다. © News1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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